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상장까지 시키는 꿀의 위대함
최순욱
발행일 2016.05.11. 15:33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28) 꿀의 달콤함과 신비함에 대해
오늘 11일 해태제과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다고 한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IMF 금융위기 당시 유동성 위기 때문에 상장이 폐지된 지 무려 15년 만이다. 어릴 때부터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 투수와 ‘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 등이 활약하던, 한국시리즈 우승 승률 100%의 최강 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의 이미지에 익숙했던지라 2001년 해태가 상장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뭔가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 해태가 다시 상장된다니 이번에도 묘한 느낌이 든다. ‘뭔가 시대가 또 한 번 바뀐 건가…’라고 할까나.
해태제과 재상장의 일등공신은 ‘허니버터칩’ 이라고 한다. 보통 감자칩에 버터와 꿀(그래봤자 한 봉지 당 1mg도 안 된다.)이 첨가된 제품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버터맛은 그다지 잘 느껴지지 않는 대신 꿀(?)의 단맛이 과하게 강해서 입맛엔 맞지 않았다. 어쨌든 출시 약 100일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한 전력이 있고, 올해 연 매출 1,000억 원 돌파가 확실시된다고 하니 대단한 제품이라는 건 분명한 듯하다. 해태제과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어제(10일) 재상장 시점에 맞춰 허니버터칩 제2공장 준공식을 가진 것일 게다.
이런 걸 보면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던 단맛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이번 경우는 그냥 설탕도 아니고 ‘꿀’맛 아닌가. 꿀은 같은 양의 설탕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단맛이 강한데다 벌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미가 있는데, 이런 점이 이 과자를 만들 때도 고려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꿀은 고대부터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건 굉장히 중요하고 귀한 식재료로 취급받았다. 앞서 이야기한 특징 외에도 높은 당도에 의한 삼투압 현상과 꽃꿀에 함유된 효소 때문에 햇빛이나, 공기, 열 등의 외부 요인을 잘 차단하면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세계 각지의 신화에는 대개 꿀 그 자체와 관련된 이야기, 또는 중요한 재료로 꿀이 들어간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포함되곤 한다. 꿀의 맛과 성질이 보통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인데,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벌꿀 술 이야기도 이중에 포함된다. 원래는 ‘브라가 라에두르 Braga Raedur’라는 굉장히 긴 이야기인데, 짧게 줄이면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래 전 북유럽 신화의 세계에는 신들이 ‘에시르’와 ‘바니르’라는 두 무리로 나뉘어 세계의 주인 자리를 두고 다퉜다. 허나 두 무리의 힘이 워낙 팽팽하게 비슷했던지라 결국 이들은 싸움을 멈추기로 하고 평화협정을 맺었는데, 그 증표로 신들은 한 항아리에 돌아가며 침을 뱉었다. 이 평화의 증표를 그냥 두기가 아깝다고 생각한 신들은 이 항아리에 담긴 신들의 침으로 ‘크바시르(Kvasir)’라고 하는 남자를 만들어 냈다. 크바시르는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묻는 말에 잘못된 말을 한 적이 없었고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헌데, 피얄라르와 갈랴르라는 난쟁이 형제는 이런 크바시르를 몹시 시기했다. 형제는 저녁 식사를 하자며 크바시르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한 뒤 큰 돌을 크바시르에게 떨어뜨려 죽이고 크바시르의 피를 마법의 솥에 담은 뒤, 여기에 벌꿀을 담아 발효시켜서 마법의 술을 만들었다. 크바시르의 지혜와 꿀의 힘이 깃들어 있는 이 술은 조금이라도 마신 사람은 누구라도 아름다운 시를 읊는 시인이 됐다고 한다.
이 술은 한 번 주퉁이라는 거인이 가져갔다가 다시 신들의 왕인 오딘이 훔쳐내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로 가져가게 되는데, 오딘은 이 술을 자신이 보관하면서 조금씩 마셨다. 아주 가끔씩 오딘의 신주를 맛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훌륭한 시인이 됐다. 하지만 오딘이 술을 훔쳐갈 때 지상으로 떨어뜨린 찌꺼기를 맛본 사람은 훌륭한 시인이 아니라 형편없는 글을 휘갈겨대는 3류 시인이 됐다고 한다.
실제로 아주 오래전 북유럽 지역에서는 꿀을 발효시켜 만든 벌꿀술(mead)을 즐겨 마셨는데, 발효를 돕기 위해 실제로 꿀에 사람의 침을 섞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간에 크바지르의 피에 담긴 지혜를 꿀이 발효되면서 시나 노래로 만들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인데, 꿀의 놀라운 특징을 가장 로맨틱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꿀이 들어간 과자로 증시 재입성에 성공한 해태제과가 사람이라면 지금 콧노래를 부르고 싶은 심정일 테니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내가 그 술을 마신 것 같아!’라며 무릎을 치지는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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