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그 힘들었던 투쟁의 현장! '창동역사문화길'

시민기자 신병국

발행일 2021.02.22. 14:28

수정일 2021.02.22. 15:52

조회 2,028

근현대사의 주역들이 살았던 도봉 명소 '창동역사문화길' 탐방

지난 설 연휴, 도봉구 6개의 도봉역사문화길 중 제4길인 ‘창동역사문화길’을 탐방했다. 이 길은 도봉구민회관 옆에 조성된 창동역사문화공원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 거주했던 근현대 인물들의 옛 집(터)을 돌아볼 수 있는 탐방길이다. 약 3.5㎞의 탐방 구간은 창동역사문화공원→창동리 석조이정표→벽초 홍명희 옛집터→창동3사자(김병로, 정인보, 송진우) 옛집터→양주목사선정비→전태일 옛집터→함석헌기념관으로 이어진다.

시작점인 창동역사문화공원에 도착하니 코로나19 도봉구 임시선별진료소가 설치돼 다수의 시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동3사자인 가인 김병로, 위당 정인보, 고하 송진우 선생의 동상
창동3사자인 가인 김병로, 위당 정인보, 고하 송진우 선생의 동상 ⓒ신병국

일제 강점기의 아픔 되돌아보게 하는 창동역사문화공원

창동역사문화공원은 도봉을 빛낸 근현대사 인물을 주제로 한 역사공원이다. 지역 역사를 널리 알리고 구민들의 자긍심 고취,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의 장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특히 창동의 세 마리 사자라 불리는 가인 김병로, 위당 정인보, 고하 송진우 선생의 동상이 눈길을 끈다. 창동의 세 마리 사자는 일제 강점기 일제의 협력을 거부하고 일제에 항거하면서 감시와 탄압을 피해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에 은둔했던 독립운동가 세 분을 일컫는 말이다. 이와 함께 공원입구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일제 강점기의 아팠던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평화의 소녀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평화의 소녀상 ⓒ신병국

창동리 석조 이정표! 마을입구에 세운 빗돌의 시원적인 형태

‘창동’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양곡창고가 이 지역에 있어 ‘창골’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이다. 돌로 만들어진 창동리 이정표는 1995년 복원해 창5동사무소 옆에 옮겨졌던 것이 2015년 원래 위치(창동초 옆 공터)로 되돌아왔다. 가로 38㎝, 높이 73㎝, 두께 19㎝의 화강암에 '倉洞里(창동리)'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정표는 마모가 심해 알아보기 힘들지만 동명(洞名)을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의 마을입구에 세운 빗돌의 시원적인 형태로 의미가 있어 도봉구의 향토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거친 화강암 재질에  '倉洞里(창동리)'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거친 화강암 재질에 '倉洞里(창동리)'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신병국

조선 3대 천재 벽초 홍명희의 발자취!

다음으로 벽초 홍명희 선생의 옛 집터를 찾았다. 홍명희 선생의 집터는 도봉구 신도브레뉴아파트 103동이 본래 위치이나 현재 창5동주민센터 남쪽의 작은 공원 입구에서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소설창작, 언론활동, 정치활동 등의 다양한 활동에서 두각을 보인 그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이광수,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다.

1928년부터 1940년까지 13년 동안 투옥과 개인 사정 등으로 연재가 4차례 중단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최고의 우리말 사전’이라 일컬어지는 소설 '임꺽정'을 조선일보에 연재해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홍명희 선생은 문학가로서의 업적과 항일 운동가로서의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해방 후 사회주의자로 활동하고 월북해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점 때문에 우리사회에서의 평가는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창5동주민센터 남측의 작은 공원 앞에 세워진 벽초 홍명희 선생의 옛집터 안내표시판
창5동주민센터 남측의 작은 공원 앞에 세워진 벽초 홍명희 선생의 옛집터 안내표시판 ⓒ신병국

창동의 세 마리 사자! 인걸(人傑)은 간데없고 안내판만 덩그러니

창동3사자의 옛 집터는 지역 개발로 옛 가옥은 찾아볼 수 없고 안내표시판만 남아있다. 가인 김병로 선생의 집터는 창희빌리지(도봉로 134길 14) 앞에, 위당 정인보 선생의 집터는 청안빌라 입구(도봉로 595-1)의 간판가계 앞 도로변에, 또 고하 송진우 선생의 집터는 북한산 한신휴플러스아파트 입구(도봉로136가길 69) 칼국수집 앞에 설치되어 있다. 

안내판을 둘러보며, 창동3사자에 대해 알고 있는 시민이라면 유용한 정보지만 모르는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통행에 불편을 주는 구조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또한 가끔 이 주변을 왕래했으나 그것이 무슨 용도인지 인식하지 못했었다. 도로명 주소를 확인하지 않고 지도만 들고 시작한 이번 탐사는 안내표시판을 찾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앞으로는 안내표시판만 설치된 문화유적지를 탐방할 때 반드시 도로명 주소를 확인하고 상세지도를 지참해야겠다.
왼쪽부터 김병로, 정인보, 송진우 선생의 옛 집터를 알리는 안내표시판
왼쪽부터 김병로, 정인보, 송진우 선생의 옛 집터를 알리는 안내표시판 ⓒ신병국

양주목사 선정비! 위민정신의 시작

양주목사 선정비는 도봉구 향토문화재로 조선시대 양주지역(현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양주시)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지방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세운 비다. 도봉구보건소(쌍문2동 주민센터) 앞에 자리했다. 이곳에는 양주목사 이여적, 임한수, 이봉의와 양주군수 홍태윤 등 선정비 4기가 설치되어있다. 이 선정비는 조선 영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건립되었는데 이 중 1903년(고종 40)에 세워진 홍태윤의 비는 목사가 아닌 군수로 표시돼 20세기 전후 양주가 행정적으로 재편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이번 탐방에서는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가 선정비 앞에 설치되어 있어 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동사무소 직원에게 위치를 확인하고 진료소 관계자에 양해를 구한 후 선정비를 촬영할 수 있었다. 조속히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자유로운 관람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왼쪽부터 양주목사 이여적, 임한수, 이봉의와 양주군수 홍태윤의 선정비
왼쪽부터 양주목사 이여적, 임한수, 이봉의와 양주군수 홍태윤의 선정비 ⓒ신병국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운동의 역사 전태일 집터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 ‘전태일’의 옛 집터는 삼익세라믹아파트 112동(도봉구 해등로 195)이지만 안내표시판은 서울창경 북측 모퉁이(쌍문동 174-17)에 설치되어 있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 셋의 젊은 나이로 온몸을 불사르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고 외치며 자결해 이후 노동운동과 사회계층의 권익향상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봉구는 지난해 11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기념해 옛 집터 근처 도로에 ‘전태일길(ChunTaeil-gil)’이라고 명예도로명을 부여해 열사의 고귀한 정신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서울 창경초 모퉁이의 전태일 열사 옛집터 안내표시판
서울 창경초 모퉁이의 전태일 열사 옛집터 안내표시판 ⓒ신병국

한국의 간디! 인권운동가 함석헌

함석헌 가옥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기념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권운동가로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 함석헌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쌍문동 가옥을 최대한 보존 리모델링해 작은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함석헌은 시인, 교육자, 사상가, 언론인, 역사가로서 일제강점기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으며, 1958년에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발표해 당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그 후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을 펼쳐 우리나라 최초로 1979년과 1985년 2번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인물이다. 기념관은 코로나19로 1층 전시실, 유리온실, 씨알갤러리에 한정해 부분 개관 중이다. ☞함석헌기념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우리나라 최초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함석헌 기념관 전경
우리나라 최초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함석헌 기념관 전경 ⓒ신병국

이번 창동역사문화길을 탐방하며 필자는 도봉구에 살았던 창동3사자의 민족정신과 독재에 맞서 싸우던 기백을 배우고 홍명희 선생의 생애를 통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창동 지명 유래와 함께 전태일 열사의 숭고한 정신도 읽을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함석헌 기념관을 둘러보며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고 2번이나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 도봉구에 살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 아주 보람찬 탐방이었다. 

■ 창동역사문화길

○ 코스: 창동역사문화공원→창동리 석조이정표→벽초 홍명희 옛집터→창동3사자(김병로, 정인보, 송진우 옛집터)→양주목사선정비→전태일 옛집터→함석헌기념관 (약 3.5㎞ 구간)
○ 출발: 도봉구민회관 옆 창동역사문화공원
- 가는법: 쌍문역 1번 출구 의정부방향 도보 5분, 창동역 2번출구 도보 10분 거리
○ 홈페이지☞바로가기
○ 문의: 도봉구 문화관광과 02-2091-2264

시민기자 신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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