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평화공원이 들려주는 특별한 호국영웅 이야기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24.06.24. 15:52

수정일 2024.06.24. 17:50

조회 1,293

“아버지, 어머니! 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중에 자유를 지키려고 분투하고 있는데 만약 제가 이를 도우려 흔쾌히 가지 않고 전쟁 후 평화 시에 선교사로 돌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제 양심상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일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가 부모님께 보낸 편지 내용이다.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은평평화공원이 연결된다. Ⓒ최용수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은평평화공원이 연결된다. Ⓒ최용수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에서 공원으로 이어진 진입로 Ⓒ최용수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에서 공원으로 이어진 진입로 Ⓒ최용수

매년 6월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생각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수많은 6.25전쟁 영웅들 중 미처 기억하지 못한 분이 있어 ‘은평평화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를 나와 40여 미터, 작은 공원이 바로 ‘은평평화공원’이다. 쭉 뻗은 공원 안길 끝, 태극기와 군복 차림의 동상이 서 있다. 무슨 사연일까?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산화한 파란 눈의 호국 영웅

공원 입구에서 바라보면 50여 미터쯤 될까, 군복 차림의 동상을 만난다. 현충원도 아닌 도심 공원인데 웬 군복 차림의 파란 눈의 외국 군인 동상일까. 기단석을 읽어 보았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Greater love has no one than this, that he laydown his life for his friends. John 15:13)”라는 요한복음 성경 구절이 새겨진 기단 위에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LT. William Hamilton Shaw, 한국명 서위렴)의 동상이 서 있다.
은평평화공원에 있는 윌리엄 해밀터 쇼의 동상과 태극기 Ⓒ최용수
은평평화공원에 있는 윌리엄 해밀터 쇼의 동상과 태극기 Ⓒ최용수

윌리엄 쇼는 일제 강점기 선교사로 파견되어 활동하던 윌리엄 얼 쇼의 외아들이다.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친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웨슬리언대를 졸업한 후 해군 장교 과정을 이수하고 소위로 임관, 제2차 세계 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전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해군사관학교에서 함정 운용술 교관으로 근무하고 우리나라 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한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내가 태어난 한국이 제2의 조국’이라면서 아내와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재입대,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참전한다.
은평평화공원 안쪽에 있는 미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의 동상과 추모비 Ⓒ최용수
은평평화공원 안쪽에 있는 미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의 동상과 추모비 Ⓒ최용수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해도 늦지 않다.”

재입대하면서 부모와 친구들에게 남긴 말이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여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을 이끈다. 상륙 작전 완결 후에는 해병대 5연대 소속으로 보직을 바꿔 서울 탈환 작전에 참전한다. 이후 김포반도, 노고산 전투 등에서 승리하고 녹번리 전투에 투입된다.

후방 정찰 임무에 투입되었던 쇼는 1950년 9월 22일 이곳 녹번리에서 인민군 매복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한다. 그때 나이가 29세이다.
해밀턴 쇼의 어록과 소개글이 동상 기단에 새겨져 있다. Ⓒ최용수
해밀턴 쇼의 어록과 소개글이 동상 기단에 새겨져 있다. Ⓒ최용수

전사 6주기인 1956년 9월 22일,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친지와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전사 장소인 녹번동에 기념비를 세운다. 도시계획 등으로 응암동 어린이공원으로 옮겨졌다가 6.25 전쟁 60주년 윌리엄 해밀턴 쇼 전사 60주기를 맞아 그의 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추모공원으로 조성한 은평평화공원에서 고인의 동상을 제막하게 된다. 

제막식에는 고인의 큰 며느리(Mrs. Carole Cameron Shaw)를 비롯하여 손자와 조카, 참전용사 Jesus Rodriquez 등이 참석했다. 쇼의 부인은 남편 잃은 슬픔을 딛고 하버드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이화여대 교수와 세브란스병원 자원봉사자로 평생을 한국을 위해 헌신했다. 아들과 며느리도 하버드대에서 한국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장학 사업과 한·미 학술교류에 힘쓰는 그의 가문은 온전히 한국을 위해 헌신한 삶 그 자체이다. 
제자이자 친구인 해군사관학교 2기생들이 세운 추모비 Ⓒ최용수
제자이자 친구인 해군사관학교 2기생들이 세운 추모비 Ⓒ최용수

그의 동상 옆에는 기념비가 있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전 문교부 장관 등 60여 명이 ‘키가 크고 평양 말씨를 쓰던 벽안의 친구’를 위해 1956년 녹번삼거리에서 세웠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비석이다. 비석 받침대에는 제자이자 친구인 해군사관학교 2기생들의 헌사가 새겨져 있다.

한국을 위해 목숨과 사랑을 바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매년 9월 22일이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말없이 서 있는 동상은 한국인과의 특별했던 우정과 동맹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파란 눈의 영웅, 우리가 보답으로 해야 하는 것은 그를 기억하는 일 아닐까.

여가수가 6.25전쟁 참전 유공자 된 사연

“태극기 흔들며 님이 떠난 새벽 정거장 / 기적이 울었소 / 만세 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던 날 /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 용감하게 싸우시나 님이여 건강하소서..”

원로가수 금사향의 노래 <님 계신 전선>의 노랫말이다.
원로가수 6.25 참전 유공자 금사향의 <님 계신 전선> 노래비 Ⓒ최용수
원로가수 6.25 참전 유공자 금사향의 <님 계신 전선> 노래비 Ⓒ최용수

해밀턴 쇼의 동상을 지나 오른쪽으로 몇 걸음 더 가면 노래비가 있다. 원로가수 금사향(琴絲響, 본명 최영필, 1929.1.30.~2018.5.10.)의 <님 계신 전선> 노래비이다. 2014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온전히 구민들의 제안으로 추진되었다니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금사향은 6.25전쟁 당시 전장을 찾아다니며 목숨을 걸고 위문공연을 했다. 장병들의 사기를 높여 전투력 발휘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6.25참전 국가유공자’로 선정된다. 사후에는 호국원에 안장되었다. <님 계신 전선>은 1953년 제주도 모슬포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 활동 당시 발표한 금사향의 대표곡이다.

‘위문공연 도중 죽더라도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라는 '먹물도장' 각서까지 써가며 펼쳤던 위문공연이라 한다. 노랫말을 읽으니 위문공연에 위로받았을 국군 장병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풍요롭게 살아가는 오늘의 대한민국, 가요계 1세대 원로가수 금사향 님의 숨은 공적을 기억하는 것이 보훈의 방법 아닐까 싶다.
은평평화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뒤쪽은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 이름을 새긴 석물이다. Ⓒ최용수
은평평화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뒤쪽은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 이름을 새긴 석물이다. Ⓒ최용수

위안부 기림일을 상기시키는 평화의 소녀상

이 외에도 은평평화공원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모습의 소녀상으로, 한 손을 높이 들고 새를 날리는 형상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소녀상과의 다른 점은 그 모습이 우리를 너무 많이 닮아 친근감이 솟는다는 것이다. 하늘로 새를 날리며 살짝 미소 짓는 소녀는 평화를 상징하기 충분하다. 2018년 8월 14일, 위안부 기림일에 맞춰 은평구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제막되었다니 의미가 특별하다.
자발적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기여한 시민들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 Ⓒ최용수
자발적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기여한 시민들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 Ⓒ최용수

은평평화공원에서 만난 3개의 조형물은 시대적 동질성을 갖고 있어 ‘평화공원’이란 이름을 가진 듯하다. 바쁜 도심 일상으로 보훈의 의미를 찾아 보지 못했다면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을 추천한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와 함께 6월 29일부터는 여름철 ‘물놀이터’ 운영을 시작한다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들이 장소로 그만이다. 며칠 남지 않은 6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영령들을 기억하는 것은 역사를 잊지 않는 쉬운 길 아닌가 싶다.
6월 29일부터 8월 18일까지 무더위 쉼터 겸 물놀이터로 이용될 시설 Ⓒ최용수
6월 29일부터 8월 18일까지 무더위 쉼터 겸 물놀이터로 이용될 시설 Ⓒ최용수

은평평화공원(Eunpyeong Peace Park)

○ 위치 : 서울시 은평구 서오릉로 47 
○ 교통 :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에서 34m
○ 문의 : 02-351-8003~7 (은평구 공원녹지과)

시민기자 최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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