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이삿날 먹는 추억의 음식…서울에서 찾은 짜장면 맛집

서울사랑

발행일 2024.03.29. 15:00

수정일 2024.04.24. 16:45

조회 4,458

강한 화력으로 불맛나게 볶아내는 중국집 주방의 꽃은 누가 뭐래도 불판이다.
‘왕쓰부’로 불리는 왕육성 셰프가 직접 불판을 잡고 볶아내는 짜장면을 점심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강한 화력으로 불맛나게 볶아내는 중국집 주방의 꽃은 누가 뭐래도 불판이다. ‘왕쓰부’로 불리는 왕육성 셰프가 직접 불판을 잡고 볶아내는 짜장면을 점심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저마다의 추억 속 한편엔 짜장면이 자리하고 있다. 졸업식이나 입학식을 하는 날, 바쁘고 정신없지만 끼니를 거를 수 없는 이삿날 먹는 짜장면처럼 중국요리는 늘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음료수 한 잔도 배달시켜 먹는 시대지만, 배달의 시초는 단연 중국집 철가방이다. 그렇게 서울의 중국요리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얼마면 되겠니? 시대별 짜장면 지수


얼마면 되겠니? 시대별 짜장면 지수
2024년 현재 평균 7,000원(한국소비자원 참가격 기준 7,069원)에 맛볼 수 있는 짜장면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여기에 개성 있는 재료를 더하거나, 조리법이 달라지는 순간 짜장면은 더 이상 저렴하게 끼니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라기보다 요리가 된다. 나라별 물가지수를 비교하는 햄버거(빅맥) 지수처럼 서울의 시대별 짜장면 지수는 어떨까.

모두를 위한 짜장면

얼마 전 짜장면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적이 있다. 여러 방송에 나간 경험이 있는데, 이 다큐멘터리처럼 방영 후 연락을 많이 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쇄도(?)하는 “잘 봤어”라 는 친구들의 문자메시지를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짜장면은 역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만만한 가격에 언제든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구나’ 하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마 독자 들에게도 짜장면은 값싼 한 끼를 넘어 감상에 젖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짜장면이 갖는 힘이다. 

서울은 인천과 함께 짜장면이 가장 먼저 퍼진 도시다. 화교가 제일 많이 사는 만큼 가장 큰 커뮤니티도 서울에 있다. 화교의 ‘교(僑)’ 자에는 ‘임시 거처’라는 의미가 있다. 즉 화교란 타국 살이를 하는 이를 말한다.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닌게 아니라 화교와 짜장면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1882년 임오군란이 벌어지고, 난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한다. 지금 보면 외세 개입을 요청하는 한심한 발상이다. 어쨌든, 청 나라 군대 3,000여 명(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이 서울에 주둔할 때 상인, 지원 인력이 함께 들어왔다. 

이들이 지금 화교의 효시이고, 짜장면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이후 우리 땅에 중국인들이 점점 많이 들어왔다. 포목 장수, 종합 도매상, 채소 재배 농민, 정원사, 석공, 주물 기술자가 그들이다. 외국인이 들어오면 당연히 그들 나라의 음식도 따라 들어온다. 중국집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간이 음식점이나 노점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호떡집이 바로 그것이다. 면을 삶아 팔기도 했을테다. 홍콩에 가면 손수레에서 파는 차자이멘이라는 국수 노점이 유명하다. 아마도 그런 형태이지 않았을까. 그것이 짜장면의 시작이다. 

“대려도, 아서원, 대관원 등 서울에 고급 중국집이 많았어요. 요정급이었죠. 그 아래로는 면과 간단한 요리를 파는 중국집이 있었고, 그 아래로 과자와 빵, 호떡, 만두를 파는 집들이 있 었고요. 이렇게 중국요리별로 다채로운 중국집이 있었어요.” 서울의 중국집 역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살아 있는 신화라 할 만한 왕육성 셰프의 말이다.
모두를 위한 짜장면

차이나타운에 가득했던 맛있는 냄새

일제강점기에 서울 시내 식당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한식당, 일식당과 함께 중국집이 많이 나온다. 명동, 충무로 등 일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주로 소공동 일대(서울시청 맞은편)에 중국집이 모여 있었다. 화교 타운, 차이나타운의 시작이다. 1970년대에 재개발되면서 북창동으로 옮겨간 일부 중국 상점과 중국집을 빼고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옛날 중국집 메뉴 중에는 짜장면이 제일 중요했어요. 요새는 짬뽕도 많이 팔지만 과거에는 짜장면, 우동이 먼저였지요. 짬뽕은 지금과 맛이 달랐어요, 국물이 별로 없고 기름진 맛이요. 아는 사람만 먹었죠. 시원한 국물을 원하면 우동을 먹었습니다.”

짬뽕은 1970년대 들어 점차 고추를 넣더니 나중에는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한 맛으로 변했고, 한국인의 취향에 맞게 국물 양을 늘리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970년대는 중국요리를 좋아하는 서울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1960년대부터 무작정 상경이 흔해졌다. 일거리를 찾아 지방에서 서울로 대책 없이 오는 행렬이었다. 그들 은 급료는 없더라도 귀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데다 먹이고 재워주기까지 하는 중국집에 취직하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한국인에게는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폐쇄적인 화교 요리사 사이에만 조리법이 전수되었죠. 요즘처럼 유튜브도, 요리책도 없던 시절이잖아요. 조리법은 오직 요리사 머리와 손에만 있었어요.(웃음)” 

그렇게 한국인도 중국요리 기술을 배우게 되고, 점점 커져가는 서울 구석구석에 중국집을 차린다. 1960년대에 이미 한 소설가는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작품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서울은 계속 팽창해 나갔다. 화교가 많이 사는 나라에는 대개 차이나타운이 있다. 노동자로 이민을 가면서 거대한 화교 사회가 생겨난 뉴욕을 비롯해 미국의 여러 도시, 일본의 요코하마 등에는 차이나타운이 있다. 한국의 차이나타운은 사실상 소략한 상업지구일 뿐 화교의 거주지는 아니다.

중국의 맛을 전해준 중국집

‘중국집’이라는 말도 특이하다. 이탈리아 음식을 판다고 ‘이탈리아집’이라고 하지 않고, 일본 음식을 판다고 ‘일본집’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직 중국요리를 판매하는 데만 중국집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아마도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집에서 음식도 같이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이름 붙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제는 중국인(화교)이 운영하는 중국집은 거의 없다. 대개 한국인이 주인이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중국집이라 부른다. 

중국집에서 팔던 과거 음식 중에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많다. 기스면, 따루면(우동으로 변함), 울면 등의 식사류도 파는 집이 아주 드물다. 수타로 면을 치던 기술자도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현존하는 수타 기술자는 대개 한국인이다. 중국요리가 들어온 지 140년이 지나면서 수많은 변화가 일어 났다. 물론 담가서 쓰던 짜장면용 된장, 즉 춘장을 담그는 집도 없다. 그렇게 중국요리도 변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입맛을 매혹하던 중국요리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면 맛이 좋고, 재료를 볶고, 튀김을 적극적으로 쓰던 중국요리 말이다. 외식 문화를 거의 독점한 중국요리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진한 짜장 볶는 냄새로 우리 입맛을 매혹하는 마력은 여전하다.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찾아라 짜장면 맛집 비법재료


왕사부의 비법은 가지 ‘진향 가지간짜장’ 화교 2세로 50년 업력을 자랑하는 중식의 대가 왕육성 셰프. 10대 때 처음 철가방을 든 뒤 서울의 유명 중국요리 집인 대관원, 홍보석을 거쳐 더 플라자 호텔 도원, 호텔 코리아나 대상해 오너 셰프 자리까지 오른 뒤 인생 2막을 선언하며 돌연 골목에 중국집을 열었다. 중식당 ‘진진’은 동네에서 즐기는 호텔 요리를 표방하며, 점심에만 운영하는 서교동 진향과 정통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진진가연이 이웃해 있다.

진진은 2017년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받은 이후 2020년부터는 가성비 맛집 ‘빕구르망’에 선정되면서 동네 중국집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 점심시간 한정으로 맛볼 수 있는 달큼한 가지 간짜장과 수제 만두는 놓치지 말 것.

가격 가지간짜장 9,000원 수제 만두 8,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시(매주 월요일 휴무)
주소 마포구 월드컵북로 1길 62

노포의 선택은 고기  ‘현래장 유니짜장’

1953년에 개업해 67년째 영업 중인 중식 노포로 국내에서 수타 짜장면으로는 독보적으로 유명하다. 양파와 돼지고기, 새우, 오징어를 잘게 썰고 볶아 부드러운 짜장은 수타 생면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가격  유니짜장 1만 원, 손군만두 8,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30분(연중무휴)
주소  마포구 마포대로 20 지하 1층

한국인의 매운맛, 청양고추  ‘송죽장 고추쟁반짜장’

1952년 신길동에서 시작해 문래동을 지나 지금의 영등포소방서 옆 신축 건물 전체를 쓸 정도로 대를 잇고 있는 영등포 중식 노포. 보통 중국집의 매운맛 하면 짬뽕이지만, 이곳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면과 함께 볶아내는 고추쟁반짜장이 매운맛을 책임진다.

가격  고추쟁반짜장(2인분) 1만7,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연중무휴)
주소  영등포구 문래로 203

기본에 충실, 채소 짜장  ‘효동각 옛날자장면’

서울 중국요리의 시작이 화려한 만찬식 코스 요리였고, 여느 중국집을 가더라도 메뉴판을 가득 채우는 요리가 일반적이지만 여긴 다르다. 전통 방식 그대로 짜장면 한 가지만 만들어내는 이곳은 주문과 동시에 즉석에서 조리하는 데다 고기와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가격  자장면 8,000원, 곱빼기 1만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50분~오후 2시 30분(일요일 휴무)
주소  서대문구 연대동문길 24

강윤희   사진 정지원

출처 서울사랑 (☞ 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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