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의학의 허(虛)와 실(實)

admin

발행일 2008.10.01. 00:00

수정일 2008.10.01. 00:00

조회 3,126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정과 한이 많다는 점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마도 오랜 세월 궁핍한 가운데서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서로 함께 나누던 우의적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연고로 혹여 이웃사람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마다 명의가 되어 나름대로의 비방을 알려주기를 주저치 않는다. 심지어는 약까지도 선물로 주고받는 우리만의 기이한 풍습이 있다. 물론 그것이 꼭 필요한 적적한 약이라면 고맙고 반가운 일이겠지만 혹 성분과 출처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약일 경우에는 처리하기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노인들은 몸이 쇠약해지면서 자연히 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데 의학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약이 된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솔깃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얼마 전 만성간질환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닌 한 젊은 환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심각한 얼굴로 부인과 함께 찾아왔다. 이유인즉 사위가 간질환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랑 깊으신 장모님이 걱정이 되어 여러 곳을 수소문해 소위 용하다는 곳에서 비방의 약제를 구해 갖고 오셔서는 당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먹으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이민 간 딸이 고국의 어머니를 위해 좋다는 건강식품을 보내왔는데 자랑삼아 갖고 오셔서 먹어도 되는지를 물어보는 환자분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조언하는 것이 최선의 비책인지에 대해 그야말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의학에 따른 질병치료는 질병을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을 규명하여 이를 제거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감염되어 염증을 초래하였다면 그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하고, 어떤 장기에서 암이 발견되었다면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 등으로 병든 부분을 절제하는 것이 원칙적인 방법이다. 이와 같은 논리적 접근 및 지속적인 검증 같은 과학적인 방법에 의거하여 1928년 독일의 학자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분리해 낸 이래 최근의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에 이르기까지 현대 의학에서의 질병 치료기술은 괄목상대할 만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의학이 더욱 발달할 미래에는 해결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직까지는 인간의 힘으로 완치할 수 없는 질병들도 있는 것이다. 현대 의학으로 모든 질병을 완전하게 치료하지는 못한다는 사실과 의학 분야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소위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곁눈질을 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자연의학’이라 불리는 대체의학이다. 특히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 대체요법으로 호전되었다는 일부 환자들의 사례가 과장되게 소개되어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


대체의학이란 간단히 정의하면 현대의학적인 방법으로 그 치료 효과가 못한 모든 질병 치료법을 말하는데 가벼운 증상 완화에서부터 질병의 완치를 목표로 하는 직접적인 치료까지 폭 넓은 분야를 망라한다. 또 치료방법 역시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민간요법에서부터 음식조절요법, 정신-신체요법, 전통요법 및 민간요법, 약초요법 등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효과 측면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여 의료계에서는 정식 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험을 통해 증명된 최신의 치료방법에 대해서는 오히려 망설이면서 “이 병에는 무엇이 좋다고 하더라”와 같은 근거 없는 ‘카더라’성 말에는 쉽게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속성을 파고드는 일부 대체 의학은 상당한 위험도 수반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기능성 건강식품이나 대체요법 약제가 많이 등장하였고 그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이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모든 약은 나름대로의 유효성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작용도 가지고 있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만,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생명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대체요법 약제들은 원시시대부터 원주민이 사용하던 전통 약초나 과거의 의약품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므로 부작용이나 독성이 전혀 없다”와 같은 주장들을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하였다.

또한 일부 건강식품이나 대체요법 약제가 허가과정에서조차 검증단계를 거치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상적인 치료약제는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천연성분 또는 생약성분을 표방하는 대체요법 약제나 건강식품은 맹목적으로 선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그 결과 어떤 환자들은 사이비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혼란을 일으키다가 엄청난 재산과 시간을 희생하는 일도 있어 안타깝다.

일례로 몇 년 전 건강식품점이나 홈쇼핑 또는 가정방문을 통해 별다른 제한 없이 인기리에 판매되었던 중국산 체중감량 약제가 생약 복합제라는 성분표시와는 달리 일부 제품에서는 ‘펜플루라민’이라는 식욕감퇴를 가져오는 화학성분이 검출되어 결국에는 일본과 동남아에서 무려 600명 이상의 사람에게서 간염을 유발하고 그 중 8명의 목숨을 앗아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사실을 새삼 상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약이나 천연성분은 부작용이 없다는 믿음과는 달리 식물성분에도 간 손상을 초래하는 성분들이 적지 않다. 주로 식물의 알칼로이드 성분들이 그 원인인데 중국산 한약제인 ‘진부환’이나 ‘황련’에서 검출되는 ‘레보알칼로이드’가 대표적인 독성물질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상황버섯, 차가버섯 등 일부 약용버섯에서 면역증강 효과나 항종양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러한 효과만을 맹신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도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현대적인 의학의 개념에서 볼 때 대체의학은 공인된 현대의학을 제외한 모든 의료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침술, 약초요법 등 각종 한의학적 치료방법 또한 대체의학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통적인 한의학적 치료방법중에서도 그 효능과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공인된 사례도 많다. 따라서 현대의학의 입장에 있는 이들도 한의학은 모두 과학적이지 못한 대체의학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현대의학이 미처 검증하고 수용하지 못한 다른 방향으로 질병에 접근하는 대안의학의 하나로 보고 이에 대한 접근을 통해 객관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본 서울의료원도 부설연구소를 통해 전통적 경험의학의 과학적인 검증을 통한 의학분야의 연구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기대가 된다.


그러나 여타의 사례들을 악용하여 효과가 없거나 때로는 사람에게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가 대체의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환자들을 현혹시키는 경우는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효과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는데도 ‘자연요법’이니 ‘생명력 치료’니 하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기적의 치료법인 양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세상에는 논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없는, 말 그대로의 기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혹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이러한 요법을 사용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담당 주치의와 솔직하게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기듯이 믿음까지도 내줄 수 있을 때 의사는 그에게 최선의 도움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글_이계희_서울의료원 내과 주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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