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장보리, 왜 열풍 부나?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9.29. 12:21

수정일 2014.09.29. 12:21

조회 1,221

왔다!장보리(사진 뉴시스)

[서울톡톡]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 후 드라마 시청률이 급락했다. 사람들이 인터넷 다시보기나 스마트폰 등으로 TV를 시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엔 30%선을 넘기가 쉽지 않은데 모처럼 40%선에 육박하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바로 MBC 주말드라마인 <왔다 장보리>다. 이 작품은 9월에, 한국 갤럽이 매월 조사하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왔다 장보리>는 악녀과 착한 여주인공이 경합을 벌이는 구도로 일반적인 막장드라마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착한 여주인공 보리와 악녀인 연민정, 그리고 연민정의 친딸이자 보리의 양딸인 비단에게 모두 출생의 비밀이 있다. 드라마 하나에 하나씩인 출생의 비밀이 세 개나 겹친 것이다. 게다가 악녀도 한 명이 아니다. 대표적인 악녀인 연민정을 비롯해, 보리의 양모이자 연민정의 친모, 보리의 친모이자 연민정의 양모, 보리와 연민정의 시모 등 모두 네 명의 악녀가 등장해 물량공세를 펼친다.

보리가 어렸을 때 친모의 악행 때문에 기억상실로 버려지고, 연민정의 친모 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교육도 못 받고 자라다가, 연민정이 친딸을 버리자 그 아이를 자기 호적에 올려 미혼모가 된다는 설정이다. 보리의 친모는 어른이 된 보리를 몰라보고 야멸치게 대하며, 보리의 시모도 보리를 무시한다. 즉 극중 모든 악녀들이 보리를 돌아가면서 구박하는 셈이다.

보통 막장드라마에 등장하는 악녀는 초인적인 능력으로 악행을 저지르게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도 연민정은 놀라운 정보력으로 모든 사람들이 평생 간직해온 각자의 비밀들을 파악해 그들을 조종한다. 거기에 말도 안 되게 착한 보리와, 보리의 모든 것을 감싸주는 남자주인공 등 비현실적 설정이 이어진다. 납치, 살인 등 자극적인 설정도 빼놓지 않아 시청자가 원하는 막장드라마의 모든 요소를 갖췄다.

최근 방영중인 <뻐꾸기 둥지>를 비롯해 비슷비슷한 설정의 막장드라마들은 많다. 그런데 그 많은 막장드라마들 중에서도 <왔다 장보리>가 특별히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이유는 뭘까?

<왔다 장보리>는 질질 끌지 않는다. 보통의 드라마에서 악녀의 비밀이 마지막에 폭로되며 대파국을 맞는 데에 반해 이 작품은 비밀들이 수시로 폭로된다. 그런데 그때마다 연민정은 놀라운 기지와 정보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조종해 위기에서 빠져 나간다. 워낙 빠른 호흡으로 파탄과 부활이 반복되기 때문에 시청자가 지루해할 틈이 없다.

또, <왔다 장보리>는 밝다. <뻐꾸기 둥지>도 악녀와 출생의 비밀 등 막장 코드를 독하게 장착한 드라마이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웠다. 반면에 <았다 장보리>는 고생만 하는 여주인공의 삶을 신파적으로 그리지 않고 도리어 코믹하게 표현했다. 남주인공과의 로맨스도 밝게 그려지고 심지어 극중에서 가장 무거운 커플인 남주인공의 부모마저 종종 코믹한 설정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빠른 호흡과 코믹한 설정으로 경쾌한 극을 만들어 시청자가 부담 없이 보도록 한 것이다.

워낙 재미있다보니 이 작품에 찬사가 쏟아진다. 보통 막장드라마는 독한 설정으로 욕하면서 본다고 하지만, <왔다 장보리>의 경우엔 밝고 경쾌한데다가 여주인공 모녀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 따뜻한 인간미까지 느끼게 해 이례적으로 찬사 받는 막장드라마에 등극했다.

<왔다 장보리>가 지속적으로 찬사 받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지만, 기본적으로 막장드라마 자체가 처음엔 욕을 먹다가 마지막엔 결국 찬사를 받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악녀가 파탄에 빠지며 권선징악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울화에 가득 차 있어 욕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막장드라마는 말도 안 되는 악행을 저지르는 악녀를 제시해 시청자들이 돌을 던지도록 유도한다. 그 악녀의 승승장구로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릴 즈음 악녀가 무참히 파탄당해 시청자의 막힌 속을 뻥 뚫어준다. 이 통쾌함과 자극적인 재미 때문에 한국인이 막장드라마에 중독되고 있는 것이다. <왔다 장보리>는 연민정의 무참한 파멸을 통해 2014년 한국인을 가장 통쾌하게 해준 드라마에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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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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