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부암동 중년신사

admin

발행일 2007.11.16. 00:00

수정일 2007.11.16. 00:00

조회 3,214



시민기자 이혁진




지난 일요일 종로 세검정 창의문 근처에서 친지모임이 있었다. 모임장소에 대해 이미 대충 전해 들었지만 막상 당일엔 경복궁역에서 길을 물어서 가야 했다. 경복궁역에 내려 매표창구 직원에게 우선 창의문까지 가는 교통수단을 물었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지하철과 버스의 연계 정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역에 비치된 자료나 지도에도 창의문 가는 정보는 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세검정 방향으로 무조건 나갔다. 일단 나가서 행인에게 물어볼 심산이었다.

지하도를 나오니 마침 두 명이 한 조가 돼 걸어가는 순경들이 보였다. 구세주를 만난 듯 그들을 세우고 교통편을 물었으나 실망스럽게 그들도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인근 청와대와 경복궁을 위해 순찰 중이라고만 했다. 처음 창의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이곳 경복궁역에선 사실 나처럼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호천사는 멀리 있지 않았다. 순경을 붙잡고 얘기하고 있는 나에게 안내하겠다는 중년의 신사가 갑자기 다가섰다. 창의문을 묻는 것 같기에 걸음을 멈춘 것이다.


"세검정은 알아도 창의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창의문보다는 자하문으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북악산 길이 일부 개방되면서 창의문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의 말이다.

창의문 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세검정길은 다섯 개 동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구기동, 평창동, 홍지동, 신명동, 부암동입니다. 가시는 곳은 부암동사무소에서 오던 길로 조금 내려가면 바로 창의문 근처입니다" 버스를 탄 짧은 시간에도 그는 창문에 비치는 청운동길과 주변 산책길을 설명해 주었다.

요즘 세태에 남에게 친절히 갖가지 정보를 가르쳐 주며 상세한 안내까지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사실 그는 경복궁역에서 자기가 사는 부암동까지 운동 삼아 걸을 때가 많은데 오늘은 나 때문에 버스에 동행했다고 귀띔했다. 그분은 기꺼이 나를 위해 안내자가 돼 준 것이다.

솔직히 부암동이라는 동네를 처음 들렀지만 좋은 인상으로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초행길이라도 그분의 따뜻한 배려로 친숙한 내 고향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조촐한 친지모임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부암동 중년 신사에게 재삼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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