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리 배워요" 서울숲 버려진 땅 가꾼 시민정원사들

시민기자 조시승

발행일 2023.10.16. 11:00

수정일 2023.10.16. 18:03

조회 1,787

나무잎으로 단장된 '시민참여정원' 입구의 입간판이 운치를 더한다. ⓒ조시승
나무잎으로 단장된 '시민참여정원' 입구의 입간판이 운치를 더한다. ⓒ조시승

"시민님! 화단 안쪽 밟으시면 화초가 아파해요! 안 보이지만 뿌리가 지금 서 계신 곳까지 뻗어 있어요. 조금 떨어져 사진을 찍으셔야 화초도 반겨요~"

방금 주차를 마친 젊은 커플이 화단 안쪽의 꽃에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정원을 다듬고 있던 '시민정원사'가 유의사항을 환기시켰다.

커플은 죄송하다며 두 걸음 떨어져 사진 찍고는 "‘시민참여정원’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자주 찾는 힐링명소예요." 라고 시민정원사들의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
'시민참여정원'의 진입로는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해 찾기 쉽다. ⓒ조시승
'시민참여정원'의 진입로는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해 찾기 쉽다. ⓒ조시승

도시녹지화의 근간을 이루는 정원은 환경적인 이득뿐만 아니라 공공적 효과도 크다. 자연이 풍부한 정원에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찾아와 쉼과 위안을 얻고 간다. 특히 자연주의 조경은 물, 에너지, 유지관리가 크게 필요하지 않아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전의 체험이 텃밭과 같은 생산적 측면이 강조되었다면 최근에는 힐링, 치유, 소통 기능으로 변모하고 있다.

시민들의 일상 속 정원 가꾸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환경녹화의식도 높아지면서 흙과 화초에 대한 향수로 아파트 베란다를 소정원으로 꾸미기도 한다. 서울시는 체계적인 시민 녹색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시민정원사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 [관련기사] 요즘 대세 가드닝! '시민정원사' 양성과정 교육생 모집

시민정원사 기본과정에서는 정원학개론, 정원설계 등 이론 및 실습교육을 배운다. 기본과정 이수 후 심화과정까지 수료하면 시민정원사 자격이 주어진다. 정원사 자격을 받은 이들은 서울시의 팝업가든, 정원 조성 참여, 정원 해설 등 자원봉사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
'시민참여정원'을 가꾸고 다듬는 시민정원사들 ⓒ조시승
'시민참여정원'을 가꾸고 다듬는 시민정원사들 ⓒ조시승
서양등골나물 '초코렛' 등 꽃들이 만개해 있는 정원 경관이 화사하다. ⓒ조시승
서양등골나물 '초코렛' 등 꽃들이 만개해 있는 정원 경관이 화사하다. ⓒ조시승

10월 첫 주, 정기 ‘가드닝데이’에 시민정원사들이 시민참여정원 가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울숲 주차장에 파킹 후 화장실 건물 뒤편으로 향했다. 회색 골조 아치가 있는 곳을 지나니 자연 그대로의 정원이 다가왔다.

10여 명의 정원사들이 부지런히 풀을 다듬거나 잡초를 뽑고 있다. 서로 최적의 정원 모습을 그리면서 상의한다. 관엽식물 모양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고 통풍이 잘 되도록 불필요한 잎도 제거한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영양제를 주기도 한다.

300여 평의 정원은 '오소정원', '당아정원', '놀멍정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소(吾笑), 즉 내가 웃는다는 의미인 오소정원은 1~2기 정원사들이 담당한다. 당아('아직'의 사투리)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는 의미의 당아정원은 3기 정원사들이 담당하고 있고, 놀멍정원은 4기 정원사들의 담당구역이다.

시민정원사는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 가드닝데이를 갖고 하루 4시간 정도 시민참여정원에서 봉사하고 있다. 가드닝데이에는 정원사 전원이 모여 시민참여정원을 가꾸며 돌봄을 원칙으로 한다.
'당아정원'의 팻말. 오른쪽으로는 오솔길이 조성되어 걷기에 호젓한 느낌을 준다. ⓒ조시승
'당아정원'의 팻말. 오른쪽으로는 오솔길이 조성되어 걷기에 호젓한 느낌을 준다. ⓒ조시승
'놀멍가든'은 놀멍 쉬멍 가든의 약칭으로 놀며 쉬며 즐기라는 의미다. ⓒ조시승
'놀멍가든'은 놀멍 쉬멍 가든의 약칭으로 놀며 쉬며 즐기라는 의미다. ⓒ조시승

서울숲 도시정원사(시민정원사) 교육 수료생들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서울숲이 생긴 2005년 이래 6년 동안 불모지였던 맨땅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하며 아름다운 생태공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서울숲과 주차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로 오염물이 쌓여 있고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던 삭막했던 불모지를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아이들이 자연을 배우러 찾아오는 자연정원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마을 주민들의 산책 코스가 되고 기념사진을 찍는 포토존이 되고 웨딩 촬영하러 오는 코스가 되기도 한다. 2016년도에는 시민녹화 최우수사례로 ‘꽃피는 서울상’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영숙 정원사가 산수유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조시승
이영숙 정원사가 산수유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조시승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만개한 범부채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시승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만개한 범부채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시승
활짝 핀 향등골나물이 자연스런 운치를 보인다. ⓒ조시승
활짝 핀 향등골나물이 자연스런 운치를 보인다. ⓒ조시승

이곳 토양에서는 제법 큰 지렁이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쐐기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만큼 건강한 땅으로 변모했다는 증거다. 매미의 탈바꿈 흔적도 볼 수 있다. 

"매미는 7~20일 살다가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감한대요. 7년 이상 땅 속에서 굼벵이로 지내다 매미로 부화한 흔적인 허물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땅에 떨어진 모습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해요."라고 4기 정원사 한 분이 말한다. 하찮게 생각되는 작은 미물에게까지 생명의 존중함을 일깨워 주는 마음이 곧 정원사들의 마음이다.
토양의 질을 개선해 주는 지렁이. 정원사들에게는 지렁이도 자연과 정원의 일부다. ⓒ조시승
토양의 질을 개선해 주는 지렁이. 정원사들에게는 지렁이도 자연과 정원의 일부다. ⓒ조시승
탈바꿈한 매미의 허물. 애벌레에서 완전한 성체가 되기 위해 4번의 허물을 벗는다. ⓒ조시승
탈바꿈한 매미의 허물. 애벌레에서 완전한 성체가 되기 위해 4번의 허물을 벗는다. ⓒ조시승

무려 10년 경력의 1기 대표 이영숙 정원사는 멀리 가평에서 봉사하러 이곳 서울숲까지 매주 방문한다. 왕복 5시간, 봉사시간 4시간을 합하면 가드닝데이엔 하루종일을 소요하는 셈이다. 3기 이해련 정원사도 용인에서 매주 이곳 서울숲까지 봉사하러 다니고 있다. 3기 서은희 정원사도 벌써 7년째 매주 가드닝을 하고 있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이끌어 보람을 느끼도록 만들었을까? 오로지 자기가 가꾸고 다듬는 정원의 꽃과 나무가 잘 자라 벌·나비가 날아드는 기쁨, 자연생태 그대로의 정원의 모습에 즐거워 하는 서울숲 방문객들의 모습이 바로 시민정원사들의 보람이 아닐까? 
서은희 정원사가 구절초 옆에서 잔가지를 정리하는 가드닝을 하고 있다. ⓒ조시승
서은희 정원사가 구절초 옆에서 잔가지를 정리하는 가드닝을 하고 있다. ⓒ조시승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식물 앞에 이름표를 설치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름표를 보고 특이하거나 새롭고 예쁜 꽃들을 대담하게 캐어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정원 입구 아치에 심어 놓은 클레마티스, 잘 자란 토란을 통째로 뽑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식물도 자기가 잘 자라는 지역이 있고 하나하나 잘 돌봐 주어야 하는데 아파트 베란다나 쾌적하지 않은 공간에서 키울 텐데 제대로 잘 자랄지 너무나 아쉬운 상황이다. 이후 이름표는 부착하지 않았다. 지난해 시민참여정원에 CCTV를 설치하였지만 도난이 근절되지 않고 있어 올바른 시민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자비를 들여 공원을 가꾸는 데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손쉽게 자기 아파트나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CCTV 촬영 중' 팻말을 부착했으나 탐나는 꽃을 캐어 가는 일부 관람객들의 행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조시승
'CCTV 촬영 중' 팻말을 부착했으나 탐나는 꽃을 캐어 가는 일부 관람객들의 행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조시승

4기 민선희 정원사(놀멍쉬멍 대표)는 이곳 시민참여정원에서 시민정원사들의 일을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가을에는 주위를 깔끔하게 하는 것과 겨울 준비에 초점을 맞춥니다. 보습이 잘되는 피트모스 흙이나 식물이 뿌리내리기 좋은 토양의 흙과 이끼를 깔아 줍니다. 공통적으로 ① 시들거나 누워있는 풀을 제거하는 제초작업 ② 토사에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양분과 물을 주는 보식과 관수작업, 그 외에 ③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며 공기를 청정하게 하고 수분을 저장했다가 필요시 공급하는 이끼도 심어요."
민선희 정원사가 토양에 뿌리내리기 좋고 식물의 성장을 돕는 피트모스 영양제를 점검하고 있다. ⓒ조시승
민선희 정원사가 토양에 뿌리내리기 좋고 식물의 성장을 돕는 피트모스 영양제를 점검하고 있다. ⓒ조시승
최성윤 정원사(4기)가 화초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화단을 정성껏 다듬고 있다. ⓒ조시승
최성윤 정원사(4기)가 화초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화단을 정성껏 다듬고 있다. ⓒ조시승

민선희 정원사와 함께 4기 정원사들이 이끼를 조성하고 있다. 이끼는 꽃도 피지 않고 뿌리와 줄기, 잎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1~10cm 정도의 작은 크기로, 자연을 지키고 산소를 공급하는 중요한 식물체다. 작은 곤충들의 먹잇감이 되어 자연의 먹이사슬 구조의 기초를 담당하기도 하고, 홍수와 가뭄 시 수량(水量)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 속에서 공기를 청정하게 하는 유익한 식물이다.
놀멍 쉬멍가든에서 4기 정원사들이 이끼를 심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화단을 가꾸고 있다. ⓒ조시승
놀멍 쉬멍가든에서 4기 정원사들이 이끼를 심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화단을 가꾸고 있다. ⓒ조시승

정원 가득했던 벌개미취가 고양이와 반려견으로 인해 반 정도는 훼손되었다고 아쉬워하는 정원사의 목소리도 있었다. 반려견 출입시 보호자의 배려와 주의가 요구되는 생태공원이다. 기본적인 공동체의 예절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구절초 옆에서 잔가지를 정리하는 서은희 정원사는 "내가 심고 정성 들인 꽃과 나무들이 아름답게 피다가 계절 따라 변하는 모습에서 자연의 순리를 배웁니다. 자연의 변화에 슬기롭게 순응하며 한 몸이 되어 동화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제가 질서와 조화의 지혜를 얻기도 해요." 라고 시민정원에 임하는 마음을 전한다. 
공원의 터줏대감인 고양이나 산책 나온 반려견들이 정원을 훼손하기도 한다. ⓒ조시승
공원의 터줏대감인 고양이나 산책 나온 반려견들이 정원을 훼손하기도 한다. ⓒ조시승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정원사의 노력으로 건강한 정원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조시승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정원사의 노력으로 건강한 정원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조시승

이영숙 정원사는 산수유나무 가지치기를 하면서 ‘무성생식으로 돋아나 겹쳐지는 나뭇가지를 제거해 주어야 통풍이 잘되고 햇볕이 골고루 들어 나무가 건강하게 자란다 ’고 알려 준다. 그녀는 건강한 숲과 나무를 위해 맹아지(萌芽枝 : 정상적 눈에서 발달한 가지가 아닌 잠아(潛芽)나 부정아(不定芽)에서 발달한 움가지)를 제거해 주고 있었다.

이영숙 정원사 못지않게 이해련 정원사도 조경이론과 실제 경험이 밝은 정원사다. 원예 관련 석사학위 소유자로서 궂은 일도 마다 않으며 본을 보이고 있다. 오소정원을 만들 때부터 이곳을 지켜온 증인들이다. 

"정원이라는 것은 돌봐주는 만큼 기쁨을 줍니다. 자연 속 식물을 정원이라는 울타리로 가져 왔으니 돌봄은 당연한 행위에요." 라고 말하는 자세에서 식물을 반려식물로 존중하는 마음을 배운다.
공원 사진사들이 시민참여 정원의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조시승
공원 사진사들이 시민참여 정원의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조시승

마포 상암동 하늘공원에서 ‘서울정원박람회’가 11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억새 물결과 다채로운 정원 작품이 어우러져 멋진 장관이 연출되고 있다. ‘바람, 풀 그리고 정원’이라는 주제로 펼쳐치는 서울정원박람회는 전문가‧학생‧시민의 참여로 조성한 정원 작품을 선보이고 정원산업전과 정원문화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선사한다. 시민정원사들의 작품도 내년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 출품되어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얻기를 바란다.

서울숲 시민참여정원

○ 위치 : 서울 성동구 뚝섬로 273 (성수동1가 643)
○ 교통 : 지하철 수인분당선 서울숲역 14, 15번 출구
○ 주차요금 : 5분당 150원, 1시간 1,800원
서울의공원 누리집
○ 문의 : 02-460-2905

시민기자 조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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