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단장하는 마음가짐으로 만든 거리

admin

발행일 2010.06.28. 00:00

수정일 2010.06.28. 00:00

조회 1,682

관악로는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관악구청)에서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이르는 길로 2km가 조금 못되는 도보 약 30분의 거리다. 얼마 전 관악로를 찾은 데는 디자인서울거리 조성 막바지 공사가 있다기에 현장을 방문하자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20여년 전 직장 따라 서울에 와서 관악구청 바로 맞은 편에서 하숙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울 지리를 모르는 시골뜨기 형을 배려해 먼저 상경한 동생이 학교 기숙사에 있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모은 돈으로 자기 거처와 가까운 지하철역 근처에 월세 8만원짜리 방을 구해주었던 것이다.

집을 나설 때 당시 옛 수첩을 뒤져 하숙집 주소와 주인 이름 등을 알아내 찾아갔지만 하숙집은 온데간데 없고 새주소 '백설길'이란 이름과 번호가 부여된 신축 고시텔 건물이 하나 우뚝 서 있었다. 혹시 옛 하숙집 주인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찾아갔지만 흔적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자주 갔던 인근 낙성대골목시장과 정들었던 주위 골목을 돌며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 이맘때 저녁을 일찍 먹고 하숙하는 몇 분이 더운 방을 뛰쳐나와 시원한 밤바람 쐬며 함께 걷던 그길이 바로 지금의 관악로 디자인서울거리. 관악구청에서 출발하여 조금 경사진 관악로를 따라 서울대 정문쪽으로 향하면 관악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맞바람이 땀을 식혀주곤 했다. 되돌아올 때는 고시촌을 거쳐 하숙하는 사람들이 개척한 지름길인 작은 샛길을 다닌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도로변 건물이 깔끔하지 못했고, 도로 사정 역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디자인서울거리 조성 이후 그야말로 걷고 싶은 거리로 변모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관악로를 찾은 날, 관악로 디자인서울거리 막바지 녹지조성과 보도정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보도 가장자리에 일률적으로 줄지어 심은 일반 보도의 가로수와는 달리 가장자리뿐만 아니라 보도 중앙 쪽에도 가로수를 심어 보행자가 숲속을 거니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게다가 보도를 다양한 디자인으로 조성해 한참을 걸어도 전혀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장자리 큰키나무 가로수 하단에는 낮은키 나무를 촘촘히 심어 녹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했다. 그리하여 눈의 피로도를 줄이고, 도심 속 삭막함을 반감시키는 효과를 톡톡히 해내고 있는 듯 보였다. 새로 심은 일부 가로수는 대나무를 가로로 서로 잇대어 묶어 올여름 다가올지 모를 강한 비바람과 태풍 등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고정시켜놓은 것도 볼 수 있었다.

도로뿐만 아니라 주변이 산뜻해지고 생동감 넘치는 디자인 공간으로 변신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디자인거리와 주위 건물과 도로에 설치된 각종 시설물들이 조화롭게 구성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도블록, 주변 건물의 모양이나 색깔, 간판, 가로등, 공중전화부스, 휴지통, 보도 맨홀에 이르기까지 시설물 하나하나의 구성요소들이 상호 조화를 이룬 디자인으로 잘 단장된 느낌이 들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고시촌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전민권(32) 씨는 “좁은 방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나면 머리가 멍해진다. 그래서 저녁마다 관악로를 따라 1시간쯤 걷고 나면 기분 전환도 되고 마음이 상쾌해진다. 최근 들어 관악로를 디자인거리로 조성해 산책하면서 각종 시설들의 디자인을 보고 걷노라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고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고 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산책로 양쪽에 옹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각종 그림은 보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름, 산, 사슴, 두루미 등 십장생 문양은 마치 동양화 스케치북을 펼쳐 놓은 듯하고, 선조들의 삶과 인간을 주제로 한 탄생, 의사소통을 통한 공동체, 정보의 축적, 조화로운 삶 등 현대의 디자인을 상호 조화시켜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악산에서 뻗어내린 줄기의 울창한 숲과 옹벽의 덩굴손에서 뿜어내는 운치와 맑은 내음은 고향 산촌 숲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날 정도였다. 게다가 양 보도 사이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 중앙분리대에 설치된 아름다운 화분 장식 역시 관악로 디자인서울거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는“관악로 디자인서울거리 조성 이후 가로 환경이 개선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고,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도 부쩍 늘었다. 곧 마무리 공사가 끝나면 지역 명품 디자인거리로 변해 다시 찾고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서울의 명물 거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가게 운영에도 조금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바라건대 디자인서울거리 사업이 더욱 박차를 가해 명실공히 세계 디자인을 선도해가는 도시로서 그 아름다움과 멋을 한껏 담아낼 수 있었으면 한다. 일찍이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서울, 그 위상에 걸맞은 디자인으로 서울시 구석구석을 재구성해 아름답고 살기 좋은 문화도시, 세계인의 관광명소로 앞서 자리매김해 나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시민기자/박동현
edutop@edupia.com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