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김치가게 찾아가봤더니...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유태웅

발행일 2011.11.15. 00:00

수정일 2011.11.15. 00:00

조회 5,936

주인 할아버지가 사진도 안 찍겠다는 통에 겨우 옆모습만 한 컷... 대신 군침 도는 김치 사진만 잔뜩 찍어왔다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김장철이다. 이맘때 김장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겨울맞이 풍경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마당 한가득 배추를 쌓아 놓고 김장하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온라인쇼핑몰을 이용해 1년 내내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집안까지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과 소비 형태가 변하고 온라인쇼핑몰이 활황기를 맞고 있는 요즘, 서울의 한 지역에서 30년 동안 김치를 직접 담가 판매해 온 김치가게가 있다. 온라인쇼핑몰이 대세인 요즘에도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가게에서만 김치를 팔고 있다고 한다. 그 연륜만큼이나 김치맛이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 직접 그 가게를 찾아가 보았다.

서울시 묵동 도깨비시장 입구에 있는 ‘ㄷ김치’집은 지난 1981년부터 김치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김치가게의 ‘원로’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올해로 30년째. 조그만 가게에선 포기김치와 겉절이, 오이소박이와 무김치, 갓김치와 파김치 등을 팔고 있다. 가게 연륜만큼 주인도 70대 안팎으로 보이는 노부부다. 누구 앞에 나서는 것이 싫다는 노부부와 가게 이름도 부부의 이름도 내지 않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취재가 가능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다보니 종종 신문사 기자가 찾아오곤 했지만 그저 조용히 장사하겠다며 매번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주인 부부는 금슬이 좋다. 김치를 담그는 일은 예순여덟 아내의 몫. 전북 고창이 고향인지라 전라도 김치맛이 배어 있어 예전부터 이 맛을 찾는 단골손님이 많다. 도매시장에서 김치 재료를 구입하거나 배달하는 일은 일흔 둘인 남편이 담당하고 있다. 가게는 작지만 한창 장사가 잘 되었을 때는 하루에 용달차 한 대 분량의 김치가 판매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단골손님 위주로 장사를 하고 있는데 대구나 천안 등 지방은 물론, 외국에서도 이 가게 김치만을 찾는 손님이 있다. 외국에 나가서도 고국의 김치맛을 잊지 못한 단골손님이 친척을 통해 구입해 간다는 것. 지방 단골손님의 경우 원할 경우엔 택배로 보내주지만 직접 차를 몰고 가게를 찾는 손님도 많다.

‘ㄷ김치’가게가 위치한 곳은 육군사관학교 근처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가게의 김치맛을 잘 알고 있다. 한 때는 영화 <우생순> 소재가 되기도 한 국가대표 핸드볼 여자선수단이 해외 원정 나갈 때 이 김치가게 김치를 챙겨가기도 했다. 자세히 물으니 지난 1990년대에 약 2년 정도 태릉 국가대표 선수촌에 김치를 직접 납품했었다고 한다. 이 맛을 기억하고 있던 당시 핸드볼 대표 선수들이 김치 먹기가 힘든 해외에 나갈 때면 큰 통에 김치를 한가득 담아 원정길을 떠났다는 것.

시장 입구에서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김치가게

노부부는 지난 세월 겪었던 일화도 하나 들려줬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학교 다닐 때 부모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이 가게 단골인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집에 놀러온 노부부의 아들에게 “네 부모님은 훌륭한 분들이다”라는 칭찬을 해 주었고 그 말에 힘을 얻은 노부부의 아들은 사춘기를 잘 이겨냈다. 그 아들은 장성해 부모님에게 손주도 안겨주었다.

노부부는 이젠 나이가 들어 돈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한다. 자식도 다 커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다. 다만 항상 단골집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고마운 손님들이 있으니 체력이 남아 있는 한 가게문을 닫을 순 없다고 한다. 온라인쇼핑몰을 이용해 편리하게 김치를 구매할 수 있는 시대임에도 재래시장 한켠을 지키고 있는 이 김치가게. 오랜 세월을 지속해온 꾸준한 맛과 고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여전히 단골손님이 찾게 만드는 이 가게는, 재래시장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롤 모델’이지 싶었다.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 안 냉장실 속에 있던 먹음직스러운 겉절이 한 쪽을 들어서 입에 넣었다. 역시 맛 좋기로 소문난 전라도 김치맛이었다. 단골손님 입맛을 잡는 숨은 비결을 조심스럽게 물으니 “우리 집만의 비밀이라 말해 줄 수 없지요"라는 미소 띤 대답이 돌아온다. 역시 우문현답이었다.

사실, 조리법 등 맛의 비결은 특별히 없다고 한다. 다만 재료를 최상 품질의 것만을 사용한다는 것. 예를 들면 젓갈의 경우에도 최고로 신선한 것만을 골라 사용한다. 또 옛 할머니들이 담가 먹던 그 김치처럼 김치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이렇게 그집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몇 시간 전 집어 먹었던 그 겉절이의 감칠맛이 입안을 맴돈다. 별 욕심 없이 단골손님을 위해 김치를 버무리는 주인 부부의 푸근한 성품과 딱 어울리는 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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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김장 #김치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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