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허기를 채워준 문화 식사 한 끼

시민기자 박관식

발행일 2010.10.11. 00:00

수정일 2010.10.11. 00:00

조회 3,688

10월 9일 오전 11시 서울문화재단의 첫 번째 서울시 창작공간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2010 서울시 창작공간 페스티벌’의 말미를 직접 눈으로 관찰한 좋은 기회였다. 이번 페스티벌 투어 코스는 성북예술창작센터에서 출발해 연희문학창작촌을 거쳐, 정점에 달하는 한강공원 특별공연장에 이르는 이색 체험이었다.

서울시 창작 공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번 투어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은 순전히 호기심의 발로였다. 말로만 들어 왔던 ‘Seoul Art Space’를 눈에 담아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려는 '주인'의 배려인 셈이다. 물론 욕심이라면 11월 6일 두 번째 체험 투어, 11월 13일 세 번째 아트 투어, 11월 20일 교류 투어에도 참여하고 싶지만 부질없는 욕심일 게다. 찌든 삶에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문화 식사’도 지나치면 배가 부를 터이므로. 그래도 짬짬이 틈을 내 성북예술창작센터와 연희문학창작촌은 물론 서교예술실험센터, 문래예술공장,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등의 서울시 창작공간을 두루 찾아봐야 할 행복한 의무감을 가진 데 만족한다.

지난 2일부터 이들 6개 창작공간과 한강공원 여의도지구에서 열린 ‘2010 서울시 창작공간 페스티벌’은 9일 밤 화려한 한강불꽃축제를 거쳐 10일 대미를 장식했다.

숨어 있는 예술의 진주, 성북예술창작센터

옛 성북구보건소 자리에 ‘예술을 통한 치유·소통·나눔의 공간’으로 거듭난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지난 7월 28일 개관했다. 오전인 데다 덜 알려진 탓인지 창작 놀이문화를 즐기는 시민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창작센터의 모든 공간을 둘러보고 나니 새삼 배울 것이 풍족한 데 놀랐다. 결국 이렇게 훌륭한 창작 체험 프로그램이 많은데도 직접 겪어보지 못하는 서울시민들은 바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1층 성북예술다방에서는 따스한 커피도 무료로 마실 수 있다. 물론 행사 기간 동안만이다. 옆에 놓여 있는 문화기부금 저금통에 돈 천원이라도 넣으면 행복이 스스로 두 배 충전된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아이 혹은 연인과 함께 엽서에 소원을 적어 ‘성북소원나무’에 흔적도 남기고, 장난삼아 자신의 시력도 테스트해 보고, 버려질 자원을 모아 전시해 둔 ‘희망의 벽’에 희망도 그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옛날 보건소답게 다방 앞에 간단한 혈압 측정기라도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성북 가을 페스티벌은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알차고 튼실했다. 예술가의 눈으로 본 성북을 담은 전시 ‘소통-첫번째 공유전’, 마임공연 ‘몸짓으로 소통하다’, 아트 마켓 ‘시월의 어느 가을날-성북 기부 마켓’, 영화 상영 ‘공감 시네마-가족 애니메이션 릴레이’, 입주단체 오픈 스튜디오이자 체험 프로그램인 ‘예술로 만나다’ 등의 프로그램은 혼자 보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특히 시민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공방 워크숍이 눈에 띄었다. 음악 미술 치료, 디자인 및 사진 교육, NNR 미술, 몸짓 체험, 교육극 등 다양했다. 그야말로 부지런한 시민만 문화적인 삶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특혜다. 입주그룹 NNR의 디자인 작가 엄태신 씨는 “지역 주민들과 자생적 에너지를 공유하기 위해 색다른 드로잉을 마련했다”며 작가의 준비된 드로잉과 참여자의 즉석 드로잉을 접합하는 진정한 창작 기법도 전수하고 있었다. 진정 시민을 위한 눈높이 창작이다.

정적인 축제가 어울리는, 연희문학창작촌

옛 시사편찬위원회 자리에 마련한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 최초의 문학인 전용 집필실답게 지극히 문학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도심인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적막한 환경이 그랬다. 물론 찢어지게 가난한 「빈처」의 현진건 소설가가 쓰던 집필실을 떠올리면 안 되지만. 특히 문학과 잘 어울리는 단풍이 슬슬 사색하기 시작하는 창작촌의 풍경은 고즈넉했다. 다른 데와 달리 이곳은 마음의 안식을 채우는 공간답게 아기자기한 산책로와 쉼터 등의 동선이 구성졌다.

이곳 역시 가을 문학축제로 서서히 달궈지고 있었다. 연희문학낭독극장, 작가와 함께 걷는 길, 살아 있는 작가 대여, 미래 작가의 만남 등 프로그램이 장르답게 정적이다. 물론 딱딱한 문학의 구도에서 벗어나고자 전시 및 부대행사 프로그램도 준비해 평소 문학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틀을 깨는 시도도 눈에 띄었다. 작가들의 손바닥을 동판에 담은 ‘창작하는 손벽전’, 훈민정음 아트 디자인 전시, 미디어아트 전시, 트위터 이벤트 등이 정적이라면 방문객들에게 마술도 보여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마임 퍼포먼스는 동적인 분위기 메이커였다.

“아니지요. 황석영 선생도 고교 때 등단했습니다.” 미래 작가 신성욱 군이 기자의 말에 바로 맞받아친다. 때마침 소설가 정용준 씨와 대화하던 상대가 앳된 고교생이어서 고교 때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가 최인호라며 신군에게 희망을 전한 응보(應報)였다. 월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 「탑」이 등단작으로 알았는데, 신군은 1962년 고교 3년 때의 『사상계』 입상작인 「입석 부근」까지 기억한 것이다. 물론 신춘문예와 문예지 등단의 차이에서 온 넌센스였지만.

“네,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소지가 충분히 보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만한 열정을 가지고 글을 쓰면 무엇이든 못하겠습니까.” 내년 초 문학과지성사에서 창작집을 발간할 예정인 정용준 소설가의 귀띔이다.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합니다. 그래도 작가가 되겠다는 저의 마음을 꺾지 못할 겁니다.” 오전부터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은 소설을 쓸지 배우고 고민한 신성욱 군은 서울시민이 아닌 부천 중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린 문학도 앞에 문학하는 데 어디 서울과 부천의 경계가 있으랴. 그만큼 ‘2010 서울시 창작공간 페스티벌’은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수도권 시민들도 다수 참여하는 대한민국의 축제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그것이 바로, 서울의 몸짓이 세계의 몸짓인 이유이기도 하다. 축제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막 한강공원 축제 현장으로 가려는데 박형준 시인이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고은 시인을 모시고 창작촌으로 들어왔다. 옆에는 ‘작가를 빌려드립니다’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온 김인숙 소설가도 동행중이었다. 이번에 강력한 노벨상 후보로 올랐다가 아쉽게 떨어진 고은 시인의 특별문학강연이 3시부터 열릴 예정이었지만 일행은 한강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마냥 놀며 즐기고 웃는, 한강공원 축제

서울의 젖줄이라 불리는 한강, 그 아름다운 강가에서 ‘2010 서울시 창작공간 페스티벌’은 정점에 달하고 있었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때늦은 호우로 온통 흙탕물이 뒤덮여 있던 곳. 그러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깔끔한 공간으로 변모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말인 데다 한강불꽃축제까지 열려 한강 여의도공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화려한 불꽃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좋은 자리를 미리 차지한 시민이 있는가 하면, 각종 공연을 즐기는 행동파들로 두 부류였다.

투어 참가자들은 짧은 시간이지만 ‘나도 예술가’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 공예 맛보기 경험을 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모습을 먼발치로 보기만 하다가 손수 풀칠하고, 바니시를 덧칠하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려 버선 모양의 휴대폰 고리를 연결하는 일이 유치원생처럼 즐거웠다. 언제 내가 이런 유년 시절이 있었던가, 그 길고 아득한 연결 고리를 잇는 재미도 스스로 센티해지는 데 한몫했다. 참가자가 직접 체험한 부스는 ‘시험창작실’로 공예 실습은 물론 신당창작아케이드 작가들이 진행한 수업 결과를 전시하고 있었다.

여의도공원에 설치된 4개의 부스는 테마별로 다양한 예술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기획전시관은 신당창작아케이드, 금천예술공장, 연희문학창작촌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슬로우 푸드 카페 ‘도시 樂+’, 서울의 현재와 미래를 SF로 표현한 설치전, 문학 작가들이 직접 그린 자화상 등이 볼 만했다. 또한 서울창작공간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홍보관, ‘동방의 요괴들 77 - 하이서울 아트페어’ 축제를 펼치는 특별기획관이 시민들의 발길을 잡았다.

그밖에 하이서울 페스티벌과 연계한 가족 대상 공연과 공원 거리에서 펼친 특별공연에 시민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그로스 쿠튀르 유랑악단의 익살스런 거리 콘서트, 티라노 사우러스 공룡의 현실감 있는 거리 행진, 색깔 있는 사람들의 거리 퍼포먼스 등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말벌의 거리 퍼포먼스 때는 확성기로 연신 ‘아이들이 무심코 뒤따르다 길을 잃는다!’고 주의를 주는 해프닝이 일고, 얼굴에 푸른색 액체 유리관을 쓴 프랑스인의 퍼포먼스에도 많은 시민들이 신기한 듯 뒤따랐다.

점차 날이 어두워지면서 불꽃축제를 보려는 인파로 5호선 여의나루역은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해 사고가 우려될 지경이었다. 한강의 밤하늘을 환상적으로 수놓기 시작한 불꽃축제의 첫 포는 7시 27분에 시작되어 8시 52분에 끝났다.

‘2010 서울시 창작공간 페스티벌’은 지역거점형의 복합문화공간에 그치지 않고 한강까지 이끌어내 진정한 서울시민들의 창작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첫 출발이다. 창작이란 소위 소설가, 시인, 음악가, 미술가, 무용가 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 누구나 다 작가가 될 수 있다. 이번 페스티벌은 바로 서울시민들의 이런 작가적인 끼를 충동질한 데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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