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숨고…끊임없이 움직이는 어린이를 위한 공공디자인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3.06.23. 15:22

수정일 2023.06.27. 09:59

조회 2,486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9) 어린이를 위한 공공디자인

마시멜로 챌린지라는 것이 있다. 가느다란 스파게티면 가닥들과 테이프, 실, 그리고 한 덩이의 마시멜로를 주고 정해진 시간 안에 어느 팀이 가장 높이 마시멜로를 올리는가를 경쟁하는 실험이다. 기업의 CEO, 대학원생, 변호사 등 여러 집단 중에서 가장 높이 올리는 팀은 놀랍게도 유치원생들이다.

계획을 짜서 실행하고 맨 나중에 마시멜로를 올려놓는 ‘길들여진’ 어른들이 실패하는 데 반해, 유치원생들은 마시멜로를 처음부터 갖고 놀면서 이렇게도 올려보고 저렇게도 놓아보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높이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을
어린이 눈높이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공공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끊임없이 움직이다 보니 예측이 어렵고, 이미 정해진 것을 넘어 새로운 무언가를 남길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은 공공디자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공공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시작이 될 것이다.

어린이의 시선

어린이는 조망하기보다는 가까운 데 있는 것에 더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을 만져보고 싶어 한다. 어른들은 풍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 반해 어린이들은 웅크리고 땅바닥을 보거나 작은 움직임에 반응한다.

특히 수(水)공간은 어린이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한 공공디자인 요소이다. 천편일률적인 수(水)공간이 아니라 ‘속삭이는’ 곳도 필요하고 ‘가볍게’ 터치해 주는 곳도 필요하다.
공공 수(水)공간에서의 시각, 손, 발을 활용한 아이들의 반응.
공공 수(水)공간에서의 시각, 손, 발을 활용한 아이들의 반응

그림자도 종종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낸다. 아래 사진을 보면, 바닥에 놓인 지붕 그림자 위를 어린이가 걷고 있다. 그림자가 하루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어린이는 같은 공간이어도 다른 패턴으로 인식하고, 그림자 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놀이한다. 
필자가 설계한 안성 모아집의 데크. 그림자놀이 중인 어린이.
필자가 설계한 안성 모아집의 데크. 그림자놀이 중인 어린이

일상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

어른들도 기억 속에 자신만의 ‘본부’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별것도 아닌 재료들을 가지고 한두 명이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지 않는가. 지금의 어린이들도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있는 것보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경험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본부’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별것 아닌 재료로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지 않는가.
아이들이 점유하는 일상의 공간들,
아이들이 점유하는 일상의 공간들,

어린이들이 이삿짐 박스, 겨울에 쌓인 눈, 동네 뒷산의 나뭇가지 등으로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할 때 어른들이 약간의 호기심과 노동력 더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공간이 될 것이다. 그것은 다시 오지 않을 그때만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자신이 들어가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직접 부딪쳐 실험해 본다면, 그러한 호기심과 경험이 체계적인 지혜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활력소가 되는 아이들의 움직임

움직임이 많은 어린이들은 가장 움직임이 없는 계층인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방문했던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노인전용아파트 외부는 유리지붕으로 덮인 실내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곳에는 음악회, 이벤트 공간과 함께 아이들의 실내 놀이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웃고 움직이는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노인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실제로 노인의 운동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미네소타주 에딘보로 파크
미국 미네소타주 에딘보로 파크

어린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사회는 경직된 사회이다. 기성세대의 편의만을 생각하여 어린이들을 무시하는 사회이다. 어린이들의 다른 시선과 호기심, 그 왕성한 움직임을 디자인에 반영해 도시를 이롭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때가 되었다. 이러한 고민을 통해 ‘공공’의 개념을 생각하고,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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