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제작 과정에 대해 생각해봤나요?

시민기자 김예지

발행일 2014.12.10. 08:48

수정일 2014.12.10. 18:39

조회 4,762

서울시 국제 사회적 경제 포럼 2014 <윤리적 패션산업 혁신클러스터 구축> 후기

'옷'은 인간이 갖춰야 할 필수 요소다. 이런 옷에 대해 우리는 보통 디자인이 얼마나 세련됐는지,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또 가격이 어떠한지에 관심을 가진다. 즉 '결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떨까? 거기엔 우리가 옷의 겉모습에선 보지 못했던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봉제노동자, 면화재배노동에 동원되는 개발도상국 아동들, 그리고 파괴되고 있는 자연 생태계 문제 등 이번 <서울시 GSEF 2014> 이튿날에 진행된 '윤리적 패션' 세션은 이제는 우리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보여준다.

"패션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서울시 GSEF 2014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윤리적 패션 기업(orgdot)의 김방호 대표는 "패션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라는 말로 운을 떼었다. 이때 '영향'은 현재 패션산업이 사회에 끼치고 있는 나쁜 영향이다. 그가 보여준 청바지공장에서 나오는 유독가스, 면화를 재배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동, 무너진 봉제공장은 옷의 '겉모습'에선 볼 수 없었던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특히 1911년 뉴욕의 대형 봉제공장인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를 언급했다. 이 사고로 당시 공장에서 근무 중이던 10~20대의 여공 146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9·11 테러 전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최악의 산업재해였다.

그럼 당시 그렇게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공장이 노동자가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물건을 훔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계단으로 통하는 비상구 문을 잠가 놓았기 때문이다. 이 화재를 계기로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10대 초반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녀들은 주당 70~8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했고, 화장실 가는 것이나 대화를 하는 것도 금지당했다. 퇴근 시간에는 가방검사를 받았고, 블라우스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실과 바늘도 자신이 구매해야 했다. 오로지 '이윤 극대화'만을 생각하는 패션산업의 맨얼굴이었다. 이렇게 '지속가능성',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는 패션산업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봉제생산자들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착취하고, 어린 아동들을 면화재배에 동원한다.

김방호 대표는 현재 패션산업의 문제를 크게 환경 문제, 봉제생산자 문제, 신진디자이너 문제, 유통 문제로 나눴다. 이 중에서도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디자이너와 봉제생산자 간에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디자이너와 봉제생산자가 상생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디자이너에겐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를 연결해주고, 봉제생산자에겐 다양하고 안정적인 일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실질적인 결과물이 이 웹사이트( www.designersmakers.com)에 있다. 그는 또한 이런 윤리적 패션에 대한 움직임은 혼자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2012년부터 윤리적패션네트워크(EFN)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현재 EFN에 참여하고 있는 대표 기업들에는 리블탱크, 페어트레이드 그루, 오르그닷, 대지를 위한 바느질, 콘삭스 등이 있다.

윤리적 패션 네트워크(EFN)가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윤리적 패션 생태계를 구축하는 거다. 지역 기반의 생산자와 디자이너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봉제생산자와 디자이너 모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또 환경오염을 감소시키는 거다. 그는 이런 윤리적 패션이 퍼져나감으로써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생각하는 '윤리적 라이프스타일'도 확산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매뉴팩처 뉴욕의 성공 : 지역 기반 + 디자이너와 봉제생산자 간 네트워크 구축

서울시 GSEF 2014

두 번째 발제는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방한한 '매뉴팩처 뉴욕'의 대표 밥 블랜드(Bob Bland)가 해주었다. 매뉴팩처 뉴욕은 봉제노동자와 디자이너 등이 모여 의류 생산을 위한 생산 공정을 함께하는 뉴욕의 사회적 기업이다. 그녀는 오늘날 패션산업의 문제를 글로벌 공급망을 바탕으로 소수의 패션브랜드가 거대화된 것, 또 패스트 패션 문화의 확산으로 옷값이 지나치게 낮아지면서 '밑바닥 경쟁'이 일어나는 것에 두었다. 거대브랜드들에 의해 옷값이 지나치게 낮아지면서 그 아래에선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아동 노동과 같은 인권 침해 사례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입각해 그녀가 환경적,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만들기 위해 얻은 해법은 '디자이너와 봉제생산자 간의 협력적 네트워크 구축'과 '지역 기반의 생산·판매 시스템'이다. 봉제생산자와의 협력을 통해 디자인의 품질을 높이고, 지역 기반으로 의류 디자인과 생산을 진행하면서 신속하면서도 비교적 낮은 단가로 의류를 생산할 수 있다. 또한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유통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같은 환경오염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녀는 의류 생산 장비의 공유, 디자이너들에게 협업의 기회 제공 및 저렴한 값에 공간을 대여해주는 등의 활동을 통해 사업을 더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런 매뉴팩처 뉴욕의 성공은 서울시 역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서울시는 현재 뉴타운에 지정됐다 해제된 종로구 창신·숭인동을 '도시재생선도사업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중 창신동은 약 3500개의 봉제공장이 밀집된 지역으로 동대문시장에서 파는 많은 옷들이 여기서 생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동대문시장의 경쟁력은 동대문시장이라는 판매처와 창신동이라는 생산처가 하나의 클러스터를 이룬 것에 있다고 평가되곤 한다. 하지만 저임금 장시간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젊은 인력들이 봉제업에 새로 유입되지 못하면서 봉제생산자들의 노령화는 심각한 수준(50대 이상이 57%, 30대 이하는 7.4%)이다. 자칫하면 창신동의 봉제업이 무너지고, 동대문시장도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창신동 봉제생산자들의 생산 단가는 물가상승률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간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 이는 동대문시장의 디자인적인 경쟁력이 떨어지고 봉제생산자들이 중국이나 캄보디아와 같은 값싼 인력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향후 창신동 봉제 산업을 살리고 동대문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의류의 디자인과 품질을 높이면서 창신동과 동대문시장의 인접한 거리를 활용해 생산, 유통 비용을 절감하는 것에 있다. 매뉴팩처 뉴욕의 사례는 서울시의 지역 의류 산업을 살리는 데도 좋은 참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최근 들어 더더욱 '지속가능성'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는 기존에 '이윤 극대화'와 '효율성'만을 목표로 삼았던 경제 시스템이 자연환경의 지속성과 사회의 지속성에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런 것을 보완하기 위해 '사회적 형평성'을 실현하려는 기업들의 출현, 그것을 지원하려는 정부와 지자체의 시도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실 윤리적 패션은 하루 먹고 살기에도 바쁜 보통의 생활인에게는 벅찬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게 곧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의류공장들이 폐수 처리하는 비용이 아까워 그것을 그대로 한강에 방류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과 같이 창신동 봉제생산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계속되어 동대문시장이 훗날엔 과거의 그 동대문시장이 아니게 된다면?

옷의 '겉모습' 뿐 아니라 그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출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윤리적 패션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띄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움직임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는 것은 어떨까?

서울 청년정책네트워크 기자단 1기 도시·건설팀 김예지

 

※ 본 기사는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열린 2014 국제 사회적경제 협의체 창립총회(GSEF2014)에 관련해 열린 세션에 참여하여 작성한 기사로, 서울시 일자리 정책과에서 운영하는 대학생기자단 도시건설팀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내 손안에 서울에 게재한 것입니다.

#GSEF2014 #GSEF #윤리적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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