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화, 처음이야! 예술치유단체 '몸의대화'

시민기자 정혜린

발행일 2021.04.28. 13:00

수정일 2021.04.28. 18:11

조회 1,030

무중력지대에서 진행한 '문화요일' ⓒ무중력지대
무중력지대에서 진행한 '문화요일' ⓒ무중력지대

중력을 벗어나고 싶어? 무중력지대로 와!

사회의 중력이 버겁게 느껴지는 청년이 있다면 주목해보자. 서울에는 청년들이 보다 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중력지대'가 있다. 무중력지대는 2015년 G밸리 첫 개관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 7곳(대방동, 양천, 도봉, 성북, 서대문, 강남, 영등포)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청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 주제도 진로, 창업, 문화예술, 마음과 신체 건강, 생활지원 등 다양하다.  

무중력지대가 이번에 또 한 번 재미난 기획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바로 ‘문화요일’이다. 이 날은 문화예술 기획자들의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를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4월 한 달간 매주 화요일 총 4회에 걸쳐 은밀한 예술담화가 진행된다.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 예술치유단체 '몸의대화', 문래동마임극장 '스튜디오QDA', 보편적예술단체 '제너럴쿤스트' 등 강사들의 라인업도 대단하다. 각 강의는 참가자를 10명 이내로 모집하고, 줌(Zoom)을 활용한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필자는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몸의대화'를 라인업에서 발견했을 때 무척이나 기뻤다. 곧장 '문화요일'을 신청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몸의대화'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몸의대화' 팀소개 ⓒ몸의대화
'몸의대화' 팀소개 ⓒ몸의대화

문화예술 기획자들과의 대화, 어떻게 다를까?

예술치유단체 '몸의대화'는 캐주얼한 정신건강 관리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기획자, 심리학도, 배우가 모여 만든 단체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치유'의 개념을 보편화 시키고자 한다. 작정하고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는 것만이 치유가 아닌, 일상 속에서도 마음을 치유하고 스스로를 환기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프로그램들의 개발을 목표로 두고 있다. 

실제로 '몸의대화'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집단상담의 모습이기도 하고, 놀이치료, 미술치료, 연극치료, 보드게임 형태 등 다양하다. 그 실례로 일상 속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보는 '시즌제 예술치유 워크샵-몸의대화',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아 보는 '제가 비밀이 하나 있는데요', 사회의 규정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를 일깨워보는 '내속도로 캠페인' 등의 워크샵을 들 수 있다.  
'몸의대화' 워크샵 소개
'몸의대화' 워크샵 소개 ⓒ몸의대화

필자는 일을 끝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무중력지대에서 받은 줌 주소를 서둘러 접속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접속이 되자 낯설지만 밝은 표정의 참가자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몸의대화'와의 문화요일은 일방적인 강의형식이 아닌 쌍방향 소통으로 2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크게 4가지 순서로 구성되었다. 첫째, 참가자들의 '조금 특별한 자기소개', 둘째, 익명성 속 안전한 '제가 비밀이 하나 있는데요', 셋째, '몸의대화'가 걸어온 길에 대한 소개, 그리고 마지막은 '몸의대화'에게 궁금한 점을 자유롭게 묻고 답을 듣는 시간이었다. 

이름 속 자음과 모음으로 자기소개를 해 보라고?

자기소개는 언제해도 부담스럽다. 본인의 나이나 직업을 이야기해야 할 때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한다. 이는 쉽게 타인에 의해 판단되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런데 '몸의대화'는 자신의 이름 속 모음과 자음을 활용해 자기소개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신선한 방식이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이름을 말하는 것은 진부할 정도로 익숙했지만 이름을 관찰해 보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가지각색의 모양들에 비추어 자신의 성격이나 꿈 등을 자유롭게 소개해 보았다. 고심할 필요 없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면 그만이었다. 

필자는 'ㅖ'를 꺼내 들었다. 이 모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필자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할 때가 많아 번거로울 때도 있지만, 'ㅖ'의 그 복잡 미묘함만큼이나 필자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것도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암묵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기준에 맞춰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우면서도 스스로를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었다. 
몸의대화의 '제가 비밀이 하나 있는데요' 프로그램
'몸의대화'의 '제가 비밀이 하나 있는데요' 프로그램 ⓒ몸의대화

처음 본 사람들에게 비밀 털어놓기

그 다음 순서는 '제가 비밀이 하나 있는데요'였다. '몸의대화' 진행자는 지금부터 털어놓고 싶은 비밀을 적어 볼 시간을 20분 주겠다고 했다. '아니,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라도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생전 처음 본 사람들에게?' 당황스러웠고 순간 겁도 났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 진행자는 이 비밀들을 진행자에게 보내주면 익명성을 보장한 채 무작위로 다른 사람에게 이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화자를 모르는 비밀을 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것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다른 참가자들에게 털어놓는 활동이었다. 모두의 얼굴을 드러낸 채 본인의 비밀이 공개되지만, 그것이 완전히 비밀로 부쳐질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한참 고민 끝에 필자의 비밀을 써서 보냈다. 누구의 입에서 그 비밀이 나올 지 조마조마했고, 발설될 때는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밀이라는 것은 항상 꽁꽁 싸고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의 입에서 그 이야기는 쉽게 흘러나왔고, 그것을 듣고 공감하는 다른 참가자들의 표정을 보니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 이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비밀의 본질을 뒤엎어, 그의 위력을 무력화시키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자신에게 하염없이 커다랗게 보였던 고민을 털어 놓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다. 
'몸의대화'의 시작
'몸의대화'의 시작 ⓒ몸의대화

'몸의대화'와의 진솔한 대화, 그리고 투명한 태도

참가자들과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마친 후, '몸의대화'가 걸어온 길을 들었다. '몸의대화'의 첫 시작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였다. 농담 따먹기, 피상적인 대화에 피로감을 느낀 어느 날, 그들은 재미삼아 새로운 방식의 대화를 시도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숟가락 위에 작은 초를 올린다. 그리고 그것을 한 사람씩 차례로 들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우스갯소리를 하였지만, 초가 타오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점점 마음 속 깊숙한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리고 급기야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시작으로 더 캐주얼하고 다양한 대화 방식을 개발하기로 하였고, 청년허브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해서 서울문화재단 청년청의 시민들과의 마음치유 워크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춘천 원도심 내, 빈집을 재생한 공간에 입주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곳은 죽어있던 공간에서 지역 내외 주민들이 마음을 드러내 교류할 수 있는 신호등이자,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몸의대화'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유롭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프로그램 기획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팀원과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몸의대화의 비젼은 무엇인가요?' 등 여러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몸의대화'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에 '공간'의 중요성을 말했다. 안전하고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거점지가 마련되는 것, 혹은 생각을 환기 시킬 수 있는 곳으로 팀원과 캠프를 떠나는 것 등이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또 팀원들과의 롱런 비결은 서로의 강점을 잘 알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그들의 비젼은 '확실한 수익을 내는 비지니스 모델의 구축'이라고 했다. 팀원들과 즐겁게, 가치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운영방식의 고민은 필수다. 

몸의대화는 여러 질문들에 명쾌하고 솔직하게 대답하며 시종일관 투명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껏 몸의대화가 진행했던 각종 프로그램들은 아이디어만으로 빛난 것이 아닌, 이것을 만든 사람들의 진솔한 태도를 통해 완성되었음을 절실히 느꼈다. 
현재 '몸의대화'가 진행중인 빈집재생 프로젝트
현재 '몸의대화'가 진행하고 있는 빈집재생 프로젝트 ⓒ강원살이

문화요일, 꿈을 현실로 만드는 네트워킹 시간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후, 문화요일이 마무리되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몸의대화'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몸소 체험하고, 또 그들의 지나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회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일들을 목도하였다. 문화예술업계에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또 이를 실현해내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은 단순히 조언을 넘어서서 용기를 얻을 수 있게 한다. 그저 마음속 꿈으로만 간직하던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자꾸만 충동질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제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줌을 통해 다양한 꿈을 지닌 청년들을 만날 수 있던 ‘문화요일’은 참 값지고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 무중력지대 홈페이지 :https://youth.seoul.go.kr/site/youthzone/home
○ 예술치유단체 '몸의대화' 인스타그램 : @naked_frames8

시민기자 정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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