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닮은 건물이 매력적인 시청역 성당의 비밀

정명섭

발행일 2018.11.05. 15:24

수정일 2018.11.05. 15:24

조회 2,500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1)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

이곳을 가는 가장 짧고도 빠른 길은 한때 부민관이었으며 지금은 서울시 의회로 사용 중인 건물의 앞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길 대신 코리아나 호텔 옆 골목으로 들어가서 조선일보 미술관 쪽으로 가는 길을 추천하고 싶다. 그 옆에 붉은 벽돌로 만든 성채 같은 건물이 나온다. 특이하게도 입구가 한옥으로 되어있는데 바로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면 오른편에 주황색 기와지붕을 한 긴 건물이 보인다. 바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으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는 헨리 8세의 종교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로마 가톨릭과 등을 돌렸지만 의식과 교회의 건축 양식은 가톨릭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이 성당은 십자가 형태로 웅장하고 아름답게 지어졌다는 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곳이다. 1922년에 아서 딕슨의 설계에 따라 건축을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설계도대로 완성되지 못하고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다. 그러다가 1992년, 영국에서 설계도가 극적으로 발견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된다. 따라서 성당의 머릿돌에 나오는 완공연도는 1996년이다.

이 성당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치솟은 첨탑 대신 하늘에 살짝 기댄 것 같은 지붕을 하얀 구름과 몹시 잘 어울리는 주황색 기와가 덥여있다. 분명 서양식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한옥의 처마와 지붕과 닮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개방이 된 성당 내부 역시 볼만하다. 가운데가 우뚝 솟은 공간에 서면 1,2층 양쪽의 스탠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과 만나게 된다. 이곳의 스탠드글라스는 마치 한옥의 창살을 닮아있다. 한낮에 가면 양쪽의 스탠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이 눈앞에서 교차하는 걸 볼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종교적이었던 시대라면 충분히 신의 흔적으로 볼만하다. 운이 좋다면 2층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십자가 형태로 지어진 성당의 제일 안쪽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모습이 담겨진 모자이크 제단화가 자리 잡고 있다. 황금색의 제단화는 종교적 마음이 없는 사람조차 경건함을 불러일으킬 만큼 감동적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은 단순히 오래된 종교시설이 아니다. 성당 뒤쪽으로 나오면 한옥으로 된 사목관이 보인다. 경복궁의 집옥재처럼 벽돌을 이용해서 만든 사제관 앞에는 6월 민주항쟁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1987년, 전두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곳에서 시작된 시위는 서울과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사목관 옆에는 고풍스러운 한옥이 한 채 있는 있는데 대한제국 시절 경운궁으로 불린 덕수궁의 양이재라는 건물이다. 원래 왕족과 고위관료들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수학관으로 사용되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렇게 성당 안에는 성공회의 역사 뿐 만 아니라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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