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 그 이상! 선유로운·양재천길…로컬상권 체험기

서울사랑

발행일 2024.06.24. 13:19

수정일 2024.06.24. 13:19

조회 1,930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는 장충단길 남소영광장.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는 장충단길 남소영광장.
MZ세대를 중심으로 서울의 로컬 상권이 활기를 찾고 있다. 이에 따라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를 합친 신조어 ‘로코노미’도 우리 귀에 익숙하게 들려온다. 서울의 대표적 로컬 상권을 다니면서 서울의 로코노미 트렌드를 체험해보았다.
경춘선 공릉숲길을 걷는 시민들.
경춘선 공릉숲길을 걷는 시민들.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각 지역의 고유한 특색, 이른바 ‘로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MZ세대를 중심으로 로컬 상권이 부활하고 있다. 이들 상권의 규모가 커지면서 주목받는 트렌드가 있다. 바로 ‘로코노미’다. 로코노미란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를 합친 신조어로, 거대 상권이 아닌 골목 상권에서 주요 소비와 여가 활동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강서맥주’는 로컬 브랜드의 파급효과를 말해주는 좋은 예다.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해 화제를 모은 강서맥주는 강서구에 ‘수제 맥주가 맛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입히며 강서 지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낡은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어니언’은 성수동 ‘힙한’ 카페의 원조로, 성수동이 로컬 상권으로 뜨는 데 일조했다. 옛 여관 건물이 갤러리로 탈바꿈한 ‘통의동 보안여관’은 지금의 매력적인 소우주 서촌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외관부터 독특한 석촌호수 부근의 ‘고도식’은 평범한 주택가에 지나지 않았던 송리단길을 ‘맛슐랭’ 거리로 등극시켰다.

물론 이전에도 슬리퍼를 신고 다닐 정도의 가까운 거리인 ‘슬세권’, 자신만의 취향과 특색 있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핫 플레이스’ 등 비슷한 용어와 트렌드는 존재했다. 하지만 현시점의 로코노미는 2030 세대에게 신선하고 힙한 트렌드로 인식되는 동시에 선한 소비 경험을 낳는다는 점에서 슬세권, 우리 동네 핫플보다 더 진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서울의 로컬 상권에서 로코노미가 만드는 의미 있는 선순환을 직접 확인해봤다.
선유로운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선유도고양이’
선유로운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선유도고양이’
MZ세대 사이에 입소문 난 선유로운의 명소 ‘피크닉109’
MZ세대 사이에 입소문 난 선유로운의 명소 ‘피크닉109’

“내가 아는 그 길 맞아?” 상권이 달라졌다!

용산구에 사는 조유진 씨는 얼마 전 오랜만에 용문시장 인근을 찾았다가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특색 있는 공방, 카페, 책방, 플라워 숍 등이 들어선 용마루길이 시장 골목보다 ‘핫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말 데이트를 즐기는 20대 커플 박수완·박지헌 씨에게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2번 출구 앞은 지정된 만남의 장소다.

투명 아크릴 패널에 팝아트가 장식된 선유도역 2번 출구를 나오는 순간부터 이들의 ‘선유로운’ 데이트는 시작된다. 선유도역 2번 출구와 6번 출구를 중심으로 맛집과 카페, 전시 공간이 즐비한 데다 도보로 5분이면 닿는 양화한강공원에서 한강 피크닉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이만한 데이트 장소가 없다.

노원구에 사는 노하님 씨에게는 요즘 친구들이 놀러 오면 보여주고 싶은 길이 생겼다. 이른바 ‘커피 로드’로 불릴 만큼 근사한 카페가 많은 경춘선 공릉숲길이다. “숲길을 따라 산책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전시를 보거나 쇼핑을 하기도 해요. 선택지가 많아 누구와 함께 오든 즐거운 곳이죠.”

또 원래 조깅을 위해 찾던 양재천길을 요즘은 걷고 싶어 찾는다는 최영현 씨는 걸음을 멈추고 뭐가 생겼나 구경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말한다. “문화 공간이 속속 생겨나면서 중장년층이 많았던 이곳에 젊은 층이 부쩍 늘어났어요. 양재천길이 어디까지 변신할지 기대됩니다.”
공릉숲길에 조성된 카페 거리의 카페.
공릉숲길에 조성된 카페 거리의 카페.
다양한 먹거리로 평일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충단길.
다양한 먹거리로 평일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충단길.

힙한 브랜드, 많은 유동 인구는 뜨는 동네의 필수 조건

로컬 상권의 부활은 데이터가 말해준다. 빅데이터 핀테크 기업 핀다가 상권 분석 플랫폼 ‘오픈업’을 통해 공개한 서울 로컬 상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서울의 대표적 로컬 상권인 경춘선 공릉숲길, 선유로운, 양재천길, 오류버들, 용마루길, 장충단길, 하늘길 상권의 총매출은 전년도 동기 대비 3.4% 증가한 약 1,917억 원으로 나타났다. 로컬 상권의 외식업 매출만 놓고 보면 전년 동기 대비 약 14.1% 증가한 1,063억 원 규모를 기록했다.

7개 로컬 상권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리브랜딩을 통해 지역 대표 상권으로 자리 잡은 양재천길로 나타났다. 문화와 생태가 공존해 살아나고 있는 선유로운 상권과 합정역 7번 출구 일대의 하늘길 상권이 그 뒤를 이었다. 장충단길은 전년 대비 30%나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늘길과 오류버들도 각각 9.2%, 6.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컬 상권 방문자를 성별·연령별로 나눈 데이터를 보면 MZ세대에 속하는 20대와 30대는 10명 중 4명(39.5%)꼴이었다. 특히 30대는 결제 금액과 결제 비중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로컬 상권을 가장 활발히 이용하고 있는 세대로 나타났다. 황창희 핀다 오픈업 프로덕트 오너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시민의 관심 속에서 서울 로컬 상권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손님이 가득한 장충단길의 베트남 식당.
손님이 가득한 장충단길의 베트남 식당.
살롱 in 양재천’ 카페 내부.
살롱 in 양재천’ 카페 내부.

그렇다면 로컬 상권에서 피어난 로코노미가 각광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는 주목해야 할 소비 트렌드로 로코노미를 꼽으며 ‘가치소비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원인을 분석했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를 쓴 모종린 교수(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는 이 책에서 “사람들을 공간에 머물게 만드는 힘은 물건이 아니라 그곳에서 향유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에 있다. 로컬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언급했다.

상권 분석 전문가인 김영갑 한양사이버대학교 교수도 “뜨는 상권의 필수 조건은 힙한 브랜드와 입소문을 내줄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 지역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고 머물게 만드는 힘을 키워야 사람이 오고 상권이 살아난다는 얘기다. 실제 인기 있는 로컬 상권은 상권별 특색을 최대한 살리고, 주변 인프라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갖추며 차별화된 가치와 아이덴티티로 상권의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장충단길 로컬 브랜드 상권임을 알리는 오렌지색 큐브.
장충단길 로컬 브랜드 상권임을 알리는 오렌지색 큐브.

커피 향 가득한 경춘선 공릉숲길, 아날로그 감성 넘치는 장충단길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합정역 인근 하늘길은 하늘길 어린이 퍼레이드, 미니 체육대회 등을 통해 온 가족이 누릴 수 있는 가족 친화형 상권으로 거듭나고 있다. 남산의 장충단길은 족발·보쌈 등 기존의 ‘먹세권’에 남소영광장에서 펼쳐지는 아날로그 카메라 출사, 추억의 놀이 스탬프 투어 같은 행사를 더해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상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트럴파크, 공리단길 등으로 불리는 공릉역 인근 680m 구간의 경춘선 공릉숲길은 커피와 함께 재즈, 팝페라 등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상권으로 특색을 굳히고 있다.

문화적 색채를 덧칠한 곳도 있다. 양재천길은 수공예품 공방, 전시 공간, 악기점, 아트 드로잉 등 예술 체험 공간이 어우러지며 색다른 예술 놀이터로 변모하고 있다. 선유도공원 일대의 선유로운은 로컬 맛집과 ‘선유도고양이’ 등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로컬 브랜드, 피크닉 존 등이 어우러지며 복합 체험 공간으로 단장하고 있다.

구로구 내 지역 자연과 연계한 오류버들은 오류버들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체험·휴식 공간으로, 효창공원앞역 인근 용마루길은 기존 시장 상권에 인문학과 클래식 그리고 와인을 입힌 문화공간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로코노미가 지역을 기반으로 한 가치 소비를 담아내는 만큼 지역의 이야기나 이미지가 반영된 특별한 제품을 체험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을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서울시의 창의적 소상공인 양성 프로그램 ‘로컬 인(人) 서울’을 통해 양재천길에 창업한 펠트 모자 전문점 ‘블레숑’이 그 예다.

“1600년대의 페도라 제작 방식으로 모자를 만든다고 해서 둘러봤는데, 아주 색다른 곳이었습니다. 양재천 카페 거리가 이런 개성 있는 가게들의 출현으로 트렌디해진 느낌이에요. 피렌체의 공방 거리가 부럽지 않다니까요.” 서초구민 장현수 씨는 덕분에 양재천길을 걷는 게 더욱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선유도고양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MZ세대.
선유도고양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MZ세대.

서울시는 올해 추가로 관악구 샤로수길과 강남구 서초·강남역 상권을 활성화한다. 또 로컬 브랜드 상권 활성화 거점인 ‘로컬바이브’를 통해 로컬 브랜드를 발굴 및 육성하고, 로컬을 더 단단하게 이어줄 창의적 소상공인을 선정해 로컬 크리에이터로 양성한다. 골목 상권의 특색과 매력을 극대화해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해외 관광객도 찾아오는 ‘K-골목’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로코노미는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공존을 이어가는 상생의 트렌드가 되어 서울의 사람과 사람을, 동네와 동네를 잇고 있다.

임지영  |  사진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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