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거리 명동의 재발견! 해설사와 함께 역사 투어
발행일 2021.11.08. 11:34
'명동 역사문화 투어' 도보탐방 프로그램 참관기
바람이 상쾌한 가을은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그냥 걷기만 해도 분위기에 빠지게 되지만, 걷고 있는 장소에 대해 잘 안다면 건물 하나하나 눈여겨 보게 된다. 이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던 명동거리, 역사문화 투어에 참가해 해설사와 함께 걸었다.
명동문화공원에 집결해 명동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김수정
집결 장소는 명동문화공원이었다. 걷기를 시작하기 전, 명동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을 명례방이라 불렀다고 한다. 명례방에는 종현(종고개), 이현(진고개), 동현(구리개) 등 여러 고개가 있었단다. 종현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가 주둔하며 숭례문에 있던 종을 걸어둔 데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1898년 명동성당이 들어섰다. 진고개는 땅이 질어서, 구리개는 흙이 구릿빛이어서 붙은 이름으로 약방이 즐비했다고 한다. 옛 명동의 모습은 지금과 무척 달랐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어 왔다. 그 이야기 속으로 걸어가 보았다.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 의거터 ⓒ김수정
명동에 얽힌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만난 이는 '이재명 의사'다.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을 척살하려 한 독립운동가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돼 이듬해 순국했다. 이재명 의사 의거터는 이완용을 칼로 찌른 명동성당 앞이다. 계단을 올라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본당인 명동성당 ⓒ김수정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본당이다.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있던 명례방 근처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에 귀국해 활동하던 돌우물골 인근이기도 하다. 토지 매입은 1883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나 정부와의 갈등, 청일전쟁 등으로 성당은 15년 만에 완공됐다. 서양식 붉은 벽돌과 전통 재료인 전돌을 응용한 회색 이형 벽돌을 썼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곳은 본당 설립 이후 120여 년간 줄곧 한국 천주교 신앙의 중심이 되어왔다. 오랜 박해에서 획득한 신앙의 자유, 소외당하고 가난한 민중의 안식처,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시조 작가인 윤선도 집터 ⓒ김수정
다음으로 간 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 작가인 윤선도 집터다. 그의 시조는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 시대 시가의 쌍벽으로 평가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어부사시사'와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다섯 벗으로 비유하여 지은 '오우가'로 유명하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집이 제비 형국의 명당이라 적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회영 6형제 집터 ⓒ김수정
몇 발자국만 걸으면 또 다른 집터가 나온다. '오성과 한음'의 오성 이항복의 10대손 이회영 6형제 집터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최고의 갑부였으나 부귀영화를 멀리하고 만주로 떠나면서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내놓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귀감이 되는 가문이다. 1910년 6형제는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했다. 이회영은 1932년 일본군 사령관 사살을 계획하다가 체포돼 고문으로 순국했고, 이시영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에 재임한 후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나석주 의사 동상 ⓒ김수정
지금의 외환은행 본점 자리는 조선 시대 음악과 무용을 담당했던 관청인 '장악원 터'다. 당시 음악인, 무용인이 기거했으며 규모가 상당히 컸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나라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했고 온종일 가락 소리가 흘러나왔던 예술의 공간이었다. 얼마 걷지 않은 곳에는 나석주 의사 동상이 서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 소속 나석주 의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 횡포에 저항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던 자리다. 불행히도 폭탄은 불발했고 나석주는 일본 경찰과의 총격전 중 자결했다.
한국전력사옥은 서울시 등록문화재 1호로 지정됐다. ⓒ김수정
명동에 있는 한국전력 사옥은 1928년 완공된 경성전기 사옥이다. 그 모태는 1898년 조선 최초의 전기회사인 한성전기회사다. 당시 보기 드물었던 엘리베이터를 도입한 근대식 건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1호로 지정됐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중국대사관거리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명동에 주둔했고, 3년 뒤 청나라 공관이 들어섰다. 광복 후 같은 자리에 대만대사관, 1992년 중국대사관이 자리 잡았고, 일대에는 중국 학교와 상점이 들어서며 중국인거리가 생겨났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중국대사관거리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명동에 주둔했고, 3년 뒤 청나라 공관이 들어섰다. 광복 후 같은 자리에 대만대사관, 1992년 중국대사관이 자리 잡았고, 일대에는 중국 학교와 상점이 들어서며 중국인거리가 생겨났다.
옛 한국은행 본점인 화폐박물관 앞 광장 ⓒ김수정
옛 한국은행 본점인 화폐박물관 앞 광장은 경성의 핵심 중심가였다. 당시 센간마에, 즉 조선은행 앞 광장이라 불렸으며 조선에서 근대소비문화가 첫 싹을 틔운 곳이다. 1912년 조선은행 본점이 준공됐는데 르네상스 양식으로 당시 남대문로 일대의 근대적 풍경을 대표했던 명소다. 근처에는 신세계백화점이 있는데, 옛 미쓰코시 백화점이다. 1930년 문을 연 조선 최초의 백화점으로 당대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선망하던 장소였다. 시골에는 미쓰코시 백화점에 가보기 위한 여행상품이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옥상공원은 이상 소설 <날개>에 등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에 우편제도를 도입한 홍영식 동상 ⓒ김수정
광장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르네상스식 건축물이 있다. 1915년에 설립된 경성우편국이다. 광복 후 서울중앙우체국이 됐으나 한국전쟁으로 크게 파손됐다. 그후 2007년 현재의 포스트타워가 들어섰고 1년 뒤 우표박물관이 개관했다. 건물 정면에는 조선에 우편제도를 도입한 홍영식을 기리는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명동에는 역사와 문화가 담긴 장소들이 더 많지만, 시간상 이곳에서 해설은 마무리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멋진 외관을 자랑하는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김수정
몇 걸음 걸으면 옛 문인과 의인들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고, 몇 걸음 걸으면 경성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었던 명동거리. 쇼핑의 거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수많은 역사가 숨어져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면 발견할 수도 없을 것 같은 표지석들을 살펴보며 화려한 명동의 거리를 조금은 천천히 걸어보면 어떨까.
명동 역사문화 투어
○ 운영시간 : 매주 화, 목, 토 오전 10시, 오후 2시
○ 소요시간 : 1시간 30분
○ 집결장소 : 명동문화공원(중구 명동길 89)
○ 참가비 : 무료
○ 예약 : 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11029160043769909&locale=ko
○ 소요시간 : 1시간 30분
○ 집결장소 : 명동문화공원(중구 명동길 89)
○ 참가비 : 무료
○ 예약 : 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11029160043769909&local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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