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희의 미니스커트와 요즘 걸그룹 패션의 차이?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3.07.09. 00:00

수정일 2015.11.17. 19:11

조회 3,813

별 생각 없이 TV를 보고, 노래를 듣는 것 같지만, 그럴싸한 해석을 달아 놓고 보면 대중문화 속에서는 사회의 현주소가 보이고 사람들의 인식이 보고, 심리가 보인다. 별 생각 없이 접하는 것 같은 대중문화에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별 별 생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그걸 콕콕 짚어내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의 '컬쳐 톡'이 매주 수요일, 여러분을 찾는다.

[서울톡톡] 최근 한 달 동안 가요계 노출경쟁이 뜨거웠다. 이효리는 수영복을 입었고, 김예림은 속옷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티저 영상을 공개했고, 걸스데이와 달샤벳은 '묘한' 안무로 화제가 됐다. 솔로곡을 선보인 씨엘도 노출의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생긴 신조어가 바로 '팬티패션'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하의실종'이란 신조어가 유행했었다. 치마나 바지가 너무 짧아서 하의를 안 입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었는데, 지난 한 달 동안 더 극단적으로 짧아져서 이젠 아예 겉옷이 아니라 속옷만 입은 것처럼 보인다는 게 이 단어가 생긴 이유다. 

현 상황은 100년에 걸친 여성 다리 노출 역사의 '완성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세 초까지 여자들은 다리를 완전히 가리고 다녀야 했다. 이것은 여자에 대한 봉건적인 억압이었는데, 20세기 초부터 여권신장이 시작되고 여자들의 사회생활이 활발해짐에 따라 치마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바 '샤넬라인'이라 불리는 종아리 노출 치마다. 이것이 100여 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에선 반바지를 입은 여자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아직 무릎 위는 금단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화보 촬영하다 자를 든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 경에 이르러 무릎 위 허벅지를 살짝 보여주는 치마가 유행하게 된다. 바로 미니스커트의 등장이다. 한국에선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국하는 윤복희가 공항에서 욕설과 계란을 맞는 장면의 CF가 나왔을 정도로 그 반발이 심했다. 윤복희가 공항에서 계란 맞은 사건은 사실 없었지만, 그렇게 형상화될 수 있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미니스커트에 놀란 한국의 국가권력은 자를 들고 다니며 여자들의 치마길이를 재기도 했다. 패션화보 촬영 중인 모델도 경찰이 다리에 자를 대보더니 잡아갔다고 한다.

1990년대쯤 되면 이런 이야기는 모두 옛일이 되고, 미니스커트는 이제 하나의 패션이 된다. 당시 이에 대해 평자들은 여자들이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여자에게 조신함만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억압에서 해방됐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하의실종에서 팬티패션까지 오게 됐다. 그러면 이것도 자유고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분명히 미니스커트까지의 역사는 가부장적인 억압에서 여성이 해방되어가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흐름은 그렇게만은 보기 힘들다.

지금 노출바람을 선도하는 것은 어린 걸그룹들이다. 이들의 노출을 개성이고 자기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획사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최대한 자극적인 방향으로 기획하고 가수가 그것을 이행하는 것인데, 여기에 어떤 개성의 주체가 있단 말인가? 그저 섹시의 대열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군중의 집단행동이 있을 뿐이다.

과거에 국가가 치마길이까지 재며 의상표현을 억압했던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너무 맹렬한 속도로 선정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무엇이든 극단적인 것은 언제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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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실종 #팬티패션 #가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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