가동 멈춘 '가락시장 정수탑', 예술명소로 다시 태어난다!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4.03.25. 15:21

수정일 2024.03.25. 15:22

조회 1,788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은 지 38년, 20년 간 가동을 멈춘 높이 32미터 깔때기 모양의 가락시장 정수탑을 예술명소로 재탄생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새롭게 바뀌는 정수탑 내부엔 시민들이 직접 만든 미술작품을 채울 계획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을 통해 함께 참여할 시민 100명을 모집했다. 그렇게 100명의 시민이 모여 가락시장 정수탑 바로 옆에 있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서 레진아트 블록'바다의 조각'을 쌓아 만들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서 100명의 시민이 ‘바다의 조각’ 만들기에 참여했다. ©이선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서 100명의 시민이 ‘바다의 조각’ 만들기에 참여했다. ©이선미
각각의 테이블마다 조금씩 다른 색의 ‘바다의 조각’을 만들었다. ©이선미
각각의 테이블마다 조금씩 다른 색의 ‘바다의 조각’을 만들었다. ©이선미

많은 시민들이 몇 개의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주제와 경화제를 한곳에 넣고 잘 섞은 후 테이블마다 조금씩 다르게 배정된 색소를 소량 넣어 다시 잘 저어서 몰드에 부었다. 바다의 수위를 나타내는 여섯 가지 색을 녹인 이 레진아트 블록들이 지난 30년간 상승한 해수면을 표현하는 작품의 한 요소가 된다고 한다.
몰드에 참여자의 이름을 적고 작업한 레진을 부었다. ©이선미
몰드에 참여자의 이름을 적고 작업한 레진을 부었다. ©이선미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선미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선미

'바다의 조각'을 만든 후에는 레진으로 키 링을 만들어 보았다. 먼저 참여자들에게 자개 조각과 폐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키 링이 하나씩 전해졌다. 여기에 자신만의 느낌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몰드와 레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색색의 반짝이 등이 주어졌다.
  • 레진을 몰드에 넣고 원하는 색을 칠하면서 꾸미고 있다. ©이선미
    레진을 몰드에 넣고 원하는 색을 칠하면서 꾸미고 있다. ©이선미
  • 레진을 붓고 색을 넣은 후 저마다의 장식을 한 몰드를 건조시키고 있다. ©이선미
    레진을 붓고 색을 넣은 후 저마다의 장식을 한 몰드를 건조시키고 있다. ©이선미
  • 레진을 몰드에 넣고 원하는 색을 칠하면서 꾸미고 있다. ©이선미
  • 레진을 붓고 색을 넣은 후 저마다의 장식을 한 몰드를 건조시키고 있다. ©이선미

처음 접해 본 레진은 좀 끈적였다. 앞치마를 챙겨간 덕분에 다행히 옷에 레진이 묻을 염려 없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작업한 가족도 딸과 함께 왔다.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이 많이 보였다. ©이선미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이 많이 보였다. ©이선미

레진에 색을 섞어 찬찬히 몰드에 넣고 색색의 반짝이로 장식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부모의 작품 못지않게 딸의 작품도 아주 예뻤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가 집에서도 레진 공예를 즐겨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어깨 너머로 봐온 터라 초등학생인 딸도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할 줄 아는 것 같았다.
부부가 예쁘게 만든 키 링을 보여주었다. ©이선미
부부가 예쁘게 만든 키 링을 보여주었다. ©이선미
레진아트로 만든 키 링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레진아트로 만든 키 링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오니 창 너머로 가락시장 정수탑이 내려다보였다. 정수탑은 이미 새 단장을 위해 공사를 하고 있었다. 꼭대기에서도 뭔가 작업을 하는 게 보였다.

1986년에 축조돼 가락시장에 물을 공급하던 정수탑은 2004년 가압펌프 방식이 도입되면서 사용이 중지되었다. 20여 년 동안 가동을 멈춘 상태로 철거를 요청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철거 비용과 배출되는 쓰레기 등을 고려해 남겨진 상태였다. 높이가 32m에 달하는 정수탑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급수탑으로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 정수탑이 서울의 5대 권역에 예술 명소를 만드는 ‘디자인 서울 2.0-권역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첫 사례로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가락시장 정수탑은 이미 변신을 위한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선미
가락시장 정수탑은 이미 변신을 위한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선미

가락시장에는 지금도 여러 조형물들이 있다. 정수탑으로 가는 도중에도 세 개의 탑처럼 세워진 작품이 있었다. ‘flow-축제’라는 제목의 작품 설명이 소개되어 있다.

“…예부터 장은 축제와 같은 곳이다. 무엇이든 살 수 있고 팔 수 있는 곳, 먹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작품 ‘축제’는 이러한 장의 모든 곳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가락시장이 모든 사람이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구상하였다.”
  • 가락시장 회전교차로에 설치된 작품 ‘flow-축제’ ©이선미
    가락시장 회전교차로에 설치된 작품 ‘flow-축제’ ©이선미
  • 세 개의 탑처럼 세워진 조형물 ‘flow-축제’ ©이선미
    세 개의 탑처럼 세워진 조형물 ‘flow-축제’ ©이선미
  • 가락시장 회전교차로에 설치된 작품 ‘flow-축제’ ©이선미
  • 세 개의 탑처럼 세워진 조형물 ‘flow-축제’ ©이선미

길을 건너면 ‘송파시장 유래비’도 만날 수 있다.

“송파는 수륙 물산의 집산지로 수도 한양에 생필품을 조달하며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다. 개화로 인해 수송수단이 철도로 옮겨간 후에는 학교를 창설해 후일을 다짐하고 이제는 대규모 교역장이 터잡아 옛 전통을 되살리게 되었다.”
‘송파시장 유래비’가 이 지역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이선미
‘송파시장 유래비’가 이 지역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이선미
어디서나 눈에 들어오는 롯데타워 앞으로 버섯 모양의 가락시장 정수탑이 보인다. ©이선미
어디서나 눈에 들어오는 롯데타워 앞으로 버섯 모양의 가락시장 정수탑이 보인다. ©이선미

정수탑 주변은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디자인 서울 2.0-권역별 공공미술’ 프로젝트 첫 작업과 어우러져 송파구에서도 주변 공원화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정수탑과 축구장 넓이의 녹지를 시민에 환원하기로 했고, 서울시는 정수탑의 작품화를, 송파구는 명품대로 조성과 작품 주변 공원화를 맡았다고 한다.
서울시와 송파구가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디자인 서울 2.0-권역별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장. 가락사거리 가로정원 조성사업도 진행 중이었다. ©이선미
서울시와 송파구가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디자인 서울 2.0-권역별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장. 가락사거리 가로정원 조성사업도 진행 중이었다. ©이선미

서울시는 정수탑 일대에 물의 생명력을 주제‘샘(SAM, Seoul Aqua Monument)-932’라는 이름의 공공미술 사업을 추진하면서 작품을 공모했고, 환경 설치예술가인 네드 칸의 ‘베일(Veil) 연작’인 ‘비의 장막(Rain Veil)’이 선정되었다. 기후의 순환으로 만들어지는 비의 물성을 담아 물이 흐르는 듯한 표면을 연출하는 ‘비의 장막’ 안쪽에는 이 날 만든 ‘바다의 조각’이 쌓여 바다의 단면을 형상화한 작품이 들어선다.
네드 칸의 작품 ‘비의 장막(Rain Veil)’으로 변신할 가락시장 정수탑 ©이선미
네드 칸의 작품 ‘비의 장막(Rain Veil)’으로 변신할 가락시장 정수탑 ©이선미

‘비의 장막’은 와이어를 얽어 만든 장막이 정수탑에 드리워져 바람결에 따라 물이 흐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한다. 살랑이는 봄바람일 때와 강풍이 불어올 때 사뭇 다를 ‘비의 장막’은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설치미술 방식이라고 해서 더욱 기대를 모은다. 가락시장 주변이 예술 명소로 변신할 6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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