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도록 한자리를 지킨 건물

이장희

발행일 2016.02.17. 10:02

수정일 2016.02.17. 17:09

조회 2,627

서울의 오래된 것들(12)  서울 YMCA

경복궁 앞 세종로 사거리에서 동쪽을 향해 뻗은 길이 종로다. 동대문을 향해 나있는 이 길은 서대문을 잇는 새문안길과 함께 육의전 등 시전이 자리하고 있어 일찍이 상업의 중심지로 계획도시였던 한양의 주요한 도로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종로1가 부근에 있는 종루에서 도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는 종을 쳤기에 이름도 종로가 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유서 깊은 종로도 보신각종을 제외한다면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질 않아 안타깝다. 그래서 종로2가에 위치한 서울 YMCA 건물의 존재는 더욱 의미 있게 보인다.

서울 YMCA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는 ‘기독교청년회’를 말한다. 1903년 미국인 질레트의 지도로 발족하였는데 신앙운동뿐 아니라 계몽운동과 토론, 체육, 농촌운동 등 민족운동에 앞장섰고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역사 속에 묵직한 페이지를 채워온 모임이다. 창설되던 때에는 황성기독교청년회란 이름으로 지금의 서울YMCA 자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황실의 협조와 미국인의 기부로 완공된 3층의 벽돌 건물은 종로의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인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패주하던 북한군에 의해 회관이 파괴되면서 지금의 건물이 다시 세워지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다. 그렇게 새로 선 회관은 조금씩 변해가는 종로의 한복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남아 오늘날에 이른다.

건물의 설계는 장충체육관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등을 맡았던 건축가 김정수 씨가 했는데 그는 한국 건축의 모더니즘을 표방한 건축가다. 바깥으로 노출된 기둥 사이에 3개의 수직 부재를 경쾌하게 뻗어 내리고 그 사이를 유리창으로 채운 알루미늄 커튼월 공법은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층간을 이루는 타일은 멀리서 보면 흡사 한옥의 문창살처럼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전면부에 배열되어 있다. 5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주변 건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종로를 구성하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 YMCA

실내 수영장을 비롯해 직접 들어가서 보지 않는다면 종로 한복판에 있다고는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실내 돔 체육관, 그리고 유도장, 강당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이미 장충체육관을 설계했던 건축가 김정수에게 이 공간들은 도심지의 복합 체육시설로 또 다른 고민과 과제를 안겼을 것이다. 당시 한국 건축 기술의 현실을 직시하고 손수 도입해 온 기술을 실패를 거쳐 가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그였기에 더없이 즐거운 작업은 아니었을까. 또한 그의 작품들 가운데 장충체육관이나 남산 애니메이션센터(옛 원자력병원)처럼 리모델링을 거쳐 건축가의 흔적이 희미해진 것과 달리 큰 변화 없이 시간을 담아온 이 건물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어 보인다.

아마도 지나온 날들보다 더 많은 날들을 거듭하며 행인들을 맞을 이 서울의 대표적인 거리에서 깊은 역사의 발자취를 가진 이 공간이 역사도시로서 서울의 미래가 될 것이리라. 나는 다시금 동대문을 향해 종로를 걷기 시작했다. 무성한 그늘을 드리울 종로의 플라타너스가 아직은 말쑥한 가지를 드리우며 천천히 내 위를 따랐다.

약도

출처_서울사랑vol.151(2015_4)

#서울사랑 #종로 #이장희 #YMCA #서울YMCA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