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숨겨진 정원~
발행일 2013.01.15. 00:00
[서울톡톡]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가 그대로 숨 쉬고 있었다. 숨겨진 정원이라 해서 '비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정원이라 해서 '금원'이라고도 불렸다는 창덕궁 후원에 드디어 발을 들여놓았다. 까다로운 절차 없이 휙 한 번 둘러볼 수 있는 줄 알고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인터넷 예약부터 서둘러 다시 했기에 나들이가 성사됐다.
그런데 꽃 피는 사월, 단풍이 절정인 시월이 제철이라던 친지들의 추천을 뒤로 하고 추운 겨울에 나선 것이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았다. 서설이 아직 그대로여서 그 운치가 궁궐의 품격을 한층 더해주었다. 가족 단위, 단체,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 외국인들까지 창덕궁 궁내는 마치 야유회철처럼 북적거렸다.
여느 언덕길과 다름없는 가파른 길을 3~4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저 유서 깊은 정원수가 잘 가꿔져 있고, 연못들이 몇 군데는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문화해설사가 안내한 첫 장소부터가 굉장한 곳이었다. 열십자 모양의 독특한 평면 형태에 공간 구성이나 장식들이 뛰어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 한국 정자 건축의 대표적 건물인 '부용정'과 '부용지', 그리고 왕실 직속도서관인 '규장각'이 있는 '주합루', 선비들이 모여 시험을 치룬 '영화당', 무과시험을 치룬 '춘당대'… 일행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며, 출입금지 팻말을 무시하고 자꾸 발을 들이며 기웃거렸다.
돌을 통으로 깎아서 만들었다는 '불로문'을 통과해서 꽁꽁 얼어붙은 두 번째 연못 '애련지', 그리고 사대부 민가인 '연경당'을 지나서 또다시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의 연못에 이르렀다. 참으로 멋스런 풍광들이다.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공간이라는, 길쭉한 맞배지붕의 '펌우사'와 디딤돌 아래 '존덕정', 디딤돌에서는 아이들이 양반걸음(팔자걸음) 흉내를 내며 깔깔거리기도 했다.
창덕궁 후원의 절정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이곳 '존덕정'에는 정조(재위21년, 1797년)의 친필인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가 있었다. 동행한 문화해설사의 소개에 의하면 '백성을 만천에 비유하고, 그 위에 하나씩 담겨 비치는 명월을 태극이요, 군주인 나'라고 하여 왕의 위엄과 권위를 세우고자 하는 정조의 강한 의지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다.
"만 개의 개울이 달빛을 받아 만 개의 달이 개울물마다 빛나고 있지만, 하늘에 있는 달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바로 그 달이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만이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에 합당한 일이다."
문화해설사가 후원의 마지막 관람 코스라고 안내하는 창덕궁 후원의 가장 북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옥류천 일대다. 존덕정의 북쪽에 위치한 이곳을 본격적으로 조성한 왕은 인조인데, 옥류천의 계류는 북악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응봉 기슭으로부터 흐르는 물과 인조가 친히 파서 일군 어정(御井)에서 넘치는 물이 합쳐 흐르는 시내이다. 태극정, 취규정 등 옥류천 일대의 정자들도 인조 때 대부분 조성되었다고 한다. 인조는 옥류천의 널따란 큰 바위인 소요암에 어필로 '옥류천'(玉流川)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넣었고, 1636년 가을에는 옥류천의 바닥돌을 조금 깎아 계곡물이 흘러 들어오게 만들고, 물이 암반을 둥글게 휘돌아 흘러서 소요정 앞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게 했다. 옥류천의 비경은 왕들의 시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숙종이 직접 지은 오언절구 시도 새겨져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어정'이 그대로 있고,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아무리 공해가 심해지더라도 이곳은 천년만년 '옥류천'(玉流川)일 것 같다. 이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심신이 찌꺼기 하나 없이 맑아지는 것 같아서 서두르지 않고 망중한의 시간을 더 여유롭게 갖고 싶어졌다. 유일한 초가정자인 '청의정'도 관심을 끌었다. 임금이 직접 농사지어 그 볏짚으로 지붕을 얹은다고 하며, 한 되 정도 수확된 쌀은 제사용으로 쓰이기도 한단다. 많은 이야기가 끝없이 들리는 듯한 이곳 창덕궁 후원이 중국의 '이허위웬', 일본의 '가쓰라리큐'와 함께 아시아 3대 후원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후원을 깊이 들여다보고서야 더욱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160여 종의 수목 중에는 수령이 수백 년인 것이 70수 이상이라는데 지지대로 둘러싸여 있는 향나무가 인상적이었다. 현존하는 궁궐 안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며, 아름다운 문양과 견고한 축조기술이 돋보이는 이중 무지개형 다리로 비단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하여 '금천교'라 불리는 이 다리를 건너며 일행은 창덕궁의 '인정전'을 거쳐 '낙선재'로 향했다. 낙선재는 세자를 얻기 위해 간택한 후궁 경빈 김씨에 대한 헌종의 깊은 사랑이 담긴 전각이다. 예술에 관심이 각별했던 헌종이 책을 읽고 서화를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마련한 개인적인 공간으로 궁궐의 전각이면서 단청을 하지 않고, 다양한 문양의 장식들로 눈길을 끌었다. 아름다운 정자가 돋보여 많은 관람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살았던 곳으로 사대부의 집을 닮은 형태의 목조건물이어서 아주 편안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좋았다. 반나절 두런두런 얘기라도 나누며 편안하게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겨울철 창덕궁 후원 나들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가 그대로 숨 쉬고 있었다. 산행이나 원거리 여행이 쉽지 않은 겨울, 서울시내 고궁 나들이를 계획적으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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