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옛집 안마당에서 섬섬옥수, 수를 놓아볼까?

시민기자 강사랑

발행일 2021.04.09. 10:00

수정일 2021.04.09. 17:48

조회 1,541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옛 그림을 자수 작품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백여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한옥 간송옛집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간송 옛집의 대표 강좌 ‘섬섬옥수, 옛 그림을 수놓다’가 긴 공백을 깨고 재개된 것이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강좌 접수에 성공한 10명의 참여자들이 간송옛집 안마당에 모였다. 

일반적으로 자수 강좌는 실내에서 이뤄지기 마련인데, 간송옛집의 ‘섬섬옥수, 옛 그림을 수놓다’는 야외 수업을 선택했다. 고택의 안마당에 천막과 테이블이 여러 개 놓였고, 테이블마다 방역을 고려한 투명한 아크릴판이 설치되었다. 봄을 맞이한 자연의 경관과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야외 수업은 그 자체로 특별한 운치를 자아냈다.
간송옛집에서 '섬섬옥수, 옛 그림을 수놓다' 강좌가 시작되었다.
간송옛집에서 '섬섬옥수, 옛 그림을 수놓다' 강좌가 시작되었다. ⓒ강사랑

강좌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대부분 자수를 처음 접해보는 중년의 여성들이다. 강사로 나선 이는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양 자수 전문가 한경애 씨. 간송옛집의 ‘섬섬옥수, 옛 그림을 수놓다’는 프랑스 자수의 기본 기법을 익혀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옛 그림을 자수작품으로 표현해보는 강좌이다. 4월 2일~7월 9일까지 총 15강의 강좌가 진행되고, 이후에는 약 10회 정도 동아리 활동이 이어진다. 참여자들의 최종 목표는 해마다 10월이면 간송옛집에서 열리는 ‘간송 오마쥬, 솜씨좋은 나날’ 행사에 본인의 자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다.
자수 기법을 배우면서 전시회 출품까지 할 수 있다.
자수 기법을 배우면서 전시회 출품까지 할 수 있다. ⓒ강사랑

기나긴 여정의 첫 번째 시간인만큼 참가자들 사이에서 기대와 설레임이 느껴졌다. 강사의 지도에 따라 수틀을 잡고 백스티치(박음질)로 수 놓는 기법을 익히는 모습은 누구 할 것 없이 진지했다. 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꽃 하나를 수놓을 때에도 다양한 색실을 풍성하게 수놓아야 예쁜 결과물이 나온다고 한다. 한 땀 한 땀 정성어린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작업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강사에게 요청해 수업 중 자세한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정성스럽게 자수를 놓는 참가자들의 모습
정성스럽게 자수를 놓는 참가자들의 모습 ⓒ강사랑

강사 한경애 씨는 “참여자 분들이 낙오하는 일 없이 긴 여정을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죠. 간송 오마쥬 행사에서 본인의 작품을 전시하게 될 즈음에는 모두들 자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솔직히 이런 수업은 어디에도 없는 수업이에요. (유일하게) 간송옛집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거죠.” 라고 설명했다. 10월마다 열리는 간송 오마쥬 행사에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하고 꼼꼼한 자수 작품으로 재탄생한 간송미술관의 옛 그림들은 또다른 예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전 과정이 전문 강사의 지도 하에 이뤄진다.
전 과정이 전문 강사의 지도 하에 이뤄진다. ⓒ강사랑

이쯤에서 간송 전형필 선생과 간송옛집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졌다시피,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강점기시절 유실, 유출되는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유명한 일화로 ‘훈민정음 해례본’ 사건이 있다.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밝혀내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 이 문화재는 간송이 당시 매매가의 11배, 즉 1만 1,000원을 주고 구입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문화재의 가치를 중요시여겨 무엇보다 제대로 값을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간송옛집 현판 모습
간송옛집 현판 모습 ⓒ강사랑

또한 국보 제65호 ‘청자기린형향로’, 국보 제66호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 국보 제270호 ‘청자원형연적’ 등 소중한 우리 문화재들을 지켜내었다. 간송이 지켜낸 문화재들은 지금까지 우리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집한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이 설립되었다. 간송이 수집하고 지켜낸 대표적인 문화재들은 현재 성북구 성북로에 있는 간송미술관에서 보존, 연구, 전시중이다.
누마루가 있는 본채 건물 모습, ‘玉井硏齋(옥정연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누마루가 있는 본채 건물 모습, ‘玉井硏齋(옥정연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강은혜

한편 간송옛집은 간송 전형필의 생전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간송의 양부 전명기(1870~1919)가 지은 집으로, 간송은 양주군의 농장을 방문할 때나 부친의 제사를 모실 때 자주 이곳에 들러 생활했다고 한다. 고택 옆에는 간송의 양부와 간송 부부의 묘소가 마련되어 눈길을 끈다. 

한때 간송옛집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은 채 관리되어 오다가 2015년 도봉구와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복원하고 개관했다. 간송옛집에서는 해마다 전통 성년례, 봄,가을 음악회, 간송 오마쥬, 간송 야행 등 도봉구의 굵직굵직한 문화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작년 코로나 사태 이후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지만, 올해 초부터 부분 운영을 재개하면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곳은 매 시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전화로 사전예약을 하고 해당 시간에 맞춰 방문을 하면 관람이 가능하다. 전자출입명부(QR코드) 또는 수기명부 작성과 방역을 위한 발열체크, 손소독은 필수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관람제한인원을 초과하면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간송옛집 내부 모습
간송옛집 내부 모습 ⓒ강은혜

간송옛집의 ‘섬섬옥수, 옛 그림을 수놓다’ 강좌는 오는 7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된다. 참가자들 중에 간송옛집과 가까운 동네에서 찾아왔다고 밝힌 최귀주 씨(도봉구 방학동 거주)는 "코로나 때문에 답답해서 이런 저런 활동을 알아보다가 친구와 함께 이번 강좌를 신청하게 되었다"며 "자수를 처음 배우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열심히 배워서 전시회에 작품을 내놓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간송옛집 정문을 보니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고 쓰인 한자가 눈에 들어온다. 바야흐로 어딜가나 꽃이 흐드러지게 핀 완연한 봄이다. 작년 한 해 침체를 겪었던 서울시의 크고 작은 문화시설과 명소들이 올해에는 꽃피우듯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간송옛집 관람 안내

○ 주소 : 서울 도봉구 시루봉로 149-18(방학동)
○ 가는법 : 4호선 쌍문역(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도봉07 환승, 방학동천주교성당 또는 방학동신동아타워 하차
○ 개방시간 : 매일 09:00~18:00
○ 휴무일: 매주 월요일, 신정, 설날·추석연휴
○ 입장료 : 무료
○ 홈페이지 : www.kansonghouse.kr
○ 문의 : 02-954-5757(사전 예약)

시민기자 강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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