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사법기관, 의금부의 '금오계첩'을 만나다

시민기자 정인선

발행일 2019.12.02. 16:48

수정일 2019.12.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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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입구 ⓒ정인선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입구 ⓒ정인선

서울역사박물관의 분관인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사법기관이었던 의금부와 관료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의금부 금오계첩-이름과 그림으로 남긴 만남의 기록'을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19년 10월 18일부터 2020년 2월 23일까지 진행될 특별기획전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도심 정비 사업에서 출토된 도시 유적을 원위치에 전면 보존한 현장 박물관이다. 전시관 개관 1주년을 맞아 첫 기획전으로 의금부의 기능과 활동, 의금부 도사들의 신입 관료 신고식인 면신례(신참을 면하게 하는 의식) 과정에서 계첩을 제작해 동료들과 나누어 가졌던 모습과 각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금오계첩'을 모아서 전시한다.


기획전시실 내부 ⓒ정인선

전시 구성은 1부 의금부와 건평방, 2부 의금부의 역할과 활동, 3부 금오계첩과 면신례 등 3개의 주제로 되어있다. 의금부의 역할과 활동을 더욱 잘 알아볼 수 있는 전시인데, 전시 포스터에 나오는 '금오좌목'을 통해 의금부 청사에서 의금부의 삶을 볼 수 있는 전시물이다. 각 건물에 빛으로 포인트를 주며 건물별 특징적인 위치와 역할을 알 수 있게 표시 되어 있다. 그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일을 해왔을지 그림을 보며 알 수 있어 좋은 관람 포인트가 된다. 정약용, 이문건 등의 의금부 업무 집행 사례와 제주 유배지로 압송된 김정희의 스토리 영상은 이야기 형식으로 다가와 의금부의 일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금오헌록>(좌) <금오좌목>(우, 상), 동일본 금오계첩(우, 하)ⓒ정인선
'금오헌록'(좌) 동일본 금오계첩 중 '금오좌목'(우, 상), 금오계첩(우, 하) ⓒ정인선

의금부에 배속된 신임 도사는 10개의 '금오계첩'을 제작했다. 그리고 각 신임 도사에게 하나씩 증정하고, 자신도 하나를 가졌다. 그렇게 나누어가진 10개의 '금오계첩' 가운데 당시에 함께 만든 동일본이 전해진다. 비교해 보면, 그림도 같고 좌목의 내용도 일치한다. 이러한 동일본의 존재는 당시에 10개의 계첩이 제작되었고, '금오헌록'의 규정처럼 10개가 동시에 분배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들 '금오계첩'은 첩을 나누어 가진 이후 약 백 년에서 2백 년 만에 이번 특별전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금오헌록'은 의금부 내부 규정집으로 1744년(영조 20) 박명양이 처음 편찬하고, 1826년(순조 26) 이희현이 증보했다. 의금부의 직제, 업무, 고사, 청규 등을 다룬 유일한 자료이며, 19세기 중엽까지 지속적으로 내용을 추가해 400년 이상의 변천 과정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면신례 때의 분첩 의식, 별례(罸禮) 등의 징계 조치 등을 통해 조선시대 관원들 사이에 존재했었던 요계(僚契)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금오계첩>이 걸린 전시장 내부 ⓒ정인선
'금오계첩'이 걸린 전시장 내부 ⓒ정인선

건평방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중부 8방의 하나로 의금부, 전의감 및 순화궁을 비롯한 여러 관아들과 궁가들이 위치한 도성내 중심부에 해당 하는 곳이다. 전의감은 조선시대 궁중에 쓰이는 의약을 조제하고 약재를 재배하던 관아이고, 순화궁은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의 사당이다. 조선 초기부터 의금부가 이 터에 자리잡은 후 같은 자리를 지켜왔으며, 한성재판소, 대심원을 거쳐 일제강점기에는 종로경찰서, 해방후에는 신신백화점과 SC제일은행 등으로 사용되며 오랜 장소성을 유지해왔다.

1762년(영조 38) 11월에 제작된 <금오계첩>
1762년(영조 38) 11월에 제작된 '첩' ⓒ정인선

의금부는 국왕 직속의 특별사법기관으로 왕명을 받아 죄인을 심문하고 처벌하는 관아로 1414년부터 1894년까지 약 480년에 걸쳐 운영되었다. 신문부터 형률 적용, 형벌 집행에 이르기까지 모두 왕의 명령을 받아 시행하여 왕부라고 불렸으며, 왕의 교지를 받아 죄인을 가둔다 해서 의금부의 옥을 조옥이라고 하였다. 형조가 일반 잡범에 대한 치죄를 담당한 반면 의금부는 주로 양반 관료의 범죄를 취급하는 양반 재판소 역할을 해 왕권의 확립과 강화에 기여하고 조선왕조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했으며, 반역 및 강상에 관련된 사건을 추국해 왕권을 위협하는 반대파를 제거하는 정치재판소 역할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의금부는 각종 미해결된 사건이나 중대 사건의 최종 판결 기관 역할도 맡았다.

<금오계첩>과 면신례 ⓒ정인선
'금오계첩'과 면신례 ⓒ정인선

조선시대 반역 사건을 다루는 공간인 추국장에서 나타나는 국가권력의 특성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반역 사건이 계속 발생했고, 주요 정치인들은 반역죄라는 혐의로 처형됐다. 죄인을 심문하고 처벌하는 일련의 과정이 벌어진 추국장을 단순히 정치 행위자가 폭력적이고 무법적인 힘을 관철하고자 하지만 않고, 철저한 수사로 범인을 처벌하고, 억울한 이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조선시대에는 과학수사를 했다. 조선시대 벌어진 살인사건 자료와 관리들의 수사 절차 방법, 검시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통해 조선의 법 집행의 공정성과 정의를 위한 노력을 했다.

<금오계첩>
금오계첩 ⓒ정인선

청나라 도광(1821~1850) 연간에 제작된 '금오계첩'이다. 그림은 부감법으로 계회 장면을 묘사했고, 청사는 이전 시기보다 범위가 확대되었지만 평면적으로 표현했다. 좌목 끝에 기록된 이준재(1808~ )가 계묘년 (1843년) 사미시에 합격하고, 갑진년(1844년)에 첫 벼슬을 한 것으로 보아 본 계첩은 1844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오계첩'은 의금부의 청사와 함께 도사들의 모임 장면을 작게 그리는 것이 기본 형식으로, 시대별로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데, 17세기 후반기에는 의금부의 청사를 그려내었고, 18세기 전반기에는 사선 방향의 투시를 적용하면서 보다 사실적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였다. 19세기를 들어서면서 채색이 짙어지고, 그림이 도식화되는 특색을 보였고, 잘 정리된 전시물들을 통해 '금오계첩'의 시대별 특징을 이해하기 쉽게 관람할 수 있다. 금오계첩의 형태와 구성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지만 새로 들어온 신입 권원을 동료로서 인정하고 소중한 인연을 후대에 남기고자 이름과 그림으로 남긴 계첩을 만들어 나누어 가졌던 기록 정신과 동료의식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걸 남겨준다. 방학기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관람하면 책에서 읽는 것보다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기억될 것이다.

■ 공평도시유적전시관
○ 위치 : 서울종로구 공평동 17 
○ 문의 : 02-724-0135
○ 운영일시 : 월요일 휴무, 9:00~18:00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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