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던 남산의 아픈 역사, '남산 기억로'를 걸으며 되새기다!

시민기자 남궁소담

발행일 2025.03.26. 14:46

수정일 2025.03.26. 17:05

조회 4,747

서울, 얼마나 알고 있나요?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을 잘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다. 늘 가는 곳만 가고,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다 보면 서울의 구석구석을 못본 채로 살아가게 된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화려한 불빛으로 반짝이는 이곳에는 어떤 질곡의 역사가 숨어 있을까?

내가 서 있는 땅 위에서 흘러온 시간이 궁금하다면 도보관광 프로그램을 신청해 보자. 특히 중구 도보관광 프로그램 ‘남산 기억로’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올해, 해설사와 함께 남산 일대를 거닐며 일제강점기 침탈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는 역사 탐방로이다.

‘남산 기억로’ 도보관광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목요일·토요일 오전 10시·오후 2시에 진행하며,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를 통해 예약 후 참여할 수 있다.
통감관저터이자 현재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억의 터 ©남궁소담
통감관저터이자 현재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억의 터 ©남궁소담

남산, 화려함 뒤에 숨은 슬픈 역사

‘남산 기억로’ 도보관광 프로그램은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출발한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충무로에서 백범광장 방향으로 거닐며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남산과 충무로 일대는 현재 관광 명소이자 쇼핑 명소이며, 서울 안에서도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과거에는 슬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통감관저터가 나온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통감부의 수장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터만 남아 있지만, 오래된 나무들은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굽어보았을 것이다.

통감관저터는 조선 후기 이완용과 조선 통감 데라우치가 한일강제병합조약을 비밀스럽게 체결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이곳에는 거꾸로 세운 동상이 있다. 일제는 고종 황제와 대신들을 겁박하여 을사늑약을 강요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세워두었는데, 광복 70주년을 맞아 흩어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워 욕스러움을 기린 의미가 있다.

그 옆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생명을 상징하는 보랏빛 빛줄기를 표현한 작품이다. 각각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픈 역사 속에서도 식물의 줄기처럼 굳세게 일어나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난 분들의 이름 앞에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 을사조약 체결을 주도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거꾸로 세워놨다. ©남궁소담
    을사조약 체결을 주도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거꾸로 세워놨다. ©남궁소담
  • 경술국치의 현장이었던 통감관저터에서 뼈 아픈 역사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남궁소담
    경술국치의 현장이었던 통감관저터에서 뼈 아픈 역사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남궁소담
  • 을사조약 체결을 주도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거꾸로 세워놨다. ©남궁소담
  • 경술국치의 현장이었던 통감관저터에서 뼈 아픈 역사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남궁소담

아픈 역사를 잊지 않도록 작품으로 승화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중부공원여가센터로 향하는 길을 걷다 보면 옛 중앙정보부 건물이 나온다. 과거 고문과 강압적인 취조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산 제 모습 찾기’ 프로젝트 이후에는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났다.

다만 이곳을 지나는 터널에 ‘소릿길’이라 이름 붙이고 슬픈 역사를 잊지 않도록 했다. 소릿길 입구에서 버튼을 누르면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발자국 소리,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과거 중앙정보부 지하 조사실에서 들려왔음직한 소리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하여, 우리가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작품으로 승화했다. 남산의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그림자 또한 볼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이다.
  • ‘소릿길’이라 이름 붙여진 터널 ©남궁소담
    ‘소릿길’이라 이름 붙여진 터널 ©남궁소담
  • 소릿길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남궁소담
    소릿길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남궁소담
  • ‘소릿길’이라 이름 붙여진 터널 ©남궁소담
  • 소릿길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남궁소담

조선통감관저터에서 조선신궁터로 이어지는 ‘국치의 길’

남산 일대에 일제의 신사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리라초등학교 뒤편에는 돌로 된 수조가 있는데, 수조의 한쪽 면에는 ‘세심’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이 수조는 신사의 입구에 설치하여 손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노기 마레스케라는 일본인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조선인들도 그를 본받으라는 의미로 노기신사터를 이곳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또한 숭의여대 부근에는 경성신사터가 자리한다. 숭의여대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개교했으나, 신사 참배 거부로 강제 폐교 당했다. 이후 경성신사터를 허물고 그 자리에 학교를 다시 세웠다고 하니, 항일 정신을 보여주는 유산인 셈이다.

조선통감관저터부터 경성신사터를 지나 조선신궁터로 이어지는 길‘국치의 길’이라 이름 지었다. 국권 상실의 현장을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다.
국치의 길을 알리는 표지판 ©남궁소담
국치의 길을 알리는 표지판 ©남궁소담

지배의 역사를 자유와 독립의 역사로!

조금 더 길을 오르면 한양공원비를 만날 수 있다. 1910년 서울에 거주한 일본인들은 남산 기슭의 땅을 무상 임대 받아 공원을 개원했다. 고종은 한양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비석에 직접 이름을 새겼다. 이곳이 조선 땅임을 정확히 보여주는 비석이다. 그런데 이 비석의 뒷면은 돌을 파놓은 듯 인위적으로 훼손되어 있다. 일본인이 쓴 ‘한양공원기’에 반발하여 내용을 없앤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지막 코스는 긴 계단을 올라 안중근의사기념관백범광장의 초입에 들어서는 것이다. 해설사는 “식민지의 역사를 독립의 역사로, 지배의 역사를 자유의 역사로 바꿔가는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며 코스를 소개했다. 아프고 두려운 역사를 용기의 역사로, 자유의 역사로 바꿔온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한양공원비 ©남궁소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한양공원비 ©남궁소담
  • 남산케이블카 50m 부근에 무심히 위치한 한양공원비 ©남궁소담
    남산케이블카 50m 부근에 무심히 위치한 한양공원비 ©남궁소담
  •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한양공원비 ©남궁소담
  • 남산케이블카 50m 부근에 무심히 위치한 한양공원비 ©남궁소담

나의 동네를 더 사랑하는 법!

여행이나 나들이를 위해서만 남산을 찾았다면, 한 번쯤은 남산의 숨은 역사를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의 역사를 잊지 않는 일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또한 내가 살아가는 서울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알아보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방법일 테다.

광복 80주년 기념 '남산 기억로' 중구 도보관광 프로그램

○ 기간 : 2025년 3월 21일~6월 30일
○ 장소 : 남산골 한옥마을~안중근의사기념관
○ 교통 :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3번 출구
○ 운영시간 : 화‧목‧토요일 10:00, 14:-00(약 1시간 30분 소요)
○ 휴무 : 공휴일
○ 이용요금 : 무료
○ 모집정원 : 10명
○ 이동경로 : 남산골 한옥마을 → 통감관저터(현 위안부 기억의 터) → 통감부터(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 왜성대터(현 남산자락 일대) → 노기신사터(현 리라초, 남산원) → 경성신사터(현 숭의여대) → 한양공원터 → 조선신궁터 →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시민기자 남궁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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