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대단한' 비하인드 스토리

admin

발행일 2010.03.17. 00:00

수정일 2010.03.17. 00:00

조회 4,397

시립미술관이 월요일은 개관하지 않는데 한 정유회사로부터 월요일 관람 초대권을 받고, 안 가면 손해일 거라는 아주 사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전시에 대한 홍보와 기사들을 자주 대했지만 산발한 머리의 앤디 워홀 자화상이 왠지 평온한 정신세계는 아닌 것 같아서 별로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열심히 해설해 주는 큐레이터를 만나게 돼, 한 작품 한 작품 그 사연들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매스컴에 자주 소개됐던 몇몇 작품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앤디 워홀은 야망이 워낙 커서 마티스처럼 될 거라’했다는 큐레이터의 한 마디에 귀를 쫑긋하게 됐다. 미술에 대해서, 그림에 대해서 별 지식과 조예가 없는 기자의 눈에도 언젠가부터 마티스 작품은 늘 기분좋게 하고, 흉내내보고 싶게 하고, 그런 컬러의 배치로 옷도 한 번 입어보고 싶게 하고, 그런 호기심과 충동이 있었기 때문에 점차 큐레이터의 흥미진진한 해설에 빠져들었다.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은 <앤디 워홀,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 나의 자화상, 영원한 아름다움과 일시적 아름다움>, <성공한 디자이너에서 팝아트의 제왕으로>, <타임 캡슐, 워홀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 <슈퍼스타 아이콘, 나는 헐리우드를 사랑한다>, <죽음과 재난, 냉정한 관찰자의 눈>, <빛과 그림자, 또 다른 실험>, <워홀의 최후의 만찬>, <워홀의 친구들, 팝아트는 모든 사람들을 좋아한다>, <워홀 라이브, 삶이 곧 예술이다> 등 총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큐레이터가 이 섹션의 순서대로 해설이라기보다는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듯, 어찌나 감칠나게 설명해주던지 어느 새 앤디 워홀의 삶에 동화되고, 그의 미술세계에 다가가고 있었다.

화려한 꽃그림으로 전시관은 화려했다. 선명한 색상의 그 꽃 이름은 히비스커스였다. 꽃그림은 인기가 좋아 무려 900장이나 찍었다고 한다. 반면에 건너편에 전시된 <달러사인 Dollar Sign>은 돈을 상징하는 화폐 기호로만 단순하게 그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그 그림을 거실에 걸어두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을 내서 많이 팔렸다고 한다. 도록에도 없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 덕분에 일행들은 큐레이터 옆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한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앤디 워홀의 펜으로 그린 초기 드로잉 작품들은 그저 개성이 좀 있을 뿐이었고, 그는 순수회화가 아닌 평범한 디자이너로 출발했었다고 한다. 피츠버그의 작은 백화점에서 일하면서는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백화점 자체가 천국이라고 감동하며, 성공하기 위해서는 뉴욕 같은 큰물에서 놀아야겠다는 욕구가 생겼던 젊은 시절의 앤디 워홀. 그는 300불과 잘 준비한 포트폴리오만 들고 뉴욕의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일한 끝에 불과 21세에서 25세에 맨하탄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하고, 고흐나 모네 같은 대가의 작품들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50년 대 상업디자이너로 출발하여, 60년대 팝아트로 미술계 정상에 올라 미술, 영화, 저널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누구보다도 많은 부와 명성을 쌓았다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 해설과정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공감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에 대한 평가 역시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예술가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대중의 기호에 재빠르게 영합하여 성공한 상업 디자이너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측면, 극과 극의 평가라는 것도 짧은 감상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세계를 잘 몰랐지만, 대중에게 익숙한 인물들에 대한 초상화를 보고 또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 오버랩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나 장편미술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붉은색 재키>, <마릴린 먼로>, <잉그리드 버그만> 등의 유명인들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진짜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연을 주인공으로 한 <모자를 쓴 잉그리드 버그만>은 서울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고 한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불륜 문제로 추방당하고 복귀하지 못했던 그 타이밍을 오히려 작품으로 만들어 상품화시켰다는 얘기다. 1962년 먼로가 의문사하자마자, 작품을 만든 <세 개의 마릴린>도 처음으로 실크스크린 기법에 손댄 작품인데, 기술부족으로 잉크가 번지는 등 미숙한 작품이었지만 죽음 자체가 화제가 돼 역시 상품성은 더 높아진 것이라고 한다.

<앰뷸런스 사고>, <전기 의자> 등 죽음과 재난 시리즈의 대표작들, 그리고 두개골(해골) 작품에서는 이미 그의 죽음 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17~18세기에 네덜란드 정물화나 인물화에 해골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은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큐레이터 설명에 오싹하기보다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아니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죽음을 가깝게 수용할 수 있는 계기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담낭수술을 받고, 페니실린 부작용을 모르고 주사하여 심장마비로 사망한 앤디 워홀, 그러나 그의 그림은 어둡지 않았다. 특히 말년에 그린 <그림자> 시리즈도 색깔의 변화를 재기발랄한 감각으로 풀어냈으며, 반짝거림이 심상치 않았는데, 그것은 실제로 다이아몬드 가루이며 스와로브스키 사에서 협찬한 것이라고 한다.

해설과 함께 한 감상을 다 마치고 나서, 재미있게 잘 들었다고 인사를 했더니, 큐레이터가 아니고 도슨트 이은혜 씨라고 한다. 도슨트를 정확히 몰라 반복해서 물어야 했다. 도슨트(docent)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용어로, 지식을 갖춘 안내인을 말하는데, 흔히 우리가 전시관에서 만나는 해설사들을 도슨트라 부르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미술전시장에서 해설을 해주는 사람을 막연하게 큐레이터(curator)라고 불렀는데 큐레이터는 전시기획자를 말하며, 석사 이상의 고학력을 요한다고 한다. 도슨트의 얘기에 귀기울여 들은 이야기가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부와 명성에 집착한 것을 솔직하게 드러낸 앤디 워홀의 세계를 접하고 나니까,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각자의 삶에 솔직하고 충실하고 열정적일까, 라는 물음표도 던지게 됐다.

봄비가 내리는 덕수궁 돌담길과 돌담길 따라 펄럭이는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이라는 플래카드, 대비를 이루는 이 광경 자체도 하나의 작품으로 와 닿았다. 오는 4월 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 전시를 관심 갖고 들여다 본다면 틀림없이 한 차원 높은 종합예술의 세계를 체험한 것 같은 포만감으로 뿌듯해질 것이다.

시민기자/이은자
hrccle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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