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르꼬르동블루'가 되겠다
발행일 2010.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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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식과 인연을 맺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가?
고향이 개성이다. 종갓집 맏며느리셨던 어머니는 집안의 대소사로 늘 음식준비에 바쁘셨다. 요술처럼 만들어내신 어머니의 정성스런 음식들에 대한 호기심이 궁중음식과 한국음식을 전공하게 했고, 교수로 강단에 서게 한 것 같다. 전통은 반드시 지켜가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는 동안 사람도 변하고 입맛도 바뀌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생활양식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전통음식과 우리 조상들의 정성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옛 문헌인 고조리서(古調理書)의 기록을 찾아내어 전통음식의 역사와 의미를 찾고, 현재 설 자리를 잃어 가는 있는 음식을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그 전통의 맥을, 어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의 맛을 체계적으로 계승시키고 싶었다.
그 동안 주안점을 두고 쌓아온 작업들과 그 경위를 소개해 준다면?
가장 큰 결과물은 ‘한국음식조리법 표준화 연구개발’ 사업이다. 국내 최초로 레시피를 표준화하였고 '약간, 적당히' 등의 애매한 조리법을 SI규격 단위를 써서 체계화시켰다. 그 동안 건강하고 맛있는 한국음식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도, 애매한 조리법으로 국내에서조차 그 맛이 일관되지 못하고 구전에 의해 조리되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까웠었다. 한식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도 마땅한 조리교재가 없는 현실도 아쉬웠다. 그래서 2006년의 '아름다운 한국음식 300선'에 이어 최근 '건강밥상 300선'을 선보였다. 이로써 한국음식 조리법 600가지가 표준화되었다. 세계 어느 누가 요리하더라도 동일한 '한국의 맛'을 낼 수 있도록 정확한 조리법을 담으려고 애썼다. 2006년 여름에 시작해 올해 5월에 완성되었으니 꼬박 5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연간 5,000명의 한국음식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배경이 정말 놀랍고 궁금하다.
흔히 한국음식이라고 하면 ‘한식조리 55가지’를 가르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외에 가정식이나 김치, 장류, 젓갈, 술, 궁중음식, 약선음식, 폐백, 혼례음식, 떡, 한과 등의 한국음식 전반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은 없었다. 그러나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평생교육원에서는 ‘한국음식’에 관한 모든 과정을 배울 수 있다. 최근에는 한식과 함께 전통주를 열심히 교육하고 있고 특히 김치나 장류는 국내 유일무이한 교육 커리큘럼을 지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간 5,000여 명의 학생이 한국음식을 배워가고 있다. 최근에는 가까운 나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서 직접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와 교육과정을 이수하기도 하고, 해외에서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시 찾아와서 한국음식을 제대로 교육받고 있다.
국제적인 행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떤 음식이건 다섯 번만 먹으면 그 음식을 찾게 되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지속적으로 한식을 계속 '먹이는' 일을 진행하였다.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2007년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2주간의 한국음식축제(Korean Food Festival)이다. ‘고궁으로의 초대’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궁중음식을 뷔페로 선보인 행사였다. 150명분을 준비했는데 점점 인원이 늘어나 400인분, 500인분을 준비해야 했고, 한복을 입고 음식 설명만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너무 바빠서 조리복을 입고 다함께 조리에 동참하였다. 미국의 조리도구는 한국의 것들과 달라서 작은 체구의 한국인들이 조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음식의 주문은 늘어나는데 작은 한국여자들이 조리도구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음식을 만들었다(웃음). 냉면 추가주문이 들어왔는데 얼만큼 삶아졌는지 꺼내보기도 어려웠다. 또 한 가지. 외국인들에게 찹쌀로 만든 감로빈을 메뉴로 내놓았는데, 굉장히 잘 먹었고 좋아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떡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 2009년 9월에는 런던의 주영 한국대서관저에서 영국황실가족(royal family)에게 인삼과 김치, 신선한 해물을 이용한 궁중음식 만찬을 대접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매들(sisters)과 오스트리아의 황제 내외 등 20여 명이 대단히 감동받았다며 치하했고, 만찬이 끝나자 주방까지 내려와 메뉴판에 사인을 요청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음식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때만 떠올리면 뿌듯하고 벅차다.
혹시 한국음식 세계화를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나 한계는 느끼지 않았는지?
너무 흔해서 우리 스스로도 소중한 줄 모르고 도외시했던 음식들을 세계화해야 한다고 했을 때, 처음 짐을 꾸려 세계 각국에 나가 한식을 알리려고 했을 때 왜 힘들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솔직히 전 세계인들과 만날수록 점점 더 우리 한식의 가능성을 봤다. 엄밀히 말하면 세계 속에서 ‘한식 세계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지금은 축구, 박지성, 김연아, 김치 등등 우리나라가 많이 알려졌지만 2003년, 2004년만 해도 ‘한국’을 모르는 나라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에게 우리의 김치를 소개하고 김치로 만든 음식과 비빔밥을 소개했더니, 처음에는 신기하게 여기더니 점차 맛있다고 ‘원더풀!’을 외쳐주었다. 서양인들의 기억에 오래 남기 위해 일부러 비빔밥도 김치도 ‘더 맵게! 맵게!’ 만들어서 나눠주었다. 처음에는 얼얼해 하더니 매운 맛에 중독되어서는 박람회 기간 내내 한국음식홍보관 부스를 찾아서 시식에 열광했고, 자국의 음식도 가져다주는 사이가 되었다. 한국음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 ‘대장금’의 선풍적인 열풍으로 인해 그 위상은 더 높아지고 있다. 산업화가 만들어낸 패스트푸드의 각종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건강식에 눈을 뜨고 있으며, 그 선두주자가 바로 한국음식이다. 우리 한식은 영양균형이 우수한 저열량 건강식으로 계절에 따라 식재료와 조리법이 조화를 이루는 우수한 자연음식이며, 맛이 깊고 식재료가 다양하다. 대부분이 고칼로리인 서양식에 비해 곡류, 채소류, 해산물을 주로 사용하는 저칼로리 건강식으로 미국의 LA굿사마리 병원은 환자에게 영양학적으로 가장 적절한 음식으로 평가하고 환자메뉴로 제공하고 있다. 한식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맛이다. 맛, 영양을 고루 갖춘 우리 음식을 전 세계인들이 함께 즐기고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한식 세계화의 필요성이다.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요즘은 한정식 전문식당에 가면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산뜻한 컬러의 응용요리를 선보이는데, 세계화를 겨냥한 퓨전음식의 '남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음식은 문화의 산물이다. 문화적인 요소와 함께 결합시켜서 한식을 해외에 내보내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문화나 쌈을 먹는 문화와 국 문화 등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식문화이다. 최근에는 한식을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인지, 퓨전화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찬반이 많다. 개인적으로 한식을 '현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의 자장면이나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피자가 그들 나라에서는 다르게 판매되고 있듯이 우리 한식도 세계 속에서는 그들 나라 입맛에 맞춰줘야 한다. 그들이 많이 사용하는 식재료를 이용해야 하고 먹는 방법도 한상 가득 차려놓고 먹기보다는 시간 전개형 상차림으로 코스화해서 내야 한다. 뒷방 늙은이처럼 우리 것만 고집하다가는 우리 한식이 고집불통 ‘골동품’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한식을 너무 퓨전화하는 것도 옳진 않다고 본다. 그 속에 우리의 맛과 멋, 그리고 한식의 혼을 담아야 겠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전망과 계획도 이 기회에 자세히 알고 싶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는 ‘전통음식의 연구 개발 및 대중화를 위한 작은 학교’이다. 한 장소에서 평생교육원, 떡박물관, 떡카페 등 한국전통음식을 연구, 교육, 전시, 보급하는 전통음식 전문기관이다. 연구소의 계획이라면 먼저 한식연구는 각 나라별로 그 나라의 식문화와 식재료, 입맛을 고려하여 한식을 현지화하는 메뉴를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한식과 어울리는 전통주를 함께 연구하고 개발하여 세계화할 생각이다. 한식교육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활발히 진행해야 할 일이어서 그에 합당한 준비들을 하고 있다. 해외 한식당에 나가서 우리 음식을 먹어보니, 이름은 한식인데 맛은 어느 나라 맛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그건 숙련된 한국음식 조리사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깨 너머, 주먹구구식으로 한식을 배운 이들이 음식을 조리하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한식을 먹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니 한국의 맛을 나타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한식전문조리사’ 파견이 절실하고 그러자면 한식을 전문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게 국내에서도 ‘스타셰프’가 필요하다.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의 경우는 스타셰프가 자국의 음식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 우리도 한식을 알리기 위해서는 음식을 예술의 경지까지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한식 스타셰프’들이 진행해 나가야 할 일이다. 연구소의 최종목표는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프랑스의 르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이탈리아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ners)처럼, 한국음식 하면 떠오르는 세계적인 한국음식의 교육기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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