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추억여행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6.06.30. 00:00

수정일 2006.06.30. 00:00

조회 1,586

종로 추억여행

시민기자 이혁진

종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보신각

최근 30년 만에 만나는 해외에서 찾아온 지인과 함께 추억에 빠져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고국을 떠나기 전 지금의 종로 조계사 부근에서 살고 있었다. 그 무렵 나도 그가 살던 동네에 살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반갑고 만나는 기쁨이 컸다.

외국에 살면서 언젠가 고국을 밟겠지 하던 것이 지금에서야 고향을 찾았다는 그는 잠시 회한에 젖었다. 하지만 그의 추억은 너무도 또렷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특히 종로에 대한 기억들은 마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착각마저 들었다.

종로 네거리부터 시작하는 그의 추억에는 단순한 기억 이상의 자부심이 들어 있었다. 그게 바로 애국심일지도 모른다는 애틋한 그리움과 함께 뒤섞여 있었다.

우선 종로 네거리를 중심으로 화신백화점과 신신백화점, 그 주변 골목과 극장 우미관을 떠올렸다. 그리고 YMCA 건물, 파고다 공원(지금의 탑골공원)등을 대한뉴스의 필름이 돌아가듯 기억해 냈다.

조계사 방향으로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종로, 서울예식장이 있었고, 종각(지금의 보신각)과 종로서적까지... 종로네거리를 찾은 우리는 추억 더듬기에 여념이 없었다.

종로네거리가 번화가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석

그가 기억해 내는 이정표들은 하나같이 우리와 함께 했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는 한시도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종로를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종로에 대한 그의 기억은 외국에 살면서 더욱 각인됐다는 사실에 놀랍다. 국내에 머물던 나는 그러한 과거를 잊고 지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기 조차 했다.

그의 추억은 계속됐다. 종로는 종이 많았던 곳이라는 설명부터 종각역은 보신각역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종로 네거리가 광화문보다 더 번화가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추억여행은 점점 깊어져 갔다.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그의 정확한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과 추억이 보다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없어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리라.

다행히 종로네거리에 버티고 있는 보신각은 종로의 영화(榮華)와 자부심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외국에서 간간이 보게 되는 서울 표정 속에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는 마치 고향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가끔 과거로 시간여행이 필요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교훈과 가르침이 소중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종로 추억여행을 통해 잊혀가는 과거를 새삼 일깨워준 고국을 찾은 그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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