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밤섬을 기억하는 전통 '밤섬부군당제'
발행일 2020.02.10. 14:18
50여 년 전인 1968년 2월, 여의도 맞은편에 있던 밤섬이 사라졌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한강의 흐름을 좋게 하고 윤중제에 쓸 자재를 얻으려 밤섬을 폭파한 것이다. 그때까지 밤섬에 살고 있던 62가구 443명의 주민들은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중턱으로 이주했다.
1968년 당시 여의도 윤중제 공사 ©서울역사박물관
지난 1월26일 창전동 아파트 숲에서는 피리소리, 해금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밤섬부군당제’가 거행되었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다녀야 했던 밤섬 주민들이 매년 음력 1월 2일, 즉 설 다음날 모두의 안녕과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며 드리던 마을 공동체의 기도가 재연되었다. 고향을 떠나올 때 주민들은 조상들이 수호신을 모셨던 부군당도 함께 옮겨왔다. 그리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매년 마을대표를 뽑아 무녀와 함께 부군당제를 거행해왔다.
밤섬부군당은 밤섬을 떠나 마포구 창전동으로 옮겨졌다 ©이선미
어렵사리 밤섬부군당을 찾아갔다. 공민왕 사당을 지나 아파트 사이 오솔길을 따라 들어간 부군당은 좀 비좁았다. 원래는 좀 더 높은 곳에 밤섬을 내려다보며 있었지만 아파트를 짓기 위해 또 한 번 옮겨야 했다. 많은 시민들이 부군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민들이 밤섬 사진들을 보며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선미
부군당제는 밤섬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봉제거행으로 시작해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전통문화를 아름답게 잘 이어온 마을굿으로 전승 가치를 인정받은 밤섬부군당굿은 2005년 1월 10일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서울시에는 다섯 개의 굿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인 새남굿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이다. 그리고 남이장군 도당굿, 봉화산 도당굿, 밤섬 도당굿, 행당동 애기씨당굿이 서울시 지정 문화재이다.
밤섬부군당굿은 오랜 세월 마을사람들과 함께한 전통문화였다 ©이선미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의 삶과 함께했던 무속 신앙은 오늘날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시골에서도 굿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굿은 전근대적인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급격히 퇴출되었다. 그나마 각 지자체가 다양한 사설과 춤, 음악 등의 민속학적 가치를 인정하며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명맥을 이어오게 되었다. 밤섬 도당굿 역시 문화재로 지정된 후 마포문화원이 주최하고 밤섬부군당제 보존위원회가 주관하여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부군당 마당에 폭파되어 사라지기 전 밤섬의 풍경들이 전시되었다 ©이선미
‘밤섬부군당제 보존위원회’는 “이제는 실향민이 된 밤섬 주민들만이 아니라 서울 시민과 마포의 발전을 위한 모임의 장으로 마포의 전통문화를 꽃피우는 장소”가 되었다고 부군당제의 의미를 밝혔다.
부군당 한쪽에 이주하기 전 밤섬의 약도. 옛 밤섬에는 드문 성씨인 함씨, 판씨, 표씨 등이 많이 살았다 ©이선미
밤섬부군당을 나와 서강대교를 걸어가며 밤섬을 내려다보았다.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들이 휑뎅그렁했지만 생명력이 가득한 섬이었다. 폭파 이후 일부만 남아 있던 섬에 퇴적물들이 쌓이면서 섬은 이전보다 넓은 면적이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버드나무, 갯버들 등이 다시 자라면서 철새들이 찾아들었다. 매년 흰뺨검둥오리, 해오라기, 민물가마우지, 쇠백로, 고방오리 등 86종 5000여 마리 새들이 찾는 밤섬은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로 보전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재생 중인 밤섬의 생태계는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로 가치가 높다 ©이선미
대도시 한복판에 습지이자 철새도래지가 있다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라고 한다. 밤섬 주민들은 매년 추석을 앞두고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고향 섬을 찾아 향수를 달래는 행사를 갖고 있다.
서강대교 아래 밤섬은 생태계가 복원되며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이선미
옛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다양한 생물종이 깃들어 살아가는 밤섬을 바라보며, 옛 모습을 잃어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생각했다. 폐허가 되었던 섬에 다시 수목이 자라고 새들이 찾아오는 것처럼 끊어졌던 전통문화도 새롭게 싹이 트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역사가 그 안에 담겨있다.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