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갈등 계기로 반상회 다시 열었죠”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5.08.28. 11:40

수정일 2015.08.28. 17:52

조회 1,899

아담한 개화산과 걷기 편안한 방화근린 공원이 바로 코앞인 강서구 방화동 개화아파트는 지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다. 최근 이 아파트가 주민소식지를 발간하고, 반상회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하여 찾아가 보았다.

8월의 어느 저녁 6시, 통합 반상회가 열리고 있는 개화아파트의 ‘주민배움터’로 향했다.

한 주민이 수박껍질을 썰어 미용팩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한 주민이 수박껍질을 썰어 미용팩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푹푹 찌는 여름밤을 시원하게 나는 비결은 이 수박에 있어요. 우선 이 수박을 좀 먹고 시작 할게요. 껍질이 필요하니까요.”

수박 한 조각을 든 주민이 앞에 나와 재밌게 설명을 하고 있는 동안 탁자 앞에 빙 둘러앉은 주민들은 웃음꽃 연발이다.

“수박 껍질의 하얀 부분에 비타민C가 많다고 해요…(이하 생략)”

수박 껍질에 대해 줄줄이 설명한 내용을 간추리자면 하얀 부분을 얇게 썰어 냉장고에 넣어 미용팩으로 온 가족이 사용하면 아주 시원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저기서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반상회가 맞나? 고개가 갸우뚱 해지려는 찰나, 누군가 여름밤 무더위 극복이 주제라고 귀띔을 했다.

수박껍질 발효음료 만드는 등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한다

수박껍질 발효음료 만드는 등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한다

반상 회의록을 정리하던 주민 김인숙(51)씨는 “주민 아이디어를 반영해 종종 반상회 중간에 주민들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를 넣은 이야기 시간을 갖는데 주민들이 가장 반기는 코너”라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주민들은 내친김에 수박껍질을 활용한 발효음료 만들기 시연도 펼쳤다. 여름철 대표적 음식물 쓰레기인 수박껍질의 흰 부분을 얇게 썰어 설탕과 약간의 소금, 우리 몸에 유익한 효모균을 배합해 발효시켜 만드는 천연음료 만들기 레시피를 소개하자 모두들 꼼꼼히 받아 적기에 바쁘다.

가벼운 순서가 끝나자 아파트 관리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최근 통합경비시스템 완공으로 인한 경비비 절감액이 얼마인지, 장기수선충당금 인하 시 관리비 절감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토론하며 반상회가 진행됐는데 주민들은 앞서 충분히 웃음을 축적한 까닭인지 어려운 숫자 나열에도 불구하고 반상회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웠다.

시대가 흘러 반상회의 의미가 희석된 요즘 같은 때에 다시 주민들이 반상회를 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 해 전 아파트 자동문(무인전자경비시스템) 설치 공사 중 주민간 마찰이 빚어진 것을 계기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아파트 되살리기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주민 제안이 쏟아져 나왔다.

아파트 소식지 `개화늬우스`를 발간해,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아파트 소식지 `개화늬우스`를 발간해,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아파트 소식지 ‘개화늬우스’ 발간과 반상회 개최도 그 일환으로 시작됐다. 올해 3월부터 매달 발간하는 주민소식지 ‘개화늬우스’는 제 1면의 아파트 공지사항을 비롯해 생활 속 작은 광고, 미담, 아기탄생소식, 맛있는 요리 비법 소개 등 주민들이 함께 공유하고픈 내용들로 가득하다.

주민들이 기사를 내고 사진 찍기, 일러스트레이션 및 편집까지 도맡아 신문발간을 한다. 종래의 딱딱한 반상회를 탈피한 반상회의 부활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한동안 주민항의가 빗발쳤죠.” 개화아파트 입주자대표로 일하다 현재 자문역할을 하는 오익건(59)씨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20년 넘게 의좋게 살았는데 공사를 하며 뜻하지 않은 의견차이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때는 주민들이 천막 농성까지 감행해 아파트를 오래도록 유지보수하려면 주민 간 서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죠.”

일의 그르침은 주민 간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오씨를 비롯한 몇몇 주민들이 중재에 나섰고 주민들은 입주자대표회와 주민협의회도 새롭게 결성했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물론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 여러모로 검토한 끝에 주민 간 화합의 장이 필요하다 판단했고, 때마침 이웃 관계 회복을 위해 강서구가 주관한 열린 아파트 사업 공모에 나서 올해 2월에 선정이 됐다.

주민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장소를 마련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주민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장소를 마련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개화 아파트는 주부들로 구성된 주민협의회가 중심이 돼 주민 커뮤니티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올 봄, 사용도가 낮은 관리 동의 지하 방을 리모델링해 ‘주민배움터’로 만든 것도 그 중 하나다. 원래 탁구장이었던 공간이 다용도 주민 커뮤니티홀로 변신한 것이다. 주민들의 책 기부를 받아 도서실도 꾸미는 한편으로 EM 발효액을 활용한 비누, 주방세재 만들기, 영화상영 등 무료 프로그램이 줄지어 열린다. 시니어를 위한 스마트폰 사용법, 어린이 예절교실, 명상을 겸한 요가 등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주민협의회 회장 채안나(60)씨는 “가능한 주민 재능 나눔과 품앗이로 배움이 꽃피는 터를 가꾸고 싶다”면서 “프로그램 활성화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영양가 있는 알찬 프로그램 개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 주민배움터의 큰 기능은 역시 통합반상회다. 자동문 공사를 잘 마무리 지은 올해 4월, 이곳 주민배움터에서는 첫 통합반상회를 열었다. 처음으로 개최된 만큼 그동안 산적해 있던 질의응답, 건의사항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입주자대표와 주민협의회원들의 소개와 인사말은 다음 달로 미뤘단다. 주민들은 반상회를 통해 아파트 내 크고 작은 공사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 뿐 아니라 아파트의 해결과제와 비전도 함께 공유하길 기대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7월 반상회에서는 대안 에너지로 주목 받는 서울시 녹색에너지과로 부터 태양광 발전소 사업에 대한 설명회를 청해 듣기도 했다.

길고양이 급식 등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데도 힘쓴다

길고양이 급식 등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데도 힘쓴다

개화아파트에서는 또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가 되곤 하는 유기동물에 관한 주민의견도 폭 넓게 수렴하고 있다. 길고양이와 유기견을 무조건 내쫓는 일이 능사가 아님을 주민에게 알리고 충분히 의견을 조율한 결과 주부들로 구성된 캣맘(거리를 떠도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공급해 주는 사람)을 결성해 개화아파트 일대와 그 주변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의 급식을 이미 수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 동물보호 강좌도 수시로 마련하며 유기 동물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데 관심도 기울이고 있다.

○ 개화아파트 입주민회의 카페: cafe.daum.net/Gaehwa/
○ 개화아파트 이웃모임 밴드: band.naver.com/n/FDTFQj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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