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나는 매화꽃(?)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경은

발행일 2012.09.10. 00:00

수정일 2012.09.10. 00:00

조회 3,109

[서울톡톡] 환기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같은 동네에 살거나 작업을 함께 하는 작가들과 주민들이 참여한 문화축제 '부암동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이웃들의 삶의 이야기를 선보이고 자연스럽게 동네에 미술이 스며들게 했다.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인 김환기 작가의 특별 전시 <매화꽃이 있는 정원>에서 작가가 즐겨 다룬 주제는 '매화'다. 매화는 설중군자라 하여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움으로써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감흥을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은 시와 그림을 통해 매화의 덕을 칭송하고 그 고결함을 본받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와 근대 초기에 제작된 서화 유물을 전시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화가 갖는 의미와 주제를 함의하는 송영방, 문봉선, 이이남, 권기수, 구성연, 이동원, 김지혜, 김신혜, 이주영 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했다.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랗고 둥근 백자 항아리에 수백 년 풍파를 견딘 굵고 거친 매화의 큰 줄기와 가지가 그려져 있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김환기 작가는 매화도의 여러 형태 중에서 달과 함께 하는 월매도를 즐겨 그리고 둥근 달과 둥근 백자 항아리를 동일한 심상에 놓고 이들의 합일체를 달항아리로 여겼다고 한다. 1963년 1월에 쓴 '둥근달과 항아리'라는 수필을 보면 당시 작가가 가진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둥근 달과 항아리

달처럼 둥근 항아리를 모으다가 그것들이 수년 전에 다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다시 모을 정력도 경제력도 없지만 심심할 때면 무심코 빼어든 도록 속에는 체념해
버렸던 무수한 항아리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뚝 고향이 그립듯이 그런 생각에 젖는다.

항아리만을 그리다가 달로 옮겨진 것은 그 형태가 항아리처럼 둥근 달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또한 그 내용이 은은한 것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불란서 사람들 말에 '달 같은 바보'라는 말이 있다.
태양처럼 찬란한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은 항상 뜨거운 것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김환기, 1963년1월)

1층 오른쪽 방으로는 김환기 작가의 매화를 소재로 한 유화와 드로잉 작품을 통해 작가가 추구했던 정신 즉 우리 민족의 미감과 선비정신으로 대변되는 매화의 상징성을 자신의 작품 속에 나타내고자 한 의지를 보여준다. 왼쪽 방으로 가면 길고 긴 겨울 동안 씨를 품고 싹을 틔워 이른 봄꽃을 피우는 지조와 절개의 선비 정신과 매화에 대한 애정을 담은 조선시대 및 근대 고서화를 전시했다. 조선시대 문인과 학자 중에서 유일하게 매화에 대한 시문집을 만들었던 퇴계 이황은 평생 동안 지은 매화 시 90여 수를 엮어 문집을 만들었다. 이러한 선조들의 매화에 대한 애착과 전통이 어몽룡, 허련, 허백련 등의 작품을 통해 근대적으로 계승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당대에 문인화풍 매화 작업의 맥을 잇고자 송영방 작가의 정갈하고 소담한 작품, 문병선 작가의 기개가 넘치는 대담한 표현의 작품, 이동원 작가의 성실하면서 실험적인 설치 작품으로 문인화풍 매화의 현대적 계승과 모색을 전시장의 한 축에서 시도하고 있다.

2층에 올라가면 벽 한 면으로 거침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장승업 작가의 매화는 호방한 기운으로 그 공간을 압도한다. 겨울 동안의 긴 시간을 견디고 단단한 마디를 뻗어내어 꽃망울을 터트리는 매화의 여정이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인내와 올곧음이 작가의 붓끝을 따라 둥근달이 영상으로 매화를 중첩시키며 스쳐 지나간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 달을 따라가는 느낌이 들도록 생생하다.

강한 필력이 돋보이면서도 먹의 유연함이 담겨 있는 특유의 매화를 표현하고 있는 이동원 작가는 매서운 추위에도 꽃을 피우는 매화의 기질과 달빛 속에서도 은은하게 피어나는 선비의 기개와 유연함을 동시적으로 표현한다. 송영방 작가는 추운 겨울이 지나 이른 봄이 되면 가지에서 제일 먼저 돋아나는 꽃의 부드러운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다. 문병선 작가는 설경 속에 가장 먼저 꽃피는 매화의 강인한 고매함과 활짝 핀 매화의 그윽한 향기에 매료되어 거친 매화 가지나 꽃봉오리를 순수한 모습과 웅장한 자태로 표현했다.

구성연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의도적으로 연출된 배경 안으로 끌여들여 새로운 시각적 재미를 일으키는 사진 작업을 선보인다. 미각적 즐거움을 연상시키는 팝콘과 사탕은 작가가 재해석한 정물 사진 안에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꽃으로 재탄생된다. '팝콘 시리즈'는 선비의 고매함을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를 팝콘이라는 사물로 결합시킨 사진 작업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풍경 속에 조형미와 여백의 미 그리고 배경의 서정적 색감의 변화 등으로 매화에 대한 다채로운 감성을 전해준다.

3층으로 올라가면 다양한 매체와 재기발랄한 사유로 매화를 표현하고자 하는 당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우리시대의 탐매' 매화에 대한 다양한 교육적, 체험적 해석공간인 '매화서옥, 매화에 둘러싸여 매화를 탐구하다'를 통해 색다른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김지혜 작가는 전통회화의 연장선상에서 사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의미에 관심을 가지며 여성들의 머리와 장신구들을 세밀한 펜화로 표현하고 있다. 김신혜 작가는 다양한 생수병, 음료수에 깃든 자연 풍광에 대한 그리기를 시도하고 병과 상표, 문자와 이미지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캠퍼스 화면 전체로 확장하여 마치 아득하고 그리운 자연의 형상을 표현했다.

어느새 풀벌레 소리 요란한 가을 문턱에 다다랐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새 봄을 알리는 전령사 매화를 실제로 보는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을 통해 지난 봄날을 반추해보고 새로운 계절을 의미 있게 맞이하며 부암동 나들이나 서울 성곽길을 돌아보고 인왕산과 북악산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 들러서 작품들을 감상해보는 것도 알찬 문화 여행이 될 것 같다.

전시기간 : 9월 16일까지
문 의 : 환기미술관 02) 391-7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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