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겼다! 문화비축기지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7.09.14. 15:42

수정일 2017.09.14. 15:42

조회 3,697

거대한 문화비축기지 탱크와 옹벽 사이 비좁은 길을 걷다 보면 단단한 옹벽에 뿌리를 내린 오동나무를 만나게 된다. ⓒ박분

거대한 문화비축기지 탱크와 옹벽 사이 비좁은 길을 걷다 보면 단단한 옹벽에 뿌리를 내린 오동나무를 만나게 된다.

상암월드컵경기장 인근 매봉산 기슭에 새로운 문화시설이 탄생했다. ‘문화비축기지’라는 생경한 이름이 전하는 느낌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과거에 이곳이 국가 중요시설 중 하나인 석유비축기지였기 때문이다.

석유비축기지는 1973년 석유파동을 겪으며 석유를 사들여 비축해 두었던 저장시설이었다. 화재나 폭발, 토양오염 등 때에 따라 심각한 수준의 위험시설이기도 했기에 이곳은 1급 보안시설로 분류돼 그동안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후 상암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하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경기장 가까이에 석유비축기지가 있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결국 2000년에 폐쇄조치 됐다.

그 이후로 이곳은 사회적 기업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어 오다 시민공모와 도시재생사업을 통하여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가려진 베일을 벗고 새롭게 탄생한 문화비축기지는 어떤 모습일까?

매설된 탱크 아래쪽은 푸른 잔디밭으로 조성돼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박분

매설된 탱크 아래쪽은 푸른 잔디밭으로 조성돼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지난 주말 문화비축기지를 방문했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를 지나 문화비축기지로 향했다. 문화비축기지는 바로 매봉산 자락 아래 있었다. 산 아래 넓은 마당은 문화마당이다.

문화비축기지를 이루는 구조물인 옛 석유저장 탱크는 매봉산 자락에 빼꼼히 고개를 내민 채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매설된 탱크 아래쪽은 푸른 잔디밭으로 조성돼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우뚝 선 낡은 시멘트벽은 석유를 저장한 탱크를 보호하는 옹벽이다. 해설사의 친절한 안내로 T1~T6의 이름으로 명명된 총 6개의 탱크를 돌아보며 문화비축기지에 대한 해설을 듣는 동안, 이곳이야말로 기존 자원을 재생하고 재활용하는 도시재생 방식을 알뜰히 적용했음을 알게 됐다.

전시실, 회의실, 카페 등이 들어선 커뮤니티센터인 탱크6은 기존 탱크와는 다른 새롭게 신축한 건축물이다. 그럼에도 외관상으로 보면 세월의 흔적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다. 탱크2에서 걷어낸 외장철판과 탱크1에서 걷어낸 내부 철판을 각각 내 외장재로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탱크2의 외장철판을 재활용한 모습, 야외무대 둘레를 두르고 있다. ⓒ박분

탱크2의 외장철판을 재활용한 모습, 야외무대 둘레를 두르고 있다.

휘발유를 저장했던 탱크1, 탱크2와 탱크3은 경유, 탱크4와 탱크5가 등유 저장고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값비싼 휘발유를 저장했던 탱크1은 사용량이 적어 탱크 중 가장 작은 규모였고 상대적으로 사용량이 많았던 등유저장고인 탱크4와 탱크5는 큰 규모였다고 한다. 기존 탱크의 이런 특성 또한 재생 과정에서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산업화시대 유산인 석유를 비축했던 저장 탱크 5개(T1~T5)와 새롭게 신축한 탱크 1개(T6)를 포함한 총 6개의 탱크를 모아 문화비축기지를 만들기까지 내외장재, 옹벽 등 기존 자원들을 재생하고 재활용하는 도시재생 방식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뿐 아니라 해설사의 안내로 석유를 저장했던 탱크를 직접 둘러보며 석유를 비축했던 지난 역사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색다른 감흥을 준다. 기존 탱크 원형 그대로를 살린 거대한 탱크와 철옹성 같은 옹벽 사이로 난 비좁은 길을 걸으며 특별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탱크 속 기름양을 재던 유량기와 송유관도 만날 수 있다. 탐방 중 쏟아지는 시민들의 질문에 해설사는 바쁘다.

해설사와 함께 탱크를 둘러보는 시민들(좌). 탱크1에서 열린 `한강 건축 상상전`(우) ⓒ박분

해설사와 함께 탱크를 둘러보는 시민들(좌). 탱크1에서 열린 `한강 건축 상상전`(우)

“석유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아무 냄새도 안 나네요.”

“혹시 기름이 샐까봐 매일 확인하면서 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장고를 모두 들어냈을 당시 토양오염은 거의 없었다고 해요. 특히 휘발유를 저장했던 탱크1의 경우는 근로자들이 면 옷을 입었다고 해요. 혹시 옷으로 인한 정전기가 화재의 원인이 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죠.”

매봉산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탱크3의 뚜껑을 실제 볼 수 있다. 땅속 깊이 거대한 옹벽으로 둘러싸인 석유탱크를 지날 때의 압도되는 느낌부터 시작해 단단한 옹벽에 뿌리를 내린 오동나무의 생명력에 탄복하기도 한다. 탱크 입구에 자물쇠가 채워진 채로 아직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탱크3은 신비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고 콜로세움을 방불케 하는 탱크2의 웅장한 야외무대에 들어서면 마치 세계적인 역사유적지에 온 것만 같다.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판타지아 영화를 실감하듯 재미있다.

상암월드컵경기장이 보이는 문화비축기지의 달 시장 전경 ⓒ박분

상암월드컵경기장이 보이는 문화비축기지의 달 시장 전경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한 문화비축기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진다. 9월 1일 개원 이후부터 연말까지 프로그램을 운영할 40개 팀을 이미 선정했다. 마을‧문화‧예술‧생태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됐으며 3개월간 시민 시장, 음악축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2017 서울건축문화제(Seoul Architecture Festival)’ 일환으로 탱크1에서 열리는 ‘한강 건축 상상전’도 눈여겨 볼만하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한강에 대한 공간개념과는 다른,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로 이끈다.

‘한강이 강남과 강북의 경계가 아닌 서울의 한복판에 놓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서울의 남과 북을 선명하게 갈라놓은 이 공간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머물 수 있는 다리가 놓이고 한강에도 폭포가 있다면 어떨까?’ 등 한강을 주제로 기발한 상상의 나래는 이곳에서 9월 24일까지 펼쳐진다.

환히 불 밝힌 달 시장의 무르익은 장터의 모습, 뒤로 탱크6의 모습이 보인다 ⓒ박분

환히 불 밝힌 달 시장의 무르익은 장터의 모습, 뒤로 탱크6의 모습이 보인다

문화비축기지 문화시장에선 매월 둘째 토요일마다 달 시장이 열린다. 달 시장은 주민들과 사회적 경제기업가, 지역 예술인들이 함께 만드는 열린 마을 장터로 오후 5시부터 밤 9시까지 운영한다. 달 시장 외에도 9월 16일에는 친환경 도시농부와 지역 청년창작자들이 참여하는 ‘농부시장 마르쉐’가, 9월 23일부터 10월 28일까지 매주 금·토요일에는 먹을거리와 핸드메이드 상품을 판매하는 밤도깨비야시장이 선다.

어느덧 환히 불 밝힌 달 시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윽한 가을밤의 정취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달 시장 공연무대인 ‘달스테이지’에서는 분위기 있는 재즈공연에 이어 클래식 기타 선율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점점 어두워져 이제 산자락 아래 탱크들의 모습도 어둠 속에 잠겼다. 달 시장에서 바라보는 문화비축기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시와 공연, 생태, 문화체험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탄생한 문화비축기지에 향긋한 문화를 채우는 일은 시민들의 몫이 아닐까? 인파로 들끓던 상암월드컵경기장 못지않게 시민들의 발길로 북적이는 문화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 문화비축기지 안내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증산로 87
○ 문의 : 02-376-8410
○ 홈페이지 : culturetank.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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