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에 더 소중한 잡지

admin

발행일 2010.02.04. 00:00

수정일 2010.02.04. 00:00

조회 2,613



시민기자 선하리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학창 시절, 우리에게 H.O.T 오빠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TV나 라디오, 그리고 반질반질 광택지에 인쇄되어 나온 멋진 잡지 사진들이었다. 엄마 몰래 준비물 사고 남은 돈을 열심히 모아 손에 넣은 잡지를 우리는 행여 사진에 지문이라도 묻을 새라 조심조심 감상하곤 했다. 젝스키스 오빠들이 나온 페이지는 곱게 잘라서 팬인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아량도 베풀었다. 우리는 그렇게 잡지를 보며 자랐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잡지가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이야기한다. 잡지에서 얻던 정보를 이제는 인터넷에서 더 빠르고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어린 친구들은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 연예인 사진을 찾아보고 즐긴다. 에세이 잡지를 통해 삶의 행복과 고민을 나누던 4~50대 중년들도 요즘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실시간으로 삶을 공유한다. 예전 대학생들은 어렵게 구한 타임지 영문판을 돌돌 말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폼을 잡았지만, 오늘날은 인터넷을 통해 외신 기사를 읽어볼 수 있다. 더 이상 잡지는 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전유물로만 남는 것일까?

잡지는 죽지 않는다는 생명력과 가치를 전파하는 곳이 있다. 한국잡지 100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한국잡지정보관>이 그 곳이다. 정보관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수 천여 종의 잡지들은 잡지의 사양화란 우려를 일순간에 불식시킨다. 시사지, 경제지, 교양지, 여성지 등 그 분야만 해도 약 30여 개에 이른다. 또한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잡지박물관은 한국의 잡지가 단순 정보의 보고가 아닌 시대의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지님을 알 수 있다.

잡지를 일컫는 영어인 매거진(Magazine)은 본래 창고의 뜻을 지닌 프랑스어인 'magasin'에서 온 말이다.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란 의미대로 잡지는 한국의 잡지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말엽부터 민중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여 정신적인 삶의 풍요를 도왔다. 특히 외세에 의해 국권이 흔들렸던 격동의 20세기 초, 잡지는 국민 계몽의 중요한 길잡이였다. 최초의 잡지인 『대죠션독립협회회보』를 비롯하여 문예지『창조』, 육당 최남선 선생의 주간지인 『개벽』등의 잡지들은 모두 민족사상을 고취시켰던 귀중한 정신적 재산이었다. 일제 치하 해방 이후 현대에 들어서 더욱더 다양화된 잡지들은 급격히 변모하는 사회 속에서 가벼운 읽을거리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좋은 친구였다.

정보관 내에서도 잡지를 친구삼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엄마는 인테리어 잡지를 읽고 아들은 그 옆에서 동물 관련 잡지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 대학생은 패션 잡지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 하고, 중년 아저씨는 시사 잡지를 펴든 채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뭔가를 메모하고 있었다. 정보관 사서인 김수선 씨는 "하루에 4~50명 정도가 정보관을 찾아와 잡지를 즐겨 읽는다"면서 "매일 찾아와 잡지 삼매경에 빠지는 단골들도 적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이 곳 정보관은 단순 잡지 열람의 기능만 하지 않는다. 그간 발매되었던 대부분의 잡지들이 보관되어 있어 지나간 삶의 자락을 들춰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준다. 김수선 씨는 "이미 폐간된 것들도 포함하여 약 1만여 종의 잡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요청만 하면 원본이나 영인본(影印本), 또는 데이터베이스사업을 통해 구축된 이북(e-book)으로도 열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궁금한 마음에 예전 잡지들 몇 권을 직접 열람 요청해보았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최남선 선생이 발행한 최초의 어린이 잡지인 『붉은져고리』 창간호 영인본. "우리는 큰 세상 붉은 저고리 입는 이들의 귀염 받는 동무가 될 양으로 생겼습니다"란 인사말로 표지를 장식한 잡지 안엔 깨알 같은 글씨의 이야깃거리가 가득 담겨져 있다. 한글전용이라 100년 전의 것이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토막으로 실린 그림 만화는 그 당시의 해학을 생생히 전달해주어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어머니 세대가 읽었을 70년대 잡지 『여고시대』에는 당시 트렌드를 반영하는 각종 광고들과 여고생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요즘 남자친구를 가지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저는 남학생들만 보아도 쑥스러워 말을 건네지 못하겠어요" 라는 여고생의 인터뷰가 새삼 신선했다. 자유로운 이성 교제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하던 70년대 고등학생들의 고민이 2000년대 고등학생으로 살았던 기자 본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밖에.

이렇게 잡지는 지나간 삶을 축적해둔 소중한 역사책이지만, 창간하는 잡지 수가 한 달에 10~20여 종인데 비해 폐간되는 잡지 수는 훨씬 많다. 매주, 매월 또는 계절마다 발행되는 잡지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던 시대가 지나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손쉽게 정보를 검색해볼 수 있는 IT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문을 비롯한 모든 활자 매체가 사양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잡지의 명맥을 더욱더 활성화시키려는 잡지계의 노력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에 개최된 2009 매거진페어(2009 Seoul Magazine Fair: SEMA)가 그 일환이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유일의 매거진 페어였던 이 행사는 잡지 산업에 대한 홍보뿐만 아니라 온라인화/디지털화를 통한 잡지의 재전성기를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보관 내에서 컴퓨터를 통해 과월호 잡지를 이북(e-book)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노력 덕택이다.

잡지는 시대의 격변을 함께 해온 민족 계몽의 스승이자, 모든 지식을 아울러 보여주는 문화의 창이다.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인터넷이란 정보의 홍수 속 헤엄이 버거울 땐 잡지정보관을 들러보자. 인터넷에서도 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지난날 추억이 되살아날 일상 속 작은 여행이 될 것이다.

◈ 잡지정보관

- 개관시간 : 10:00~18:00(일요일, 공휴일 휴관)
- 교 통 편 : 지하철 5ㆍ9호선 여의도역 5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
잡지회관 건물 지하 1층
- 문 의 : 02) 780-9132, www.kmpa.or.kr/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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