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집'을 머리에 쓰고 미술관에 입장했습니다!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3.07.14. 16:20

수정일 2023.07.16. 23:05

조회 1,904

지정우 건축가
어린이들과 진행하는 건축워크숍은 주제, 대상 혹은 장소의 주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어린이들과 진행하는 건축워크숍은 주제, 대상 혹은 장소의 주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10) 나의 공간이 도시가 되는 법

어린이들과 진행하는 건축워크숍은 건축가들이 흔히 ‘컨텍스트(context)’라고 부르는 주제, 대상 혹은 장소의 주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그러므로 ‘어떤’ 건축가가 기획하느냐가 어떤 건축가가 집을 디자인 하는가 만큼이나 중요하다. 건축가의 경험, 지향점에 따라서 어린이들과의 상호작용은 달라질 수 있고, 그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외국의 건축 교육을 언급하거나 그 형식만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린이 건축워크숍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 없겠다. 필자가 지난 몇 년간 기획하고 진행했던 어린이 건축워크숍을 통해 어린이 건축교육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의 어린이 공간 워크숍을 위한 기획안.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의 어린이 공간 워크숍을 위한 기획안.

개성을 드러내는 미디어로서의 포치(porch)

팬데믹이 지속되는 동안 필자는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의 어린이 공간 워크숍을 맡아 기획했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없는 상황이 어린이 발달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내내 고민이 많았다.

역사적 역병의 상황에서 서구에서 만들어 썼던 마스크는 지금과 달리 표현적이다. 또한 수많은 서구 영화에서 보이는 마스크는 우리가 생각하는 마스크와 의미도 다르다.

팬데믹 초기에 유럽 등에서 주거 발코니에서 오페라를 하고 연주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는 상황이 꽤 인상적이었고 그것이 오랜 기간 지워갔던 우리의 주거문화와 닿아있다는 생각도 반영됐다.

집 앞에 붙어있는 공간으로 반 내부-반 외부인 포치가 있다. 집주인은 포치에서 휴식하고, 바라보고,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한다. 그런 것이 집주인의 ‘어떠함’을 드러내는 ‘미디어’가 아닐까.

발코니도 없고 매끈한 건물에 창문만 뻥뻥 뚫려 있는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할 때, 필자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포치’를 주고 싶었다. 어린이들의 손으로 탄생한 자신의 ‘포치’를 자신의 얼굴 앞에 붙여보자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주택의 앞부분에 놓인 포치는 거리와 내 집 사이의 중간 영역이자 개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일반적인 주택의 앞부분에 놓인 포치는 거리와 내 집 사이의 중간 영역이자 개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비대면과 대면 워크숍의 조화

어린이 참여자들은 비대면 워크숍을 통해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에 출품된 4개의 설치 작품을 감상하고, 미리 배송된 재료 키트를 사용해 2주에 걸쳐 총 4개의 포치 공간을 만들었다. 

세 번째 워크숍에서는 전시가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 모여 4개의 포치 공간을 자신의 머리에 쓸 수 있도록 연결하는 작업을 가졌다.
비대면 워크숍을 위해 각 가정에 발송한 재료 키트(왼쪽) 줌으로 워크숍 진행 모습.
비대면 워크숍을 위해 각 가정에 발송한 재료 키트(왼쪽) 줌으로 워크숍 진행 모습.

어린이들이 만드는 ‘포치’는 자신의 표현 ‘미디어’가 된다. 그것을 통해 바라보는 작가의 작품은 자신의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의 메시지를 그대로 흡수하기보다 어린이 참여자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창작에 참여하는 것이다. 보다 ‘능동적’인 참여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이 참여자들이 비대면으로 만들었던 4개의 공간을 머리에 쓸 수 있도록 합치는 대면 워크숍.
어린이 참여자들이 비대면으로 만들었던 4개의 공간을 머리에 쓸 수 있도록 합치는 대면 워크숍.

각각의 공간이 모여 우리의 집이, 그리고 도시가 되다

각각의 ‘미디어’를 자신의 얼굴 앞에 대고 그것을 통해 보는 단일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4개 모인 ‘군집’은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가진다. 사방으로의 방향성을 가지며 그 자체가 ‘우리의 집’이 된다. 

또한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참여자 여러 명의 집이 모였을 때 그것은 동네가 되고 마을이 되며 ‘도시’가 된다. 이 전시가 다른 비엔날레가 아니라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이기에 상당히 도시적, 건축적 의미를 가진 전시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매달았을 때 그 내부에서 옆의 집을, 도시를 볼 수 있다.
우리의 집을 머리에 쓰고 돌려가며 다시 그 작품들을 감상해보는 실험.
우리의 집을 머리에 쓰고 돌려가며 다시 그 작품들을 감상해보는 실험.

4개가 완전체로 모여서 구성된 작품을 직접 쓰고 미술관 내부를 다니는 것은 어린이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전시를 보러 온 다른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일종의 ‘행위예술’을 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5, 6학년 참여자 중에는 이것을 쓴 자신의 모습을 창피하게 느끼기도 했지만, 미술관이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옆의 다른 참여자들을 보면서 용기를 내기도 했다. 
우리의 집을 머리에 쓰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입장하는 모습.
우리의 집을 머리에 쓰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입장하는 모습.
우리의 집을 머리에 쓰고 돌려가며 다시 그 작품들을 감상해보는 실험.
우리의 집을 머리에 쓰고 돌려가며 다시 그 작품들을 감상해보는 실험.

이번 결과물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매단다’는 점이면서 그 내부에 ‘불빛’을 밝힌다는 점이다. ‘미디어 전시’의 특성상 어두운 전시장 공간이 많다는 것에 주목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집’의 불빛이 새어나가고, 그 불빛들이 모여 도시의 불빛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어린이들의 공간이 전시장에 매달려서 새로운 전시가 되고, 도시가 되는 모습.
어린이들의 공간이 전시장에 매달려서 새로운 전시가 되고, 도시가 되는 모습.

워크숍은 어린이들의 경험으로만 끝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남겼다. 잠시동안이지만 전시가 되었다는 경험은 어린이 참여자들에게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 서로 다른 장소에서 함께 참여한 다른 참여자들의 작업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험은 무척 특별할 것이다. 서로 다른 표현을 했다는 것을 통해서 마치 서로 다른 집의 ‘포치’를 보는 것 같은 경험이 될 것이다.
어린이 참여자가 만든 포치들이 모인 집과 새로운 전시물 내부.
어린이 참여자가 만든 포치들이 모인 집과 새로운 전시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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