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은 네 가지를 갖춰야 한다

강원국

발행일 2016.01.25. 15:50

수정일 2016.01.25. 16:39

조회 4,292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16) 문단 중심 글쓰기 요령

세 가지 층위의 글쓰기가 가능하다.

첫 번째, 집짓기 방식이다.
설계도를 그리고 집을 짓듯, 개요를 짜고 거기에 맞춰 글을 쓴다.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방법이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쓰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는 글의 전체 윤곽을 잡고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글의 처음과 끝을 알고 있지 못한 사람에게는 오르지 못할 나무다.

두 번째, 블록 쌓기 방식이다.
글에서는 문장이 블록이다.
문장을 생각나는 대로 쓰는 방식이다.
문장이 생각나지 않으면 단어를 써도 좋다.
‘집짓기’ 방식이 개요라는 숲에서 시작하는 방식이라면 ‘블록 쌓기’는 문장이라는 나무에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 블록 쌓기 놀이하듯, 생각나는 문장을 두서없이 이것저것 써보는 것이다.
이렇게 축적한 문장의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글이 된다.
어느 문장은 전체 글의 주제문이 되고, 어느 문장은 근거로 쓰이고, 또 어느 문장은 사례가 되기도 한다.
이 방식은 일장일단이 있다.
쓰기는 쉬우나, 쓰고 나서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세 번째는 배짓기 방식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식의 장단점을 반영한 것으로서, 문단 중심 글쓰기 방식이다.
배는 부분 부분을 만들어 합체하는 방식으로 건조한다.
글도 독립적인 문단을 여러 개 써서 이어 붙이는 방법으로 쓸 수 있다.
문단은 하나의 작은 독립 글이므로 가능하다.
나는 이 방식을 선호한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많다.
그중 하나가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다.
맞는 어휘를 찾으면서, 문장의 주술 호응을 따지고, 문단과 문단의 연결을 고민하며, 전체 구성에 신경 써야 한다.
이런 고민의 수를 줄이는 방법이 문단 중심 글쓰기다.

한 문단만 신경 쓰는 것이다.
문단 하나하나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대신에 하나의 문단이 단단해야 한다.
두부같이 물렁하지 않고, 벽돌같이 견고해야 한다.

써야 할 글의 분량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문단이 필요하다.
짧은 글은 한두 문단, 긴 글은 열 개 전후의 문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단을 독립적으로 제작한다.

문단 만드는 방법 역시 어렵지 않다.
우선, 문단에는 그 문단만의 주제가 있어야 한다.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소주제문’이다.

소주제문을 보충 설명해주는 문장은 여럿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장을 ‘뒷받침 문장’이라고 한다.
소주제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범위가 크면 뒷받침 문장의 수가 많아지고, 문단이 길어진다.

소주제문이 바뀌면 문단을 바꿔야 한다.
그러므로 한 문단에는 하나의 소주제문, 즉 하나의 주제만 있어야 한다.
하나의 문단을 쓴 후 읽어봐서 복잡하면 문단 나누기가 필요하다고 봐야 한다.

나는 문단의 맨 앞에 소주제문을 쓰고 뒷받침 문장을 그 뒤에 쓴다.
두괄식으로 문단을 쓰는 것이다.
소주제문은 중간과 뒤에 올 수도 있고, 앞뒤 양쪽에 배치할 수도 있다.

흔히 문단은 네 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한다.
통일성, 긴밀성, 강조성, 완결성이다.
한 문단에는 하나의 주제만 담는 것이 ‘통일성’이고, 문장들이 문단 안에서 잘 연결돼야 한다는 것이 ‘긴밀성’이며, 독자가 소주제문을 파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시와 설명, 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성’이고, 하나의 문단은 그 안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모두 마쳐야 한다는 것이 ‘완결성’이다.

개별 문단이 만들어지면 구성은 쉽다.
레고 블록 맞추듯이 이리저리 맞춰보면 된다.
물론 완성될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으면 일사천리로 조립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맞추다 보면 자연스러운 구성을 할 수 있다.

문단과 문단은 순접, 역접, 병렬, 전환, 인과, 보충, 요약, 예시 등의 관계로 연결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돼야 논리가 서고 술술 잘 읽힌다.

구성 작업을 할 때는 포스트잇이나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면 좋다.
포스트잇 한 장, 파워포인트 한 컷이 문단 하나다.
포스트잇이나 파워포인트마다 그 문단의 중심 내용을 단어나 문장으로 쓴다.
그 다음은 순서를 바꿔가며 붙여보는 것이다.

문단 글쓰기는 쓰기와 구조 짜기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쓴 후에 구조를 짜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표현과 구성을 분리하여 글을 쓰는 것이다.

긴 글을 쓰기는 어렵지만 짧은 문단을 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고,
문단만 써놓으면 이를 배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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