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아름다운 묘비가 있었는가?
발행일 2014.06.17. 00:00
[서울톡톡] 묘소 옆 묘비에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적혀 있어 묘소 주인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묘비에 쓰인 그 함축적인 말들은 그들의 삶을 반추할 수 있어서 뭉클하다. 그가 만약 시인이라면 더 하리라. 가까이 있었음에도 찾지 못했던 시인의 묘소를 찾아가 본다.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공초 오상순 시인 묘소를 가다
공초(空超) 오상순 시인의 묘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북한산국립공원 등산로 옆에 있는 공초 오상순 시인의 묘소는 등산로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이정표를 눈여겨봐야만 찾을 수 있다.
강북구 수유역에서 강북마을버스 3번을 타고 빨래골 정류장에 하차해 조금 올라가면 북한산국립공원 빨래골관리사무소가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등산로를 따라 약 300여 미터를 올라가다보면 <공초 선생의 묘소>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45도 경사진 언덕 위에 공초 오상순 시인의 묘소가 있다.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일반인들은 쉽게 찾을 수 없을뿐더러 묘소 주변은 철책까지 쳐져 있다.
경사진 언덕을 어렵사리 오르면 공초 오상순 시인의 묘소다. 눈에 띄는 것은 큰 정사각형 화강암으로 제작된 그의 묘비이다. 통념을 깬 묘비로 독특하다. 화가 박고석이 공초의 안빈낙도의 삶에 어울려야 한다며 제안했다고 한다. 서예가 김응현은 한글 예서체로 공초의 시를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묘비뿐 아니라 생전에 그가 담배를 무척 즐겼다는 일화 때문인지 이곳을 찾는 이들이 시인을 위해 담배를 놓아두는 곳과 재떨이용 작은 돌도 보인다.
보금자리 친 / 오 흐름 위에 / 보금자리 친 / 나의 혼(魂)
공초 오상순 시인의 묘비에 새겨진 그의 시 <방랑(放浪)>의 첫 부분이다. 묘비 뒷면에는 "폐허지 동인으로 신문학 운동에 선구가 되다. 평생을 독신으로 표랑하며 살다. 담배를 사랑하다. 유시집 한 권이 남다"라고 적혀 있다.
공초 오상순시인은 평생 문학적인 방랑과 일상의 모든 물질적인 욕망들을 담배 연기로 날려버리려 했던 기인으로 한국문단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결혼도 않고 거처할 자신의 집도 없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한다. 38편의 시가 수록된 유고집 '공초 오상순 시집' 한 권을 남겼으며 이것 또한 후배 문인들이 사후에 출간했다. 자신을 비우고(空), 세상을 초월한(超) 삶을 살다간 시인의 묘소는 너무 고즈넉했다.
'세월이 가면'의 박인환 시인 묘소를 가다
중랑구와 구리시에 걸쳐 있는 망우산은 1933년부터 1973년까지 약 2만 8,500여 명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묘지 이장을 꾸준히 진행해 현재는 9,000여 기의 묘지만 남아 있는 상태라 한다.
최근 들어서 <망우리공원>으로 잘 조성된 이곳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녹지공간이자 박인환, 한용운, 이중섭, 방정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역사적 인물들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어 근현대 역사인물 탐구를 위한 보물창고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전봇대 번호로 묘소 주인을 찾아야 할 정도로 이정표가 없는 곳이다.
망우공원주차장과 망우공원관리사무소에서 약 100여 미터쯤 오르면 두 개의 길이 시작되는 갈림길에 닿는다. 일명 '망우 사색의 길' 출발점이다. 길 양 옆으론 수령 짱짱한 나무들이 숲 터널을 근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얼마가지 않아 왼편으로 반가운 시비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너무 익숙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가 적힌 기념비다. 시구를 입으로 천천히 외며 기념비 맞은편 급경사진 길을 내려가면 작고 초라한 묘소가 하나 나타난다. 직사각형의 작은 묘비 앞면에는 <세월이 가면>이란 시인의 명시가 적혀 있다.
詩人 朴寅煥之墓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묘비 뒷면엔 그의 이력이 간략하게 남아있다. 박인환 시인은 가난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인간의 진솔한 삶과 사랑의 시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간 시인이다. 시인의 삶은 31세로 짧았다. 그는 시집 한 권을 남겨 놓았다. 남겨진 그의 시는 노래가 되었고, 늘 친숙하게 사람들에게 회자 되는 낭송시가 되어, 우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울렸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사)국제펜클럽한국본부가 주관하는 <서울 시(詩) 문학기행>은 한 달에 한 번 서울 안으로 문학기행을 떠난다. 매회 주제를 달리해서 진행되는데 시인의 고택 탐방, 시인의 문학비(시비) 탐방, 시인의 묘소 탐방이 진행된 바 있다. 오는 6월 19일(목)에는 '서울 북촌과 서촌 시인들의 흔적을 찾는 탐방'이 진행될 예정이다. 참가비는 1만 원이다. 문의 : 02-782-13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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