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어머니 모신 '칠궁'은 왜 궁궐이 아닐까?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03.17. 10:50

수정일 2021.03.17. 18:05

조회 3,221

왕을 낳은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사당 '칠궁(七宮)'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후,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그런데 서울에는 또 하나의 왕실 사당이 있다. 청와대 바로 옆에 있는 '칠궁'이다. 아들이 왕이 되었으나 왕비가 아니었기 때문에 종묘에 배향되지 못한 일곱 어머니의 사당이다. 
무궁화동산에서 길을 건너면 칠궁이다. 외삼문 뒤로 청와대 영빈관이 보인다.
무궁화동산에서 길을 건너면 칠궁이다. 외삼문 뒤로 청와대 영빈관이 보인다. ⓒ이선미

처음부터 칠궁(七宮)이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 자리는 1725년 영조 임금이 어머니 숙빈 최씨를 기리며 지은 사당으로 처음에는 숙빈묘라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 1753년 영조 임금이 묘를 궁으로 승격해 ‘육상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리했다. 사적 제149호인 칠궁의 공식 명칭 역시 ‘서울육상궁’이다. 영조는 재위 기간에 200여 차례나 육상궁을 찾았다고 한다. 
지금의 칠궁은 영조 임금의 어머니를 모신 육상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칠궁의 육상궁 영역
지금의 칠궁은 영조 임금의 어머니를 모신 육상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선미

그 후 1870년 연호궁이 육상궁 안으로 옮긴 것을 시작으로 1908년에는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자리를 잡았고, 마지막으로 영친왕의 어머니이자 고종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사당이 1929년 옮겨와 칠궁이 되었다. 그 가운데 선희궁과 경우궁, 육상궁과 연호궁에는 각각 두 분의 신주를 모셔 사당 건물은 모두 다섯이다. 
1929년 덕안궁이 옮겨와 칠궁이 되었다.
1929년 덕안궁이 옮겨와 칠궁이 되었다. ⓒ이선미

종묘와 달리 칠궁은 좀처럼 찾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아예 관람 자체가 금지됐다가 2001년부터는 청와대 관람코스로만 운영되었다. 칠궁만 따로 관람할 수 있게 된 것은 2018년의 일이다. 

칠궁을 생각하면, 늘 숙연해졌다. 어떤 이들은 후궁의 신분이어서 종묘에 배향되지 못한 한이 서린 곳이라고도 표현했다. 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안타까움은 느껴졌다. 그 공간에 들어서는 건 무척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했다. 설렘과 경외와 쓸쓸함 등이 뒤섞였다. 
칠궁은 무궁화동산에서 현장접수하고 관람할 수 있다.
칠궁은 무궁화동산에서 현장접수하고 관람할 수 있다. ⓒ이선미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았던 칠궁이 다시 개방을 한다고 해서 찾아갔다. 무궁화동산 한쪽에 있는 안내부스에서 관람을 신청하고 잠시 기다렸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세상을 떠난 궁정동 안가가 있던 곳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그 현장을 치우고 무궁화동산으로 조성했다. 이래저래 역사의 엄중함을 기억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옛 궁정동 안가가 무궁화동산으로 조성되었다.
옛 궁정동 안가가 무궁화동산으로 조성되었다. ⓒ이선미

시간이 되자 횡단보도를 건너 칠궁으로 들어섰다. 문 앞에 하마비가 서 있었다. 외삼문을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수십, 수백 년이 된 나무들의 짙푸른 그늘 속으로 들어섰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경건한 공간이라는 걸 상기시킨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경건한 공간이라는 걸 상기시킨다. ⓒ이선미
수십, 수백 년이 되니 나무들이 짙푸른 그늘을 만든다.
수십, 수백 년이 되니 나무들이 짙푸른 그늘을 만든다. ⓒ이선미

코로나19 때문에 자유관람 형태로 진행이 되고 있지만 재실 앞에서 간략한 안내가 있었다. 칠궁의 의미와 대략적인 동선 등을 전해 듣고 육상궁 쪽으로 향했다. 
제례를 준비하던 재실, 풍월헌과 송죽재 뒤로 육상궁 영역으로 들어가는 중문이 보인다.
제례를 준비하던 재실, 풍월헌과 송죽재 뒤로 육상궁 영역으로 들어가는 중문이 보인다. ⓒ이선미
공사 중이어서 조금 어수선했지만 사당으로 향하는 길은 조심스러웠다.
공사 중이어서 조금 어수선했지만 사당으로 향하는 길은 조심스러웠다. ⓒ이선미

칠궁의 근거가 된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사당이었다. 공사 중이어서 조금 산만한 분위기였지만 사당으로 향하는 길은 몸가짐을 돌아보게 했다. 중문을 들어서 사당 영역에 접어들자 삼문이, 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름다웠다. 저만큼 삼문 안에 자리한 육상궁 현판이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게 했다. 지엄한 공간이었다. 
육상궁으로 들어가는 삼문은 아름다웠다.
육상궁으로 들어가는 삼문은 아름다웠다. ⓒ이선미

1725년부터 이곳에 자리한 육상궁은 영조의 어머니이며 숙종의 후궁이었던 숙빈 최씨를 기억하는 사당이다. 이곳엔 독특하게도 숙빈 최씨의 며느리 정빈 이씨의 사당인 연호궁도 합사돼 있어서 현판 역시 두 건물을 가리키고 있다.  
연호궁 안쪽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현판은 여전히 ‘육상묘’라고 쓰여 있다.
연호궁 안쪽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현판은 여전히 ‘육상묘’라고 쓰여 있다. ⓒ이선미

칠궁은 육상궁 영역에서 냉천정을 지나 대빈궁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다. 냉천이라는 우물가에 있는 냉천정에는 영조의 어진이 모셔져 봉안각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냉천정 영역이 공사중이어서 그 아름답다는 풍광을 만날 수 없었다. 4월이 지나야 완료된다고 하니 꽃피고 새 우는 오월에 칠궁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공사중이어서 볼 수 없는 냉천정의 모습을 가림막으로 보여주었다.
공사중이어서 볼 수 없는 냉천정의 모습을 가림막으로 보여주었다. ⓒ이선미

냉천정 주변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삼문을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나왔다. 재실을 거쳐 다시 짙푸른 나무를 지나 또 하나의 삼문으로 들어섰다. 덕안궁이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삼문을 들어서 대빈궁 영역으로 들어선다.
또 하나의 삼문을 들어서 대빈궁 영역으로 들어선다. ⓒ이선미

이안청을 지나 대빈궁 앞에 서자 고양 서오릉에 있는 희빈 장씨의 무덤이 생각났다. 일반적으로 후궁들의 무덤은 ‘원’이지만 그의 무덤은 ‘대빈묘’이다. 처음 대빈묘 앞에 섰을 때 무척 당황했다. 서오릉에서도 구석진 자리에, 보통 후궁들의 묘소에 배치되는 석마 등도 없이 너무 초라하게 방치된 느낌이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어느 정도 정비를 해서 소박한 묘역이 단아해 보이기도 한다.
서오릉에 있는 희빈 장씨의 ‘대빈묘’
서오릉에 있는 희빈 장씨의 ‘대빈묘’ ⓒ이선미

서오릉에는 칠궁에 모셔진 또 한 어머니, 선희궁의 주인인 영빈 이씨의 무덤 수경원도 있다. 원래 연세대학교 안에 있었던 묘를 1969년 옮겼는데 정자각은 그대로 옛 자리에 남아 있고, 비석만 서오릉에 있다. 
영빈 이씨의 무덤 ‘수경원’도 서오릉에 있다. 정자각은 옛 자리에 있고 비석만 옮겼다.
영빈 이씨의 무덤 ‘수경원’도 서오릉에 있다. 정자각은 옛 자리에 있고 비석만 옮겼다. ⓒ이선미

칠궁의 대빈궁은 대빈묘와는 달리 한때 왕비였던 희빈 장씨의 위치를 조금은 기억하도록 몇 가지 장치가 있었다. 특히 다른 건물의 사각 기둥과 달리 둘레를 둥그렇게 깎은 두리기둥이 화려함을 더하고, 다른 건물에 비해 한 단 높은 계단과 창호의 철물들 역시 보다 격조 있게 꾸몄다. 
대빈궁 영역에는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과 경우궁이 이어져 있다.
대빈궁 영역에는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과 경우궁이 이어져 있다. ⓒ이선미

왕들의 사모곡이 어린 칠궁은 오랫동안 금단의 공간이었다. 청와대와 바로 붙어 있어서 지금도 조심스러운 곳이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찾아가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우리 옛 역사와 현대사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칠궁,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칠궁은 또 하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대빈궁 영역에서 바라보는 육상궁 영역
대빈궁 영역에서 바라보는 육상궁 영역 ⓒ이선미

■ 칠궁 관람 안내

○ 위치: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2 삼락당
○ 가는법: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도보 20분
○ 관람시간 : 매주 화~토요일(주5일/일~월요일 휴궁), 
- 1일 7회 시간제 자유관람(9:20, 10:20, 11:20, 13:20, 14:20, 15:20, 16:20), 50분간
○ 관람요금 : 무료
○ 문의 : 경복궁(칠궁)관리소 02-734-7720
※ 코로나19 방역 강화로 현재는 현장 접수만 가능합니다. 매회 50명 제한.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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