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년을 푸르게" 능말 옛터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9.12.04. 11:34

수정일 2019.12.04. 12:48

조회 561

강서구 방화동 느티공원 ⓒ박분 

강서구 방화동 느티공원 ⓒ박분

예로부터 마을 어귀에는 넉넉한 품으로 마을을 지키는 나무가 있었다. 계절을 먼저 알려주고 언제나 변함없이 맞아주는 엄마의 품 같은 나무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나무 아래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고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에서 땀을 씻으며 쉬어 가기도 했다. 강서구 방화동 느티공원에 가면 그런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자그마치 네 그루나 된다.

  마을을 지켜온 나무에 감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마을주민들 ⓒ박분 

마을을 지켜온 나무에 감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마을주민들 ⓒ박분

가을 단풍이 곱던 11월의 어느 아침, 방화동 느티공원에서는 마을주민들이 모여 조촐한 제를 올렸다. 음력 10월, 상달에 올리는 연중행사로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나무에 올리는 감사의 의식이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이다.

  강서구 방화동 느티공원의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안내문 ⓒ박분 

강서구 방화동 느티공원의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안내문 ⓒ박분

느티공원에는 나란히 어깨를 맞댄 채 서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와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네 그루의 나무는 모두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이다.

은행나무가 1972년에 보호수로 먼저 지정됐고 2년 뒤에 느티나무도 보호수로 지정이 됐다.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의 수령이 은행나무가 435년, 느티나무가 480년으로 추정된 것을 감안하면 현재 이 나무들의 수령은 500년에 근접해 있거나 이미 넘어섰다. 나무들의 높이는 무려 26m에 이른다. 아파트 6층을 훌쩍 넘는 높이다.

   공원 안팎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박분 

공원 안팎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박분

나무들은 올 가을도 아름답게 단풍져 마을을 환히 밝히고 있다. 너른 품새의 느티나무는 잎새에 울긋불긋 색을 입혔고 은행나무는 샛노랗게 단장을 했다. 공원 안쪽에서 보면 느티나무가 더 화려해 보이고 공원 밖 도로변에서 보면 은행나무가 더 눈부시다.

표피를 드러낸 채 콘크리트로 보수한 은행나무의 모습 ⓒ박분 

표피를 드러낸 채 콘크리트로 보수한 은행나무의 모습 ⓒ박분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나무들은 수백 년의 성상을 견뎌낸 만큼 기골이 많이 쇠한 모습이다. 구부정한 느티나무는 군데군데 옹이가 박혔고 은행나무는 표피를 드러낸 채 콘크리트로 보수한 모습이라 더욱 애처롭다. 하지만 오랜 세월 비바람에 상한 흔적을 감추진 못해도 혹한의 겨울을 보내고 봄마다 새잎을 틔워 너른 품으로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1992년 마을 주민들이 세운 애향비 ⓒ박분

1992년 마을 주민들이 세운 애향비 ⓒ박분

이곳 은행나무는 조선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정승 심정(1471~1531)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은행나무가 뿌리를 내린 이 마을의 이름은 원래 능리(陵里)였다. 우리말로 풀면 능마을로서 줄여 '능말'이라고도 불렸다.

나무들 옆으로 1992년 마을 주민들이 세운 애향비가 있어 가슴을 덥힌다.

'개화산 정기 서린 능말 옛터, 이곳 능말 사람들이 수백 년을 대대로 살아온 정든 고향이 방화택지지구 개발로 그 자취가 사라지고 오직 이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만이 홀로 여기 남으니 산 좋고 물 좋아 인심도 후했던 이 능말 옛터에 지난날 정겨웠던 추억의 아쉬움을 길이 후세에 남긴다.'라는 내용의 비문으로 나무와 마을을 향한 마을사람들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급격한 도시개발의 바람 속에서도 나무들이 안전하게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극진한 보호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무에 막걸리를 뿌려주고 있는 마을 어르신 ⓒ박분 

나무에 막걸리를 뿌려주고 있는 마을 어르신 ⓒ박분

나무에 막걸리를 뿌려주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나무에 올리며 마을 어르신들이 간절히 치성을 드린다.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마디가 골 깊게 패인 나무의 주름과 닮았다.

느티공원 내 놀이터 ⓒ박분 

느티공원 내 놀이터 ⓒ박분

느티공원에는 놀이시설도 있어 아이들 놀이터도 겸하고 있다. 뛰노는 아이들 소리로 왁자했던 공원도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한적해졌다. 텅 빈 그네에 아이들 대신 나뭇잎이 앉았다.

느티나무 사이로 보이는 까치둥지 ⓒ박분 

느티나무 사이로 보이는 까치둥지 ⓒ박분

하늘 높이 팔 벌린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까치둥우리가 보인다. 머잖아 잎이 다 지고 겨울이 찾아오더라도 느티공원의 겨울풍경은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단짝이 되어 마을을 지키면서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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