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맥주도 '4캔에 만 원' 시대! 왜?
발행일 2020.06.04. 08:23
“국산 맥주 4캔에 1만 원?“ 동네 편의점의 풍경이 바뀌었다.
수입맥주 전유물이었던 ‘4캔 1만 원’ 마케팅이 국산 맥주를 대상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바람인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주세법(酒稅法)이 52년 만에 개정되었단다. 주세가 달라지면서 국내 수제 맥주에 부담되던 세금이 줄고, 소비자들의 선택폭도 더 넓어졌다.
편의점에서 '4캔 만 원' 국산 맥주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사랑
국산 맥주가 수입 맥주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동안 마트나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할인 행사를 보면서 왜 국산 맥주는 수입맥주에게 밀려나면서까지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종가세(從價稅)'라고 하는 기존 세금 체계를 몰랐기 때문이다.
종가세는 말 그대로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제도이다. 출고 시점 가격으로 세금을 매기다 보니, 국내 맥주 제조 업체에서는 제조원가에다 판매 관리비와 매출 이익 등이 모두 과세표준에 포함되었다. 특히 맥주는 세율이 72%에 달하는데, 출고 시점 가격이 1,000원이면 720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한편 주류 수입업체의 경우는 달라서, 수입 신고 가격과 관세만 과세표준에 포함되었다. 결과적으로 국산 맥주에 비해 수입 맥주에는 주세가 상대적으로 적게 부과된 것이다. 이는 제품 판매 가격의 차이로 이어졌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맥주들이 소비자들을 공략해왔다.
수입 맥주에는 주세가 적게 부과되면서 수입 맥주 전성시대로 이어졌다 ⓒ강사랑
52년 만의 주류법 개정, 이제는 종량세!
수입맥주의 공세에 밀려난 국내 맥주 업체들의 어려움이 갈수록 커지자 국세청이 나섰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주류에 부과되는 과세 체계를 전환하는 내용의 ‘주세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이에 따라 주세법이 개정되어 맥주의 주세 부과 기준이 ‘종가세’에서 ‘종량세(從量稅)’로 바뀌었다.
1949년에 주세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에는 종량세 체계였지만, 박정희 정부가 1968년에 주류 소비는 줄이면서 세수는 늘리겠다는 취지로 종량세를 종가세로 바꾸면서 52년간 계속 이어져왔는데, 올해 개정되면서 ‘종가세’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종량세는 출고되는 주류의 '양'에만 세율을 곱하기 때문에 생산원가 등 가격이 다르더라도 주종과 출고량이 같다면 세금도 똑같다. 이제는 국산·수입 맥주 모두 용량을 기준으로 같은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이제는 출고되는 주류의 '양'에만 세율을 적용한다 ⓒ픽사베이
국산 캔맥주 세금은 감소, 생맥주 세금은 증가
이제는 종량세 도입으로 국산 캔 맥주의 세금 감소 효과가 커지게 되었다. 병, 캔, 페트, 생맥주 등 종류에 따라 각각 증감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세금이 리터당 830원으로 고정되면서 맥주 종류에 따른 세금 부담에는 편차가 줄어들었다.
가령 캔 맥주는 26% 수준인 415원이 감소하고, 생맥주는 가장 큰 폭인 445원이 증가했는데, 종가세 체계에서는 과세표준에 포함됐던 캔 용기 제조 비용이 종량세에서는 빠지기 때문이다. 캔 용기 제조 비용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비용만 빠져도 차이가 상당하다.
그렇다면 병맥주와 페트맥주, 생맥주의 가격은 어떠할까? 캔맥주와는 달리 이들의 출고 가격은 다소 높아졌다. 그동안 포장 용기를 재활용해서 사용하는 등 포장용기 제조비용이 이미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낮은 제조비용 덕분에 상대적으로 판매 가격이 낮았던 생맥주는 세금 부담액이 커졌다. 국세청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2년간 생맥주에 한해서 주세를 20% 경감해주기로 입장을 밝혔다.
대형할인마트에서 판매되는 국산 캔맥주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다 ⓒ강사랑
낮아진 캔맥주 세금,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까
종량세가 도입된 지 벌써 5개월이 흘렀지만,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가격 변동이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맥주 업체에서 가격을 인하 하더라도 영업장에서 그 가격을 반영할 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실제로 동네 마트와 편의점을 살펴본 결과, 일부 매장을 제외하면 여전히 옛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매장이 많았다. 최근 2,000원가량으로 가격이 떨어진 클라우드(500ml)의 소매점 소비자판매가는 세법 개정 이전 가격(2,950원)과 동일하거나 조금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유를 물으면 ‘재고를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등 소매상 나름의 고충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대다수 소비자들이 낮아진 캔맥주 값을 체감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확실한 사실은, 국산 맥주가 수입맥주와 동등한 선에서 가격 경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종가세일 때는 품질이 높은 맥주를 생산해서 원가가 높아지면 그만큼 높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지만, 종량세로 바뀐 이상 원가가 올라도 세금은 달라지지 않는다. 주세법 개정으로 소비자의 맥주 선택 폭이 넓어지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당연히 맥주 제조업체들은 질적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다양한 고품질의 맥주를 기대할 수 있다.
맥주업계의 성수기인 여름이 찾아왔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주류 춘추전국시대, 소비자들의 선택은 무엇일지 자못 궁금하다.
▶ 더 많은 서울 뉴스 보기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하기
▶ 내 이웃이 전하는 '시민기자 뉴스' 보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