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절망하지 않기 위해

admin

발행일 2009.07.13. 00:00

수정일 2009.07.13. 00:00

조회 1,444

지하철역에서 마주치는 노숙인, 부모님도 없이 할머니와 어렵게 사는 소녀가장, 사업을 접고 가족과 흩어져 사는 가장 ……. 어떤 이들에게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다. 이들에게 하루는 즐겁고 기대감이 가득찬 시간이 아닌, 그저 견뎌내야 하는 일상일 뿐이다.
서울시는 이런 이들을 위해 지난해 ‘희망의 인문학’을 개설했다. 기존의 복지정책이 생활비를 지원해주거나 건강을 챙겨주는 사업이 대부분이었다면, ‘희망의 인문학’은 인문학강좌를 통해 노숙인 등 저소득 소외계층의 자립의지를 돕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 시행할 당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 강좌라니, 뭔가 의아하지 않은가.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위해 탄생한 '희망의 인문학'

인문학 강좌의 역사는 1995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문필가 얼쇼리스가 ‘클레멘트’란 이름으로 소외계층을 위해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것이 발단이 됐다.
얼쇼리스는 빈스워커라는 여죄수와의 인터뷰에서 소외 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빈스워커는 가난의 이유를 묻는 얼쇼리스의 질문에, “잘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정신적인 삶을 우리는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신적인 삶, 그것은 단순히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문화 생활을 통해 얻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그 뒤 얼쇼리스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클레멘트’ 코스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교육을 받은 사람 중 범죄와 가난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프로그램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긍정적으로 변하는 자신을 느껴요”

서울시는 지난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클레멘트코스인 ‘희망의 인문학’은 인문학강좌, 건강강좌, 성공사례발표회, 문화체험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정신적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강좌는 총 6개월 과정으로 꾸며지는데 철학, 문학, 역사, 예술, 글쓰기를 비롯하여 영화, 연극 등 문화체험과 문화유적지 답사 등으로 이뤄진다. 지난 해 수료생은 209명. 입학생은 313명이었지만, 100명 가량이 건강, 취직, 가정문제 등으로 안타깝게 중도 포기했다.

시행 결과 수료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162명 응답)를 살펴보면, 82.4%가 과목, 특강, 체험학습 등에서 만족스러웠다고 전했다. ‘강좌를 듣고 변화가 있었냐’는 질의에는 95%가 사회불만이 줄어들고, 사회에 대한 이해심과 개인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이 생겼다고 답했다.

지난해 노숙인반을 수료했던 김강우(가명) 씨는 “길거리 생활 10년째,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무렵, ‘희망의 인문학’강좌를 만났다”며, “오래간만에 뭔가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또 저소득주민반의 권민영(가명) 씨는 “철학, 예술, 문학 등의 과목과 체험학습을 경험하면서 나도 모르게 전에 없던 삶에 대한 자존감과 희망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자활근로자반의 조미수(가명) 씨도 마찬가지였다. 조 씨는 네 자녀를 둔 40대 여성가장으로, 강좌 참여 후 삶의 목표가 바뀌었고,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는 자신을 느낀다고 말했다.

올해 총 47개 반 편성, 1,500여명 참여

‘희망의 인문학’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된다. 이미 1,500여명의 저소득층이 3월과 5월 ‘희망의 인문학’ 강좌를 신청했다. 총 6개월 과정으로, 시는 참여자의 특성에 맞춰 노숙인반, 저소득층반으로 나눠 총 47개 반을 편성했다. 이는 지난 해 12개 반에서 4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수강생들은 9월, 11월 졸업 때까지 경희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성공회대 등 서울소재 4개 대학교에서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 강좌와 문화공연, 유적지 탐방 등의 체험학습, 저명인사 초빙 특강 등을 듣는다.
또 수강생들에게 필요한 경영 재무 컨설팅도 이뤄진다. 서울시는 2010년까지 총 3,500여 명이 ‘희망의 인문학’을 들을 수 있도록 매년 단계적으로 참가자를 늘릴 계획이다.

참여자를 늘려야 할 만큼 ‘희망의 인문학’은 우리 사회 소외계층에게 또 다른 ‘희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얼마의 돈이나 몇 끼의 밥도 중요하지만, 노숙인·저소득층이 원하는 건 삶에 대한 의욕과 자존감 회복이다. 모든 삶의 발단은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문학의 힘이요, 서울시가 ‘희망의 인문학’을 시행하는 이유다.

문의 : 120다산콜센터 ☎ 120

▣ 이어지는 기획시리즈에서는 '디딤돌사업'을 찾아갑니다.

하이서울뉴스/조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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