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엄마'와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가족이 된 사연은?
발행일 2022.05.19. 10:57
[우리동네 시민영웅] ⑧ 북한 이탈 청소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김태훈 씨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영웅,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영웅, 우리동네 화제의 영웅을 찾아 소개합니다. 이번 주인공은 17년 넘게 북한 이탈 청소년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는 김태훈 씨 이야기입니다. 북한 이탈 청소년과 '가족'을 이루고 '총각엄마'로 살아가는 사연을 소개합니다.
김태훈 씨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엄마처럼 돌봐주고 있다. ⓒ윤혜숙
아직 어스름한 새벽녘이다. 오전 6시가 되면 방에서 나온 아이들이 하나둘 식탁에 둘러앉는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는 10명의 아이는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기 시작한다. 엄마를 포함한 총 11명의 대가족이 거주하는 이 집의 하루는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 집에는 10명의 아이를 품어주는 '총각엄마'가 있다. 총각과 엄마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왠지 이 집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현관에 총각엄마 김태훈 씨와 함께 생활했던 청소년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윤혜숙
사단법인 우리들의성장이야기 김태훈 대표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엄마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그를 '총각엄마'로 부르고 있다. 시작은 이랬다. 벌써 17년 전이다.
북한을 탈출해서 남한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모자가 있었다. 사정상 엄마가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아이는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다. 당시 회사원이었던 김태훈 씨는 북한 이탈 청소년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 아이를 만났다.
낮 동안의 봉사활동을 끝내고 집에 가려는 그를 아이가 붙잡았다. “오늘 밤에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라면서 그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마주하니 아이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그 집을 나오려는데 아이가 “갈 거예요?”라고 물었고, 김태훈 씨는 “왜? 그럼 같이 살까?”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의 눈에는 그 아이만 보였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그런 아이가 하나에서 둘, 셋으로 늘어나 지금은 총 10명의 아이와 살아가고 있다. 그게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그새 김 대표도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거의 2년 간 부모님과 연락을 끊은 채 지내야만 했다. 그런 부모님이 이제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셨다.
북한을 탈출해서 남한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모자가 있었다. 사정상 엄마가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아이는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다. 당시 회사원이었던 김태훈 씨는 북한 이탈 청소년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 아이를 만났다.
낮 동안의 봉사활동을 끝내고 집에 가려는 그를 아이가 붙잡았다. “오늘 밤에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라면서 그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마주하니 아이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그 집을 나오려는데 아이가 “갈 거예요?”라고 물었고, 김태훈 씨는 “왜? 그럼 같이 살까?”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의 눈에는 그 아이만 보였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그런 아이가 하나에서 둘, 셋으로 늘어나 지금은 총 10명의 아이와 살아가고 있다. 그게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그새 김 대표도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거의 2년 간 부모님과 연락을 끊은 채 지내야만 했다. 그런 부모님이 이제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셨다.
김태훈 씨는 지금 10명의 북한 이탈 청소년들과 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윤혜숙
북한에서 이탈하여 남한으로 온 사람들은 처음 3개월 간 통일부 소속기관인 '하나원'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북한 이탈 주민들은 대한민국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그 이후 청소년 중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같이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청소년들을 김 태훈 씨가 한 집에서 가족처럼 돌보고 있다. 아니 그에겐 그 아이들이 자녀와 다름없다. 그는 늘 새벽 6시쯤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줄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을 등교시킨다. 그러고 나선 여느 엄마처럼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세탁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먹일 식자재와 간식 등 장보기도 한다. 때론 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선생님과 상담도 한다.
그 이후 청소년 중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같이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청소년들을 김 태훈 씨가 한 집에서 가족처럼 돌보고 있다. 아니 그에겐 그 아이들이 자녀와 다름없다. 그는 늘 새벽 6시쯤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줄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을 등교시킨다. 그러고 나선 여느 엄마처럼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세탁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먹일 식자재와 간식 등 장보기도 한다. 때론 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선생님과 상담도 한다.
북한 이탈 청소년들은 김태훈 씨를 '총각엄마'라고 부른다. ⓒ윤혜숙
김태훈 씨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우리들과 다르지 않아요. 그 아이들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아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편견으로 바라본다. 김태훈 씨는 그동안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눈시울을 적시면서 어렵사리 말한다. “아이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힘들었어요”라고 말문을 열면서 “초창기에 아이들이 재학 중인 학교를 방문했을 때 아이와의 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웠어요. 아빠라고 하기엔 제가 너무 젊었고, 삼촌이라고 하니 '부모가 와야지' 하고 반응하던 때였어요”라고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편견으로 바라본다. 김태훈 씨는 그동안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눈시울을 적시면서 어렵사리 말한다. “아이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힘들었어요”라고 말문을 열면서 “초창기에 아이들이 재학 중인 학교를 방문했을 때 아이와의 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웠어요. 아빠라고 하기엔 제가 너무 젊었고, 삼촌이라고 하니 '부모가 와야지' 하고 반응하던 때였어요”라고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청년활동지원사업으로 '청년구술생애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우리들의성장이야기 김태훈
김태훈 씨는 (사)우리들의성장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2006년 6월, 가장 취약 계층인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올바른 사회화를 위해 시작한 새터민청소년그룹홈 '가족'이 모태가 되었다. 현재 새터민청소년그룹홈 '가족'과 '한식구' 두 개의 그룹홈을 통해 북한 이탈 청소년들에게 따뜻하고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정서적 치유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자립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 이탈 청소년 지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청년활동지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는데, 그 중 ‘청년구술생애사’ 프로그램도 있다.
청년구술생애사는 청년기에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생애 기록을 넘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골든타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20대 청년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30대 멘토 청년이 구술 생애사 저자로 참여해 청년의 삶을 기록한다. 청년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청년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그들은 인생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그래서 은둔하거나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는 청년들이 많다. 그동안 그런 청년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거의 없었다. 김태훈 씨는 그런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 구술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서술자는 또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다 보니, 청년들의 호응도가 높다. 지금껏 총 13명의 구술자 이야기를 담아서 책 2권을 펴내기도 했다.
청년구술생애사는 청년기에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생애 기록을 넘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골든타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20대 청년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30대 멘토 청년이 구술 생애사 저자로 참여해 청년의 삶을 기록한다. 청년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청년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그들은 인생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그래서 은둔하거나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는 청년들이 많다. 그동안 그런 청년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거의 없었다. 김태훈 씨는 그런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 구술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서술자는 또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다 보니, 청년들의 호응도가 높다. 지금껏 총 13명의 구술자 이야기를 담아서 책 2권을 펴내기도 했다.
청년들이 모여 북한이탈주민 인식 개선과 평화통일을 주제로 초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사)우리들의성장이야기 김태훈
'통일나침반' 활동도 있다. 청년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통일과 평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확장해서 동서남북국제워크캠프, 3분8초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동서남북국제워크캠프는 독일의 튀링겐대학과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분단국가였던 독일과 한국의 청년들이 모여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한다.
3분8초영화제는 여름에 강원도 철원에서 청년들과 5박 6일 간 합숙하면서 평화통일과 주민 인식 개선을 위해 3분 8초의 초단편 영화를 제작한 뒤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이다. 청년들이 바라보는 통일을 다루고 있어서 기성세대완 다른 시각이 엿보이는 작품이 많다.
동서남북국제워크캠프는 독일의 튀링겐대학과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분단국가였던 독일과 한국의 청년들이 모여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한다.
3분8초영화제는 여름에 강원도 철원에서 청년들과 5박 6일 간 합숙하면서 평화통일과 주민 인식 개선을 위해 3분 8초의 초단편 영화를 제작한 뒤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이다. 청년들이 바라보는 통일을 다루고 있어서 기성세대완 다른 시각이 엿보이는 작품이 많다.
김태훈 씨가 청년구술생애사 책을 보여주고 있다. ⓒ윤혜숙
김태훈 씨는 ‘총각엄마TV’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총각엄마네 집 일상을 다룬 브이로그와 통일수다방, 3분8초영화제에 상영한 영화를 이곳에서 시청할 수 있다.
그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과 거주하면서 지금껏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정말 순수하고 그늘이 없어요. 이곳에 와서도 금방 적응해서 여느 아이들처럼 지내요. 그런 아이들을 학교 선생님들도 정말 예뻐해 주셔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총각엄마로 살아가면서 고충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아이들과 살다 보니 많이 내려놓게 됩니다. 총각엄마로 살다 보니, '참을 인(忍)을 새기면서 살아간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요”라면서 미소 짓는다.
그런 그의 표정은 아이를 키우는 천상 엄마의 모습 그대로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자립한 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청년도 있다. 그들에게 이곳은 새로운 고향의 친가인 셈이다.
그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과 거주하면서 지금껏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정말 순수하고 그늘이 없어요. 이곳에 와서도 금방 적응해서 여느 아이들처럼 지내요. 그런 아이들을 학교 선생님들도 정말 예뻐해 주셔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총각엄마로 살아가면서 고충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아이들과 살다 보니 많이 내려놓게 됩니다. 총각엄마로 살다 보니, '참을 인(忍)을 새기면서 살아간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요”라면서 미소 짓는다.
그런 그의 표정은 아이를 키우는 천상 엄마의 모습 그대로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자립한 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청년도 있다. 그들에게 이곳은 새로운 고향의 친가인 셈이다.
김태훈 씨는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윤혜숙
김태훈 씨는 성북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민교육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과 평화통일을 다룰 거라고 한다.
김태훈 씨는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나 북한에서 왔어”라고 했더니 대뜸 친구가 “나는 제주도에서 왔어”라고 대꾸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깨달은 바가 컸다고 한다. 어른들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서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청년이 되어서 홀로서기 해야 하는데 이 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소수의 청년을 볼 때면 정말 안타깝다고 한다. 그런 청년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건강하게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김태훈 씨는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나 북한에서 왔어”라고 했더니 대뜸 친구가 “나는 제주도에서 왔어”라고 대꾸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깨달은 바가 컸다고 한다. 어른들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서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청년이 되어서 홀로서기 해야 하는데 이 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소수의 청년을 볼 때면 정말 안타깝다고 한다. 그런 청년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건강하게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최근 북한 이탈 주민이 출연해서 북한의 실상을 들려주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방송 프로그램도 있다. 해당 프로그램 덕분에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그뿐이다. 북한 이탈 주민들이 우리 사회에 정착해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총각엄마를 자처한 김태훈 씨의 오랜 세월 보이지 않는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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