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만 하고 `사색`을 하지 않는다면...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2.28. 00:00

수정일 2014.10.05. 20:25

조회 1,891

휴대폰

생활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삶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T.S.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시 <바위(The Rock)> 중에서

[서울톡톡] 슬금슬금 불평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원성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만 바쁘냐, 어울리지도 않게 웬 독야청청이냐, 세상에 이름자 걸어놓고 산다고 잘난 체하는 거냐...... 이게 다 그놈의 '똑똑이폰' 때문이다. 내가 갖지 못한(않은) 신기종의 휴대폰으로 소통하는 친구들이 '밴드'인지 뭔지를 만들어놓고 나를 향해 대답(할 수) 없는 헛된 초대문자를 띄우다 못해 터뜨리는 원망이 그러하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들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그 물건을 장만할 요량이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소우주를 각자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거나 길을 몰라 헤맬 필요도 없고, 세계 어느 곳에 있는 누구라도 자유로이 연락할 수 있다. 그 생활의 편리는 활용하는 만큼 무한해지고, 검색 한 번에 누구나 지식을 소유할 수 있고, 방대한 정보를 간단히 취할 수 있으니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 다니는 셈이다. 그러니 날로 빨라지고 날로 새로워지는 '똑똑한 폰의 시대'를 구형 폴더폰 하나로 살아가는 나는 되도 않는 반항아, 이단아, 외톨이, 찰구식의 낙오자나 다름없다.

그런데 나의 고집 아닌 고집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은 내가 밥벌이를 하는데 똑똑이폰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며, 다음은 똑똑이폰만큼 똑똑해져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으리라는 나름의 손익계산 때문이다. 시인 T.S.엘리엇은 이미 1934년에 이 셈평을 끝냈나 보다. 그때는 컴퓨터나 휴대폰 따위를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사람들은 기어이 눈앞의 생활에 꺼둘리고 지식에 목을 매고 정보를 좇았나 보다.

오로지 생활이라는 빽빽한 나무에 홀려 전전긍긍하다 보면 삶이라는 거대한 숲을 보지 못한다. 사물의 내용을 알기에 골몰하다 보면 지식이야 얻을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지혜를 놓칠 수 있다. 그런데 그 지식조차도 정보라는 세부적인 자료에 매몰되면 진정한 앎의 경지로 나아가기 어렵다. '검색'만 하고 '사색'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진짜 내가 아는 것일까? 그저 주어진 정보를 읽고 얄팍한 지식을 흉내 내어 생활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공허한 넋두리일지 모른다. 대세를 부정하는 무의미한 저항일지 모른다. 이미 똑똑이폰과 그만큼 압도적인 변화에 사람들은 '중독'되어간다. 하지만 잃어버리고 놓쳐버렸다고 느낄수록 삶과 지혜와 지식의 가치는 빛난다. 사이버공간에서 부유하는 말들은 외로움의 수신호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만남이다. 부대낌이다. 다시 삶의 광장으로 나와 지식을 얻고 지혜를 배우는 것뿐이다. 버스가 언제 오는지 몰라도 버스는 온다. 길을 몰라 헤매다보면 길가의 맨드라미와 간판이 예쁜 국수집을 찾을 수 있다. 문자로 수많은 잡담을 주고받는 일보다 친구들과 만나 나누는 따뜻한 술 한 잔이 향기롭다. 나는 그 모든 즐거움을 놓치면서까지 똑똑해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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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밴드 #폴더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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