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밥차의 밥 연기 속에서
발행일 201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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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처음 남구로역 5번 출구에 서있는 빨간밥차와 낡은 '사랑의 나눔' 봉고차 한 대를 보았습니다. 역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인력시장 간판들, 수백 명의 일용근로자들 그리고 줄서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한 그릇을 받아드는 그들……. 새벽녘의 그 신선한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 복지 관련 예산 삭감이나 사회 전반적인 무관심으로 어려운 이웃들이 많은데, 이곳은 여전히 훈훈합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소년가장으로 어린 동생 둘 데리고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구두닦이, 신문팔이, 껌 장사에 이르기까지……. 65년도에 부산에서 상경하여 20대 초반에 방황을 참 많이 했지요. 아침을 굶고 1시간 30분을 걷는데 맛있는 자장면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가슴을 쥐어 잡고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셔서 너무나 염치없고 죄송했다) 그 때의 배고픈 설움이 돈 벌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결심하게 했지요. 다행히 금속 관련 사업으로 어느 정도 성공하게 돼, 사업을 접고 아내를 만나 수유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청량리 프란치스코 식당 봉사의 길로 나섰어요. 사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 따라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에 나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거든요. 밤 10시에 김밥을 말아 김밥봉사를 하고나면 자정이 지나 2시가 돼야 일과가 끝났어요. 서울역 지하도에서도 용돈 털어서 50~60명의 국밥배식을 했었는데, 98년 IMF 때는 그 인원이 100명이 넘었어요. 경제활동을 접었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워 마음이 많이 아팠었는데 돈을 빌려간 친구가 뜻하지 않게 갚아줘서 망우동에 나눔의 집까지 열게 됐어요. 그것이 바로 기적이었죠. 친구집 연탄창고를 빌려 서울역 나눔의 집도 열었어요. 결국 친구가 집을 팔아야 할 상황이 됐는데 집을 못 팔아 힘들어할 때, 이런 시설들을 이웃들의 반발로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겠다 싶었고, 그들이 눈에 밟혀 포기할 수가 없어서 작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나눔의 집 활동을 계속했지요.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 아직까지 대출 해결도 못하시고 이렇게 봉사만 하시면 사모님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아! 결혼은 왜 하셨나요(너무나 무례한, 결례의 질문을 하고 말았다)?
네, 저도 집사람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심장이 안 좋아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살면서 갈등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저보다 더 열심히 망우동 나눔의 집에서 봉사를 하고 있지요.
빨간밥차의 운영 배경과 밥차가 제공해 줄 수 있는 배식 인원과 차내 취사시설도 궁금합니다.
빨간밥차는 비씨카드사에서 사회공헌사업으로 사회복지시설 및 단체에 기증하고 있는데, 지난 2005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가 제1호차 운영을 시작하여 서울역과 을지로, 회현 지하상가 등지에서 행려·노숙인들을 대상으로 겨울철 동사 예방운동과 함께 저녁식사를 제공했었지요.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 사랑의 나눔회에서 서울역 노숙자 급식, 노인복지관 등에서 운영 후, 강원도 평창 수재민 지역과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이후 재난지역에 파견되어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료급식 제공 및 복구활동을 지원해 왔어요. 2009년 6월부터는 실업률 상승으로 새벽시장 일용직 근로자가 가장 많이 모이는 구로구 남구로역 광장으로 빨간밥차를 이동하여 자원봉사를 받아 매주 2회(수,목) 200명 정도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지요. 소외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이동식 급식차량으로 1시간 동안 500인분 이상 식사조리가 가능한 취사장비와 냉방장비를 갖춘 특수차량으로 현재까지 서울과 부산 등 전국 8개 지역 사회복지시설과 단체에 11대의 빨간밥차가 운영되고 있어요.
봉사자는 어떤 분들이신가요? 봉사 인력 때문에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음식 준비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주방장 이용준 씨가 가락시장에서 공수해온 신선한 재료로 저녁 8시부터 요리를 시작하는데, 주로 국물은 나눔의 집 임태근(뇌병변·언어장애 2급) 실장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1층 주방과 3층 방을 번갈아 드나들며, 12시 안에 완성된 국물을 3개의 큰 통에 나누어 담아놓고, 3시 안에 밥 짓기를 완료해야 하는데 15년 동안 봉사해온 정천재 씨의 도움으로 국물 내는 것보다는 더 수월합니다. 이 음식들을 낡은 봉고차에 싣고, 강변북로와 원효대교를 지나 빨간밥차가 있는 남구로역으로 와서 밥차 안의 취사기구에 부어서 한 번 더 데워 배식을 합니다. 배식 자원봉사는 이곳 남구로역에서 개인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밥 봉사를 해오시다가 빨간 밥차 봉사의 길까지 올해 7년째인 터줏대감 임옥순 씨가 같은 교회의 연세 높으신 분들과 함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도와주고 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신도림동성당을 중심으로, 오류동성당, 구로3동성당에서 자원봉사자를 매주 보내주고 있고, 인근 상도동 성당에서도 월 2회 봉사를 해주고 있는데, 새벽시간이라 아직도 봉사자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빨간 밥차의 따뜻한 아침식사가 주는 상징은 우리 사회에서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일거리가 많지 않아서 인력시장의 분위기도 많이 침울할 것 같은데, 이곳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어떤가요? 빨간밥차의 지속적인 운영에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현재는 서울역 노숙자 야간급식 2회, 구로구 남구로역 새벽근로자급식 2회 등 주 4회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만, 2010년 8월까지 사업완료 후, 지원이 안 돼서 사실상 중단위기에 처했었지요. 다행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업평가 보고서 제출 후, 9월부터 가톨릭사회복지회 모금과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금으로 12월까지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지요. 2011년, 바로 다음달부터는 무료급식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만, 가톨릭 쪽에서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고자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고, 구로구청에서도 2011년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지원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방금 전 배식하는 동안, 소주병을 들고 와 안주로 국밥을 찾거나 이른 새벽부터 술주정하는 사람도 있고 큰 찬통을 들고 와서 밥과 국을 요청하는 등 일부 소란스럽게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요.
네, 가끔 봉사자들과 언쟁도 있습니다만 저희끼리 하는 표현으로 그분들을 '예수님'으로 대하면 조용한 아침이 됩니다. 어려운 이웃들이 남은 밥과 국물을 구하러 오시는데 음식분량을 가늠할 수 없어서 먼저 드리지 못하고, 배식이 끝날 때까지 줄서서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평균 7~8분이 고정적으로 오시는데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밥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평소 자원봉사자로서의 삶을 살아오시면서 귀하게 여기는 말씀이나 신조가 있으시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아직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굶고 사는 이웃들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회는 마치 다 같이 잘살고 있는 것처럼 소비와 사치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이곳 남구로역에 모인 서서울지역 일용직 근로자들은 아침을 굶고 일터에 나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일감을 못 구해 낙담하고 있는 근로자를 볼 때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앞으로 이분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무료배식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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