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으로 보여준 큰 사랑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조은영

발행일 2011.02.07. 00:00

수정일 2011.02.07. 00:00

조회 3,326

연일 이상한파로 꽁꽁 얼어붙었던 영하의 날씨가 한풀 꺾여 설 준비로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어깨에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던 지난 1월 31일. 송파구 거여동의 한 뒷골목이 북적거렸다. 40여 명의 노인들이 모여 따뜻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이곳은 송파구 거여 2동에 위치한 ‘임마누엘 집’ 작은 식당이다. ‘임마누엘 집’은 무의탁 정신지체장애인 55명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맛있게 식사를 마친 한 노인이 "목사님은 우리들 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갖고 있는데, 해마다 이렇게 쌀을 주시니 참 부끄럽다”고 말한다. 점심을 함께 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름 아닌 송파구 관내의 장애 노인들이다. ‘임마누엘 집’에서는 이들을 위해 식사와 햅쌀 20kg 씩을 제공했다. 이곳은 1년에 2차례, 설과 추석에 이와 같은 나눔행사를 해왔다. 올해로 14년째.

사랑의 온도 200% 장애인 목사
이날 제28회 설맞이 ‘사랑의 쌀 나눔 잔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쇠고기 육개장, 떡과 생선, 곶감에 딸기와 거봉까지 정성들여 차린 점심식사에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임마누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식 목사(57)의 간단한 인사말이 이어졌다. "추운데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쌀이 무거우니까 가실 때 모두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을 길게 하면 맛나게 차려진 밥이 맛이 없어집니다. 맛있게 많이 드세요."

이날 저녁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 연말부터 시작한 사랑의 온도계가 사상 처음 100%를 넘기지 못하고 91%에 그쳤다는 씁쓸한 보도를 했다.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9년도에도 100%를 넘겼는데 올해 싸늘하게 식어버린 사랑의 온도계 소식에 위안이라도 하듯 참으로 따뜻하고 뜨끈한 행사였다.

사랑의 온도 200%의 김경식 목사와 차 한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 양쪽에 목발을 짚었고 두 다리는 힘이 없어 보였다. 그의 단단하고 억세 보이는 손은 굳은살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작은 체구답지 않게 밝고 힘찬 목소리의 김 목사는 그 역시 중증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9개나 설립했다.

전남 진도에서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난 김경식 목사는 3살 때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됐다. 어려서부터 손과 발에 신을 끼우고 기어 다녔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학교를 다니던 중, 동네의 어떤 의사가 도움을 줘 그토록 소원이던 목발을 짚고 겨우 설 수 있게 되었다.

불편한 몸이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볼펜을 팔아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다. 그는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위해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던 중 양말, 껌, 볼펜 등 행상으로 모은 돈으로 1983년 2월 도봉구 안골부락에 천막을 치고 무의탁 장애인 10명과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역을 전전하며 행상을 계속했다.

행상, 외판원으로 번 돈으로 장애시설 마련
어렵게 서적 외판원으로 취직한 적이 있는데 그때 겪은 수모와 멸시는 그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뛴 그는 외판원 생활 5개월 만에 판매실적 1위를 차지했다. 그렇게 피땀 흘려 모은 재산으로 1983년 송파구 거여동에 ‘임마누엘 복지관’을 세워 지금까지 55명의 무의탁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생활하고 있다.

김 목사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고 2003년엔 ‘임마누엘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을 개원, 10여 명의 무의탁 노인 장애인들과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등 총 9개의 시설을 설립해 위탁운영하고 있다.

한 때 그의 복지 사업에 동참해 힘을 모았던 동료들과의 불화로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장애인들을 위해 애써왔던 일들을 후회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갈까 고민까지 했다. 하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포기하려야 포기할 수 없었다. 또 곁에서 묵묵히 자신이 하는 일을 도와주고 힘이 되었던 아내 이연순씨(50) 덕분에 이제껏 포기하지 않고 지켜올 수 있었다고 한다.

비장애인으로 중증의 장애를 가진 김 목사를 만나 그의 봉사 생활을 말없이 돕고 있는 아내 이씨는 사람의 외적인 면이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며 남편에게 항상 배우고 의지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고생스런 생활 속에서 한 번쯤은 결혼을 후회했을 법한데,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김 목사에게 앞으로 희망을 물어보자 장애노인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고 싶다고 전했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을 보면 늙었다고 푸대접 받고, 장애인이라고 구박받죠. 장애노인들은 갈 곳이 없어요. 그 분들을 모실 장소를 마련하고 마지막까지 그 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늙은것도 서러운 장애인들이 너무도 안타까워 그들을 위해 공기 좋은 곳에 시설을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김 목사의 확고한 소망과 의지를 보았다.

"장애인들과 생활하기 참 잘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살 것입니다." 건강한 두 손과 두 다리를 가진 우리는 얼마나 건강한 사고를 가지고 살고 있을까? 나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있는 것일까? 남는 것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남는 것을 나누겠다는 계획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나눔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동참해 주길 바란다는 김경식 목사의 말을 널리 널리 전하고 싶다.

#봉사 #김경식목사 #엠마누엘집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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