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는 왜 ‘문화의 교차로’라 불릴까?”…서울에서 만난 이탈리아 이야기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6.04.30. 10:53

수정일 2026.04.30. 17:58

조회 229

주한이탈리아문화원에서 ‘시칠리아, 언어와 민족의 교차로’를 주제로 한 인문학 특강
시칠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마우리치오 리오토 교수의 특강 ⓒ윤혜숙
시칠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마우리치오 리오토 교수의 특강 ⓒ윤혜숙
서울이 세계 도시라는 사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내가 세계 시민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주한이탈리아문화원에서 열린 인문학 특강 덕분이다.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은 이탈리아의 언어와 문화를 한국에 보급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이탈리아 외무성 산하에 있다. 전 세계 57개국에 설치되어 있으며, 유학 상담과 정보 제공, 이탈리아어 강좌 운영, 다양한 문화 행사의 기획과 후원을 진행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문화행사’다.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구조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탈리아를 만나는 경험은 그렇게 시작된다.
리오토 교수가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의 위치를 지도 위에서 설명하고 있다. ⓒ윤혜숙
리오토 교수가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의 위치를 지도 위에서 설명하고 있다. ⓒ윤혜숙

리오토 교수의 강연…시칠리아 언어와 민족의 교차로

‘시칠리아, 언어와 민족의 교차로’를 주제로 이번 특강을 진행한 마우리치오 리오토 교수는 동아시아와 지중해 문명을 함께 연구해 온 역사학자다. 리오토 교수는 이탈리아의 교수이자 번역가. 동양학, 그 중 한국학 분야에서는 권위적인 학자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어에 능통한 그는 통역 없이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은 ‘크기’에서 출발했다. 제주도와 시칠리아의 크기를 비교하며 시칠리아가 단순한 섬이 아닌 하나의 문화권이라는 점을 짚었다. 이어 지도 위에서 인도유럽어족과 셈어족의 이동 경로를 설명하며 시칠리아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접점임을 강조했다. 그리스, 로마, 아랍, 노르만 문화가 겹겹이 쌓인 역사 속에서 시칠리아는 끊임없이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고 변형해 왔다. 리오토 교수는 이를 “여러 문명이 중첩된 공간”으로 설명했다.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자연환경인 에트나 화산을 사례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윤혜숙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자연환경인 에트나 화산을 사례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윤혜숙
강의 중에는 에트나화산과 시칠리아의 상징 ‘트리나크리아(Trinacria)’도 소개됐다. 자연환경과 상징, 그리고 언어까지 시칠리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에트나화산은 현재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활화산으로,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리오토 교수는 이 화산을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시칠리아인의 삶과 역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존재로 설명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온 경험이 시칠리아 문화의 형성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트리나크리아는 세 개의 다리가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형태의 문양으로, 시칠리아 섬의 세 방향을 상징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상징이다. 리오토 교수는 이를 단순한 장식이 아닌 ‘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설명했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구조는 시칠리아를 거쳐 다양한 문화가 확산된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이 문양이 우리나라의 태극 문양과도 닮아 있다는 설명이었다.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 만들어진 상징이지만, 중심과 순환, 확산이라는 공통된 의미 구조를 지닌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강연장은 잠시 ‘시칠리아’에서 ‘한국’으로 시선이 이동했다. 멀리 떨어진 두 지역이 상징을 통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시칠리아의 상징 ‘트리나크리아’ 문양을 통해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설명하는 장면. ⓒ윤혜숙
시칠리아의 상징 ‘트리나크리아’ 문양을 통해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설명하는 장면 ⓒ윤혜숙
또한 시칠리아어와 표준 이탈리아어의 차이를 설명하며 언어 역시 역사와 문화의 축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한국과의 비교였다. 시칠리아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사례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이해를 도왔다. 칠판에는 한글과 한자가 함께 적혔고, 강연은 질문과 응답을 오가며 진행됐다.

특강이 끝난 뒤에는 다과회가 이어졌다.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에 빵을 찍어 먹으며 나눈 대화 속에서, 순간 이곳이 이탈리아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서울,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질문과 대화를 이어가며 문화 교류의 시간을 갖고 있다. ⓒ윤혜숙
강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질문과 대화를 이어가며 문화 교류의 시간을 갖고 있다. ⓒ윤혜숙

서울에서 만난 세계 시민들

강연을 듣던 중 옆자리에 앉은 히잡을 쓴 외국인에게 한국어가 가능한지 묻자 “물론이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짧은 대화는 강연장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날 만난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자매, 나잔과 하난 씨는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생활하며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언니는 한국 제품을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출하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고, 동생은 의료관광 분야에서 일하며 통역과 개인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문화원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SNS를 통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강의에 대한 소감으로는 “시칠리아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라 신기했고, 다문화 속에서 평화로운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 생활에 대해서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외국인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며 세계 도시로 발돋움한 서울의 변화를 짚었다. 특히 한국의 장점으로는 ‘안전’과 ‘정’을 꼽았다. “가족 중심 문화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해서 공감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강 이후 마련된 다과회.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과 간단한 다과가 준비됐다. ⓒ윤혜숙
특강 이후 마련된 다과회.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과 간단한 다과가 준비됐다. ⓒ윤혜숙
이탈리아에서 온 대학생 니콜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 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유창한 한국어로 인터뷰에 응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 중인 그는 “서울은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섞인 도시”라고 말했다.

니콜은 한국에 오기 전 이탈리아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수강하면서 드라마와 유튜브를 통해 익혔다. 특히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을 서울에 와서 실제로 경험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는 그의 말은 콘텐츠와 현실이 이어지는 한국 문화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그는 한국 생활에 대해서 “곳곳에 있는 편의점과 서울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이탈리아에 있는 가족이 그리운 점을 제외하면 딱히 불편한 점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살이 2개월 차인 니콜의 앞으로의 목표는 “특강을 진행하신 리오토 교수님처럼 이탈리아에 한국 문화를, 한국에 이탈리아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주한이탈리아문화원 앞. 주한이탈리아대사관과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 함께 위치해 있다. ⓒ윤혜숙
주한이탈리아문화원 앞. 주한이탈리아대사관과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 함께 위치해 있다. ⓒ윤혜숙

주한이탈리아문화원…서울에서 만나는 이탈리아

이번 특강에 참여하면서 서울이 세계 문화가 교차하는 도시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은 강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이 이탈리아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오는 5월 4일과 5일에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 ‘세계 놀이공원’에 참여해 이탈리아 문화 체험 부스를 운영한다. 이탈리아 만들기, 달걀 꾸미기, 모자이크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이 마련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사전 예약 없이 선착순 참여가 가능하다.

서울에 살며 세계를 만난다는 것. 그 경험은 강연장에서 시작해 일상의 공간으로 계속 확장되고 있다. 이탈리아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의 소식을 받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주한이탈리아문화원

○ 위치 :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98 일신빌딩 3층
○ 교통 : 한강진역 2번 출구에서 741m
인스타그램

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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