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을 닮은 조선왕릉 의릉을 찾아서

시민기자 김수정

발행일 2023.03.02. 09:19

수정일 2023.03.02. 17:40

조회 1,543

조선시대 제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 있는 의릉 Ⓒ김수정
조선시대 제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 있는 의릉 Ⓒ김수정

조선 왕조 500년. 기나긴 역사를 지나온 조선의 왕과 왕비가 묻혀 있는 조선왕릉은 총 42기가 있다.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의 왕릉은 대한민국에 있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40기의 왕릉 중에서 집에서 멀지 않은 의릉으로 산책을 나섰다. 
조선왕릉은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수정
조선왕릉은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수정

의릉은 제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 동원상하릉으로 위아래로 나란히 있다. 경종(1688~1724)은 숙종과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아들로 1720년에 왕위에 올랐다. 자식이 없어 이복동생 영조(연잉군)를 왕세제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대립하여 두 차례의 옥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37세의 나이로 창경궁 환취정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의왕후 어씨(1705~1730)는 함원부원군 어유구의 딸로 1718(숙종 44)에 경종의 두 번째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른 후 경순왕대비가 되었으며, 26세의 나이로 경덕궁 어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의왕후 능
선의왕후 능 Ⓒ김수정
경종 능
경종 능 Ⓒ김수정

의릉은 1724년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현재의 자리, 성북구 석관동에 조성되었다. 6년 뒤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경종의 능 아래쪽에 선의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능을 위아래로 조성하는 이유는 풍수지리상 생기가 왕성한 정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즉, 능역의 폭이 좁아 산천의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위아래로 배치한 것으로 자연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렇게 동원상하릉 형식은 의릉과 함께 여주 영릉(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 능) 2곳에서만 볼 수 있다. 
돌아가신 왕의 혼령이 다니는 길인 향어로는 함부로 밟아선 안 된다.  Ⓒ김수정
돌아가신 왕의 혼령이 다니는 길인 향어로는 함부로 밟아선 안 된다. Ⓒ김수정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왕릉 안으로 들어갔다. 금천교를 건너 빨간 홍살문을 지났다. 정자각까지 길게 돌길이 이어지는데 왼쪽의 약간 높은 향로 대신 낮은 어로로 걸어야 한다. 향로는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로 돌아가신 왕의 혼령이 다니는 길로 여기기 때문에 함부로 밟아선 안 된다.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로 왕처럼 걸어보는 것도 재미난다. 
제향을 지내는 건물 정자각 Ⓒ김수정
제향을 지내는 건물 정자각 Ⓒ김수정
의릉 표석 Ⓒ김수정
의릉 표석 Ⓒ김수정

정자각은 제향을 지내는 건물로 평면이 정(丁)자 모양이다. 정자각에는 제사 상차림인 제수진설도와 기신제 차례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정자각 오른쪽으로는 비각이 세워져 있다. 능 주인의 일생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운 건물이다. 의릉 표석은 1724년에 경종이 세상을 떠난 후 세웠던 표석에 1730년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최종적으로 새긴 표석이다. 
천장산 산책로
천장산 산책로 Ⓒ김수정

경종과 선의왕후의 봉분 주변에는 각각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혼유석 등의 석물을 갖추었고 경종의 능에만 곡장을 둘렀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기에 멀리서 능을 바라보며 산책했다. 의릉은 천장산의 동쪽 끝에 있다.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 줄기가 뻗어 내려오다가 천장산으로 이어지는 이 지대는 풍수지리적으로 뛰어난 길지로 조선 왕실의 능터로 사용되었다. 주변으로 대한민국 1대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원소인 영휘원과 황태자 영친왕의 아들 이진의 원소인 숭인원이 자리 잡고 있다. 
구 중앙정보부 강당
구 중앙정보부 강당 Ⓒ김수정

의릉을 빙 둘러 천장산 자락 아래를 산책하다 보면 구 중앙정보부 강당을 만나게 된다. 1962년부터 1995년까지 옛 중앙정보부에서 사용했던 강당으로 건축가 나상진의 설계로 지어진 건물이다. 1972년 분단 이후 최초로 남한과 북한이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역사적인 장소로 국가등록문화재다. 
의릉
의릉 Ⓒ김수정

그 당시 왕릉의 우측 능선을 깎아서 넓은 축구장을 조성하고 콘크리트 청사 건물을 세우는가 하면, 좌측 능선 역시 청사를 짓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내는 등 왕릉의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건축물은 정자각과 비각, 홍살문뿐이며 수복방, 수라간, 재실은 멸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세손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의 무덤이 주인처럼 고난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러나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많은 왕릉의 주변은 복원되었고, 아름다운 천장산과 함께 많은 이들이 산책하는 공간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한 만큼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계승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의릉

○ 주소 : 서울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20
○ 관람시간 : 2~5월, 9~10월 9시~18시/ 6~8월 9시~18시30분/ 11월~1월 9시~17시30분
○ 관람요금 : 개인 1,000원(만 25세~64세), 매월 마지막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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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김수정

가볍게 여행 온 듯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과 즐걸거리 등을 찾아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의릉 #조선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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