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에 등나무를 심은 사람은 누구지?

이장희

발행일 2015.02.12. 09:58

수정일 2015.02.12. 13:34

조회 2,397

삼청동 측백나무

이장희의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8 – 삼청동 측백나무

한나라의 무제는 측백나무를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누각의 대들보를 측백나무로 만들고, 그 곳에 신하들을 불러 시를 짓곤 했다 한다. 더디게 자라는 나무 중 하나인 측백나무는 줄기가 잘 썩는 편이라 목재로 쓰이지 않았는데 얼마만한 집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들보로 쓰일 정도였다면 중국에서도 무척 큰 측백나무를 골라야 했을 것 같다. 이렇게 측백나무로 만든 대들보를 백량대(柏梁臺)라고 불렀다. 백량대에서는 어떤 시들이 흘러 나왔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측백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다름 아닌 서울 한복판 국무총리공관에 있는 측백나무가 가장 크다고 하는데 언제든지 쉽게 들러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이 측백나무는 약 300살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이 자리에 왕자를 위한 태화궁(太和宮{)을 만들면서 나무 또한 다른 곳에서 옮겨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제국 말에 이르러서는 고종이 군부대신을 지낸 이윤용에게 이 땅을 하사한 이후 명성황후 집안의 민규식 자택으로 사용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전기주식회사 관사가 지어졌다. 광복 후 국회의장공관으로 사용하던 곳을 지금은 국무총리공관이 새롭게 들어서 있다. 말 그대로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와 국무총리공관이 바로 이웃지간인 셈인데, 사이가 좋을 때는 대통령이 종종 총리공관으로 마실을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사헌부를 백부(柏府{)라 불렀다. 사헌부란 지금의 감사원과 같은 기관으로 고위관직들의 풍속을 바로잡는 기관이었던 것이다. 이에 측백나무의 '백'자가 들어간 것도 이 나무의 고귀함을 빗댄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나라의 최고 관직인 국무총리공관에 가장 큰 측백나무가 있다는 것이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삼청동 등나무

삼청동 등나무

국무총리공관의 본관 뒤편으로는 잘 가꾸어진 숲 사이로 말쑥하고 커다란 한옥건물이 있는데 이는 연회실 및 회의실로 사용되는 삼청당이라는 곳이다. 그 앞으로는 거대한 초록 지붕의 터널이 있는데 이는 등나무의 엄청난 확장세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등나무로 900살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등나무는 낙엽이 지는 덩굴나무로 산에서는 흔히 볼 수 없고, 우리 주변에 서는 관상수로 심어 키우는 것만 만날 수 있다. 보통 지주목을 세워 지붕을 만들고 그 위를 덮게하여 키우는데 널따란 그늘을 만들어 좋은 휴식처를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5월의 향긋한 꽃은 향기도 좋다. 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보랏빛 꽃들은 어찌나 소담스러운지 위로 오르지 못하고 포도처럼 주렁주렁 매달리는데 그 모습이 과히 봄의 향연 중 절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꽃말도 '환영'이다. 진정 봄을 환영해주는 멋스러움이 배어난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이미지와는 달리 예로부터 등나무는 소인배의 대명사로 천대를 받았다. 바로 공생을 모르는 나무의 성질 때문이다. 등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치열하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아주 편하게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 어렵게 만들어 놓은 좋은 자리를 점령해 버린다. 햇볕을 도맡아 차지하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나무줄기를 휘감아 올라가기 때문에 성장을 방해한다. 그리하여 옛 선비들은 소인배로 비유하며 집 안에는 잘 심지 않았던 것이다. 흔히 '갈등'이라고 말하는 단어가 두 덩굴나무인 칡(갈:葛)과 등나무(등:藤)가 서로 복잡하게 얽힌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인간 세상에서 관계가 까다롭게 얽혀 풀기 어렵다는 말로 쓰인다.

그런 점에서 그 옛날부터 서울 한복판에 이런 등나무를 처음 심은 이는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어찌되었든 선비의 사랑을 받아 온 가장 커다란 측백나무와 선비들이 좋아하지 않던 가장 오래된 등나무가 한 울타리 안에 함께 자라고 있는 모습은 묘한 단상을 남긴다.

2012년, 총리실이 서울에서 세종시로 이사하면서 삼청동 공관은 사실상 '빈집'이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두 나무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출처 :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 이장희

※<사연있는 나무이야기>는 서울시 E-BOOK(http://ebook.seoul.g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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