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한국 현대미술의 만남

admin

발행일 2010.03.03. 00:00

수정일 2010.03.03. 00:00

조회 2,214

올림픽공원 안에 자리 잡은 소마미술관에서 ‘아이로봇, I Robot 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과 로봇. 엇갈리는 조합이라 어떤 파격을 기대한다면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익히 우리가 아는 낯익은 모습들이 반긴다. 아톰, 로봇 태권브이, 마징가 제트……. 조금은 의아하다. 어쩌자는 말인가? 언제나 정의의 사도로 무적의 주먹을 뽐내거나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를 지키던 그들의 영웅담을 다시 듣기에는 우리는 너무 커버렸는데. 하지만 조금의 인내심을 갖고 전시장을 둘러보면 그 의문은 쉽게 풀린다.

전시의 타이틀이 된 '아이 로봇'은 아시모프가 쓴 원작에서 차용되었다고 한다. 아시모프의 이 소설은 다양한 연대, 캐릭터, 장르로 엮여 있는 아홉 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을 내레이터로 하여 연속성을 갖는 구조다.

로봇은 어쩌면 인류가 가장 만들고 싶어하는 꿈과 이상의 결정체다. 오랫동안 인류는 자연이나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들을 관찰하면서 상상력을 키워왔으며 이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불가능해보이던 많은 것들을 실현해 냈다. 하늘을 날아 대륙을 오가는 것은 이미 낡은 기술이고, 우주에 로켓을 쏘아 올리고 다른 생명체를 복제해 내기도 한다. 무한대로 확산되는 인간의 상상력, 그리고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과 기술. 로봇은 현재로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상상의 끝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했듯이 인간은 자신을 닮았으나 자신을 대신해 현실의 제한이나 굴레를 초월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상상하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질병이나 죽음 고통 등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존재. 그 막연한 상상이 구체화된 산물이 바로 사람을 닮은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다. 물론 인간이 기대하는 초월적 능력을 가진 로봇은 아직 현실세계에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실망하지 않는다. 냇가에서 종이배를 띄우며 먼 바다까지 가리라고 믿는 아이들처럼 로봇의 무한한 진화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아이 로봇' 전시는 크게 이분법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즐거운 상상을 위한 ‘메가-히로’(mega-hero)로서의 로봇, 그리고 현대적인 인터랙션(interaction)과 퇴행욕망에 얽힌 키덜트(kidult)적 로봇이 그것이다. 즉, 파워에 관한 언급이자 인간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전시회는 우리에게 어리석은 의문을 갖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과연 어디까지가 로봇이고 어디부터가 인간일까?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정말 있을까? 로봇과 인간이 꿈꾸는 것은 기계적 인간인가, 인간적 기계인가? 하지만 굳이 복잡하게 따질 필요는 없다. 작가의 상상력이 현대문명의 산물인 로봇과 합작하여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상상을 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이 로봇' 전시는 또한 로봇을 통해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꿈꾼다. 이질적으로 여겨졌던 두 영역이 인간의 상상력으로 조화롭게 만나 상상 속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인간의 상상력은 다양, 그 이상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과거의 기억을 통한 유희적 표현으로 회화적 릴리프를 만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원색의 돈키호테, 찰리 채플린, 배트맨 등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난다. 이런 대중적인 아이콘들은 개인적 추억은 물론 동시대 사람들 사이의 이해와 소통을 돕는 훌륭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재료의 다양성도 빼놓을 수 없다. 김동호 작가는 폐기된 전자제품들을 해체해 재결합하는 방식으로 무당벌레, 사슴벌레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졌다가 소용이 없게 되자 버려진 전자제품들을 불러 모아 다시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 이것은 단순히 기발한 발상인가 아니면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들을 대신한 작가의 사죄인가?

로봇을 주제로 한 이 특이한 전시회는 아쉽게도 14일이면 막을 내린다. 백남준, 고근호 등 총 16명의 대한민국 대표 작가들의 설치작품 속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현대인의 심리상태와 얽혀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는지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혹시라도 놓치신 분들이라면 이번 주말을 이용해 방문해보시기를 바란다.

■ 아이로봇, i Robot

- 전시기간 : 3월 14일 일요일까지
- 전시작품 : 설치 작품 60여 점, 로봇유물 33점 등 총 100여 점
- 참여작가 : 고근호, 김동호, 김 석, 김영호, 낸시랭, 노진아, 백남준,
구보타 시게코, 백종기, 용 관, 유영운, 왕지원, 이기일, 이해민선,
정우철, 최우람
- 교통편 :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 평화의 문에서 오른편으로
200미터 도보
- 문의 : 02) 425-1077, http://www.somamuseum.org/

시민기자 주명희
jmh4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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