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치 1번지, 육조거리를 거닐다!
발행일 2021.05.25. 14:01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현장, 시민 최초 공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으로 간 것 같아!
지난 10일,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새 단장을 위한 공사 중 발굴한 조선 시대 한양의 핵심가였던 육조거리 문화재 유구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육조거리 문화재 발굴 현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시가 문화재 발굴조사를 마무리하고 사전 신청한 시민 200명에 현장을 최초 공개했다. 지난 22일 토요일 서울시민기자들이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현장 해설은 광화문광장 발굴 현장을 감독하고 있는 고고학자 (재)한울문화재연구원 박호승 부장이 맡았다.

지난 22일, 사전 신청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현장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노혜연
조선의 정치ㆍ행정의 중심가, 육조거리
광화문 앞길은 경복궁으로 출입하는 통로이자 국가의 가장 큰길이었다. 광화문 앞길은 조선 시대 최고 행정기구인 의정부를 비롯해 인사, 재정, 외교ㆍ의례, 군사, 사법, 토목 등을 담당한 6조(이조ㆍ호조ㆍ예조ㆍ병조ㆍ형조ㆍ공조)가 양편에 자리해 육조거리로 불렸다.

조선 시대 육조거리 모습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현장 해설 프로그램 자료집
광화문에서 봤을 때, 왼쪽에는 의정부, 이조, 호조, 한성부 등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삼군부, 중추부, 병조, 형조, 공조가 있었다. 또한 육조거리는 임금의 행차 경로였기도 했으며, 다양한 무예나 무과 관련 의식이 치러지기도 했다. 그만큼 육조거리는 지리적ㆍ역사적으로 매우 큰 가치를 지닌 장소라 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지역 개괄도 ⓒ서울시
조선의 육조거리, 잠에서 깨어나다!
서울시는 2019년 1월부터 2년여의 조사를 통해 전체 조사대상지 10,100㎡ 중 약 40%(4,000㎡)에서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고 고층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면서 사라진 옛 육조거리의 흔적을 발견했다. 앞서 2013년부터 7년여의 발굴조사를 통해 의정부의 유구와 유물을 확인한 데 이은 것이다. 이번 조사로, 그동안 사료를 통해 추정만 했던 삼군부(군사업무 총괄)와 사헌부(관리 감찰) 등 15~19세기 조선 시대 주요 관청의 위치와 건물 기초를 실제 유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했으며, 민가 터와 담장, 우물 터, 수로, 문지(문이 있던 자리) 등 다양한 유구를 확인했다.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삼군부 영역 전경 ⓒ서울시

삼군부 영역 행랑 외측 배수로 모습 ⓒ서울시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조선 시대 군사업무를 총괄했던 ‘삼군부’의 외행랑 기초가 발굴됐다. 육조거리를 사이에 두고 의정부와 마주 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됐던 ‘삼군부’의 위치가 실제 유구로 확인된 것이다. 또한 19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로와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건물지 일부도 함께 확인됐다.

사헌부 영역(③지점 북측) 담장 및 행랑 추정지역 전경 ⓒ서울시
세종로 공원 앞에서는 조선 시대 관리 감찰기구였던 ‘사헌부’의 유구로 추정되는 문지, 행랑, 담장, 우물이 발굴됐다. 16세기 육조거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배수로도 확인됐다. 현대해상 건물 앞에서는 민가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우물, 배수로가 조사 지역 전반에 걸쳐 발굴됐다. 이 밖에도 도자기 조각, 기와 조각 등 조선 시대 유물도 다수 출토됐다.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현장에서 시민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노혜연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현장을 감독한 고고학자 (재)한울문화재연구원 박호승 부장이 광화문광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노혜연
타임머신 타고 조선의 육조거리로!
이제 발굴조사 현장으로 직접 가볼 차례이다. 실제로 현장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기 시작했다. 먼저, 서울정부종합청사 앞 삼군부 영역으로 향했다. 태종 때 이루어진 삼군부는 세종 때 예조로 바뀌고, 고종 때 다시 군사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삼군부로 바뀌었다. 광화문 앞 해태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태상의 본래 자리는 현재 서울정부종합청사 앞 부근이라고 한다. 옛 육조거리 기준으로 삼군부 앞길, 월대 남쪽 끝으로 추정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현장에서 시민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노혜연
조선 개국 때 유구는 노란색, 세종 때는 빨간색, 고종 때는 흰색 페인트로 표시했다. ⓒ노혜연
발굴 현장에는 노란색, 빨간색, 흰색 페인트로 표시가 돼 있었다. 노란색은 조선 개국 때, 빨간색은 세종 때, 흰색은 고종 때로, 시대별로 유구를 구별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박호승 고고학자가 삼군부 영역에서 육조거리 높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노혜연
발굴조사 현장 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이 현장을 걷고 있다. ⓒ노혜연
발굴 현장은 지금의 도로보다 낮은 높이였다. 고종대 육조거리 높이로 과거에는 이렇게 거리가 낮아 광화문을 지금보다 올려다봤다고 한다. 낮은 지대에서 광화문을 올려다보니 광화문과 경복궁의 위엄이 느껴졌다. 더구나 조선 시대엔 광화문과 경복궁보다 높은 건물도 없었으니 땅의 높이 차이만으로 자연스럽게 왕실에 대한 경외감이 생겼을 것 같아 선조들의 깊은 뜻에 감탄했다.
배수로 석렬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어린이 참여자들 ⓒ노혜연

삼군부 영역 배수로에 양옆에 돌은 뾰족한 송곳니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정비했을 당시 만든 전치석이다. ⓒ노혜연
다음으로 배수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배수로는 비가 오면 육조거리에서 흐르는 물과 건물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흘러가게끔 조성했다. 양옆에 쌓인 돌들은 뾰족한 송곳니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만든 전치석(前齒石)이다.

삼군부 영역에서 발견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박아 놓은 전신주의 기둥 나무 부분 ⓒ노혜연
고개를 돌리니 나무 기둥 일부가 있었다. 박호승 고고학자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박아 놓은 전신주의 기둥 부분”이라고 설명하자 참여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사진 사료에서만 봤던 과거의 흔적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으로 간 것 같아 신기했다.
광화문광장 발굴조사 현장 해설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사헌부 영역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노혜연
사헌부 영역은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야 할 정도로 깊었다. 태조대 육조거리 높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대규모 홍수가 몇 차례 일어났는데 홍수가 일어날 때마다 계속해서 퇴적물이 쌓이면서 점차 거리의 높이가 높아졌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은 시대의 흐름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 교과서 그 자체였다.
육조거리 사헌부 발굴 현장에 대해 설명하는 박호승 고고학자 ⓒ노혜연
배수로의 석재가 전치석과는 조금 달랐다. 직사각형 형태를 가진 거친 돌은 태조 때 만들어진 석재고, 이보다 다듬어진 돌은 세종 때 석재다. 시간이 지날수록 돌을 다듬는 기술도 발전한 것이다. 이는 한양도성의 축조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친 돌은 태조 때 만들어진 석재고, 이보다 다듬어진 돌은 세종 때 석재다. 시간이 지날수록 돌을 다듬는 기술도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노혜연
사헌부 입구에선 우물도 발견됐다. 박호승 고고학자는 사헌부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발견된 거라 그 이유는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광화문 현장 문화재 해설 프로그램 마지막 순서는 발굴한 유물을 복원하는 고고학 체험 행사.
사헌부 영역에서 발견된 우물 ⓒ노혜연

사헌부 영역에서 발견된 우물 안 도자기 조각. 이번 광화문광장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선 조선 시대 유물도 다수 출토됐다. ⓒ노혜연
매장문화재를 조사하다 보면 깨진 유물들을 발견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를 체험하기 위해 깨진 시루를 참여자들이 직접 복원해봤다.
어린이 참여자와 보호자가 함께 고고학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노혜연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접합ㆍ복원하는 과정 그대로 고고학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참여자들 모두 재밌게 즐겼다. ⓒ노혜연
먼저 깨진 시루 조각들을 아래부터 맞춰나갔다. 맞춘 조각들을 본드로 붙이고, 본드로 조각이 단단히 붙는 다음날까지 고정하기 위해 종이테이프를 붙였다. 마지막으로, 유실돼 맞추지 못한 훼손 부위를 복원재 반죽으로 메웠다. 모형유물이지만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접합ㆍ복원하는 과정 그대로 고고학 체험활동을 하며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참여자들 모두 재밌게 즐겼다. 더구나 복원한 시루를 집으로 가져갈 수 있어 기념품 역할도 했다. 이날 행사는 해설 내용을 바탕으로 한 퀴즈와 유구 보존 의견 설문조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과거에도 현대에도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가 되는 광화문광장. 이날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이곳에 서서 발굴 현장과 광화문, 경복궁, 그리고 고층 빌딩을 둘러보니 역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듯 감회가 새로웠다. 서울시는 대상지 약 10,100㎡에 대한 총 9단계에 걸친 문화재 발굴조사를 진 행 중이며, 현재는 마지막 9단계 마무리 작업 중으로 이달 말 최종 완료된다.
서울시는 현장 공개에 참여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향후 광화문광장 유구 보존 방향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육조거리가 잘 보존되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역사를 견학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이자 열린 광화문광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서울시는 현장 공개에 참여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향후 광화문광장 유구 보존 방향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육조거리가 잘 보존되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역사를 견학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이자 열린 광화문광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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