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도시를 찾아서

admin

발행일 2010.03.04. 00:00

수정일 2010.03.04. 00:00

조회 2,217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태양의 아들 잉카전'에 다녀왔다. 벼르고 벼르다가 전시가 시작된 지 80일이 지나서야 방문했다. 그리고 결국 전시를 2번이나 다녀왔다. 첫번째 방문했을 때는 봄방학이어서 학생과 시민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두 번째 갔을 때는 학기 중 평일이라 좀 더 여유있게 전시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안데스 고대문명에서 잉카문명까지 총 351점의 페루 국보급 유물이 국내 최초로 전시되는 현장은 굉장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박물관측에서도 잉카문명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무려 2년에 걸쳐 준비했다고 한다. 그래서 잉카문명의 진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한다. 특히 세계 문화유산 마추픽추에서 출토된 유물 13점과 세계 고고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중 하나로 여기는 시판 왕 피라미드 출토유물 41점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이다.

전시는 크게 문명사의 흐름에 따라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BC 3,000년 안데스
고대문명의 신화와 전설

파라카스 미라

2부

고대문명의 발전

차빈, 모체, 나스카, 와리, 시판왕의 황금유물과
안데스의미라

3부

황금제국 잉카, 잉카의 멸망

잉카의 주요 유적, 공중도시 맞추픽추,
우주의 배꼽으로 여겨졌던 쿠스코

1부 전시에서 주목할 유물은 파라카스 문명의 미라를 쌌던 직물이다. 죽은 뒤에도 삶이 이어진다고 믿었던 고대인의 생각을 알 수 있는데, 직물의 수량과 질은 무덤 주인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귀족일수록 정교하고 아름다운 직물을 여러 겹 쌌다.

2부에서는 고대문명의 희생의례를 접하게 된다. 그들은 자연을 지배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으며 어떠한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신들이 분노한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신들을 달래고 기쁘게 하기 위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의례를 열었다.

시판(Sipan)에서는 모체 문화 최초로 통치자 중 한 명이 세상에 그 기품을 떨치며 역사의 재건을 위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곳에서는 시판 왕, 늙은 왕, 제사장, 장군, 왕비, 전사 등 시기와 계급이 다른 10개의 무덤이 각 층에서 산발적으로 발견됐다. 수많은 황금 부장품과 신과 같은 존재인 왕을 표현한 각종 신상들, 순장자들은 이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왕과 함께 묻힌 사람들은 왕과 가장 가까운 자들이었을 것이며, 그들의 장신구들은 그들의 지위와 살아생전의 역할을 말해주고 있다.

안데스의 미라를 통해서는 잉카인들의 사후에 관한 사고를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이 죽으면 보통 옷을 입히고 가면을 씌워 먹을 것과 마실 것 뿐만 아니라 생활용품을 같이 묻었던 그들은 살아있었던 마지막의 모습으로 사후에도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안데스의 미라는 그래서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앉아 있고, 천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염분을 많이 함유하고 건조한 그곳 토양의 특성상 아직까지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관람객 두 분에게 이 유물전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역시 안데스 미라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놀라운 게 또 하나 있다. 피라미드의 '늙은 왕 관'에서 출토된 부장품 가운데에서도 가장 놀랍고도 불가사의한 형상을 한 금동제 펠리노 신상이다. 펠리노 신은 모체 종교에서 가장 숭배를 받았던 신이다.

이제 3부로 넘어간다. 황금의 제국 잉카에 관한 유물들이다. 잉카제국은 차빈, 모체, 나스카, 와리문화가 있는 지역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하나의 통일국가로 통합했고,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인 통일을 이룩하였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일어난 잉카문명은 통일 이후 행정관을 배치하였으며 다른 부족들에게 잉카식 통치 구조를 강요하였다. 잉카의 태양신을 최고의 신으로 모시게 하고 잉카의 언어인 케추아어를 가르쳐 잉카제국의 통치권에 편입시켰다. 특히 도로망이 발전하여 '잉카의 길(왕 의길)'이라 불리는 도로망을 구축했는데, 아무리 멀어도 단 며칠 안에 지역의 정보가 잉카의 중앙정부에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잉카인들에게는 문자가 없었다. 그러나 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도로망의 정비와 더불어 정보의 전달과 기록수단이 필수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키푸'는 다양한 굵기와 색깔의 끈에 여러 종류의 매듭을 여러 위치에 만들어 정보를 기록한 일종의 결승문자다.

물론 신비의 도시 마추픽추에 관한 유물도 만나볼 수 있다. 해발 2280m 정상에 세운 마추픽추는 산자락에서는 볼 수 없어 공중도시라고도 불린다. 1911년에 예일대학교 출신 사학자 하이렘 빙엄(Hiram Bingham)이 소위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라 불리는 미스터리를 밝히는 잉카 건축을 발굴했다. 마추픽추는 잉카 귀족, 성직자, 여사제 그리고 선택된 여성(aclla)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신성한 신전이라고 간주되었다. 산 정상에 도시를 만든 것도 수수께끼지만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들인 수로 시설, 건축기술까지 갖춰 잉카인의 비상한 두뇌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잉카제국은 왜 멸망했을까? 피사로를 선두로 한 180여 명의 스페인 병사가 침투했고, 유럽에서 질병이 따라 들어왔으며, 제국 내의 세력다툼으로 분열된 잉카사회는 혼란에 빠졌다고 전한다. 마침내 쿠스코에 침입한 스페인 군대가 잉카의 황금에 눈이 멀어 절대적인 잉카의 왕을 쓰러뜨리고 1553년 그 왕을 처형시켰다. 그즈음 잉카인들에게 있어 숭배의 대상이자 정신적 구심점이었던 선조들의 미라 역시 파괴됐고 잉카제국은 빠르게 몰락해갔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400년 가까이 안데스 지역을 평정하고 통치했던 잉카제국이 200명이 채 안 되는 스페인 군대에게 그토록 쉽게 멸망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태양의 아들 잉카전'은 신비로움과 흥미로 가득 찬 전시다. 페루에 가지 않고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이색적인 유물들과 잉카의 문화와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장을 들어선 당신은 고대생활인으로 돌아가서 저 유물들과 하나가 되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3월 28일까지다.

시민기자/지재희
gi1948@naver.com
http://blog.naver.com/gi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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