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혼이 깃든 신촌의 거리
발행일 2014.05.30. 00:00

[서울톡톡] 2호선 신촌역에서 5분정도 걸어 내려가다 보면 1991년에 아들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배상한 금액으로 그의 엄마가 지은 이한열 열사의 기념관이 있다. '이한열 기념관'은 1987년 6월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21살의 청춘으로 숨진 고 이한열 열사의 혼과 숨결이 깃든 곳이다.

작은 규모의 '이한열 기념관'의 들어가는 입구에는 민주주의라는 싹을 틔우기 위하여 열심히 물을 주고 피와 땀을 흘린 사람들의 모습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벽면을 보며 포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수만 명의 희생이 떠올라 숙연함과 엄숙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1980년대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막힌 독재의 시대였다. 이 열사는 고교시절, 야구부를 응원하고 음악에 심취했던 그저 평범한 소년이었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 '서울대생 박종철 물고문 사건' 등으로 사회의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민주화를 뜨겁게 갈구했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독재를 향한 시위운동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국민들은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요구했다

정부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며 독재 타도를 부르짖는 학생들을 최루탄으로 진압하려 했고, 결국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얼굴에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고 만다.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이한열 기념관'은 3,4층에 위치해 있으며 3층에서 4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나선형 구조로 되어 있다. 당시 고문실로 가는 길이 대체로 이런 계단이어서 재현해 놓은 것인데, 손을 묶고 눈이 가려진 채로 오르내리면 방향감각을 잃어 몇 층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고 한다.
4층으로 올라가면 이 열사가 사망 당시 입고 있었던 옷, 신발, 깨진 안경 등 여러 전시물이 있다. 현장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 또한 관람할 수 있어 그날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이한열 기념관'을 나와 신촌로를 걷다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념도서관인 '김대중도서관'도 볼 수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꿈꾼 그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 독재를 겪으면서 6년간의 감옥 생활, 55차례의 가택연금, 망명, 심지어 사형이라는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거쳤다.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꽃피우고, 남·북한의 화해 협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세계에서 인정한 평화주의자로서의 그의 정신과 삶을 도서, 음성, 영상, 사진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6월에는 과거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던 의병항쟁이 이루어진 달이자, 독재의 핍박 속에서도 민주화를 부르짖던 국민들의 항쟁이 있던 달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달이다.
그들의 피와 땀의 수혜자인 우리가 6월을 맞이하여 그 뜻을 기리고 위 장소들을 방문해 본다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 이한열기념관 홈페이지: http://www.leememorial.or.kr
○ 김대중도서관 홈페이지: www.kdjlibra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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